화요일이었던 지난 29일 저녁,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당장 연기자나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도 손색없을 외모의 젊은이들로 북적댔다. 한 패션 브랜드 매장 상인은 “일주일 중 가장 한가한 편인 화요일이라 이 정도지, 주말에는 그야말로 사람이 사람을 밀고 다닌다”고 했다.

지난 29일, 일주일 중 가장 한산하다는 화요일이었지만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 일대 골목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1990~2000년대 초 전성기로 돌아간 듯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인기 돈가스집 ‘카츠바이콘반’ 앞은 입장하려고 대기하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다. 대기표 뽑는 기계 화면에는 ‘현재 대기 14팀’이라고 떠 있었다. 상황은 전통주점 ‘묵전’이나 수제 햄버거 가게 ‘다운타우너’, 삼겹살 전문점 ‘추풍령칼삼겹살’, 미국풍 중국 음식점 ‘웍셔너리’, 브런치 카페 ‘꽁티드툴레아’ 등 잘나간다는 가게 어디나 비슷했다. 전통주점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평일은 오후 7시, 주말은 온종일 1시간 이상 웨이팅(대기)이 기본”이라고 했다.

인파 가득한 골목을 차들이 헤집고 지나갔다. BMW·벤츠·포르셰 같은 수입차는 너무 흔해서 국산차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이고, 페라리·애스턴마틴·벤틀리·롤스로이스 등 이른바 ‘수퍼 카(super car)’나 지나가야 사람들이 쳐다봤다.

로데오거리는 이른바 ‘오렌지족’이 수입차를 몰고 다니다 맘에 드는 이성을 보면 “야, 타!” 외쳤다는 ‘야타족’이 몰리며 ‘퇴폐·향락의 온상’이라 지탄받던 1990년대 중후반으로 돌아간 듯했다.

◇코로나로 부활한 로데오거리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88년 맥도날드 1호점이 들어선 뒤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최고의 상권이던 로데오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1번지’로 꼽혔다. 임대료 급등으로 가게들은 떠나고 사람들 발걸음이 뜸해지며 긴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최근 반등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압구정 상권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0.3%로 전년 동기(14.7%)보다 4.4%포인트 낮아졌다. 강남 주요 상권 중 코로나 이후 공실률이 하락한 곳은 압구정과 교대(-0.4%포인트), 남부터미널(-1.3%포인트) 3곳뿐이다. 같은 기간 서울 주요 도심 상권 공실률은 크게 높아졌다. 광화문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3%, 명동은 38.4%. 광화문은 상점 10곳 중 2개, 명동은 10개 중 4개가 비어 있다는 얘기다.

로데오거리가 부활한 건 코로나 영향이 크다. 이태원과 홍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클럽과 술집 등 유흥업소들이 임시 휴업하거나 폐점하면서 갈 곳이 없게 된 MZ세대들이 로데오거리로 눈을 돌렸다.

로데오거리가 단순히 코로나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기만 한 건 아니다. 2018년 백곰막걸리를 연 이승훈 대표는 “코로나가 터지기 3~4년 전부터 콘텐츠가 탄탄한 가게들이 로데오거리에 들어와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이태원과 홍대를 갈 수 없게 된 MZ세대가 찾았을 때 매혹시키고 붙잡아둘 수 있었다”고 했다. 백곰막걸리, 호족반, 도산분식, 다운타우너 등 유명 맛집들이 2016~2017년부터 다시 로데오거리에 생겨났고, 이들이 ‘앵커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로데오거리에서 만난 대학원생 서모(29)씨는 “가로수길은 이제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다국적 기업 매장뿐이라 매력이 없다”며 “압구정 로데오는 덜 알려진 브랜드, 새로운 맛집이 상대적으로 많아 훨씬 힙(hip)하다”고 했다.

인파 가득한 로데오거리 골목을 차들이 헤집고 지나갔다. 수입차는 너무 흔해서 국산차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이고, 페라리·애스턴마틴 등 이른바 ‘수퍼 카(super car)’나 지나가야 사람들이 쳐다봤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착한임대료 효과? 상승세 당분간 계속될 듯

가로수길에서 유명 레스토랑 ‘류니끄’를 운영하는 류태환 셰프는 장어와 돼지고기를 함께 파는 독특한 콘셉트의 음식점 ‘돼장’을 올해 초 로데오거리에 냈다. 로데오거리에 새 매장을 낸 이유로 류 셰프는 “가로수길과 로데오거리 임대료가 큰 차이 없더라”고 했다. “로데오거리에 젊은이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놀랐어요. 임대료를 알아보니 가로수길보다 엄청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전보단 저렴해졌더라고요.”

건물주들의 노력도 있었다. 2010년대 중반 로데오거리는 상가 10곳 중 2곳이 공실일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위기의식을 느낀 임대인 10여 명이 모여 2017년부터 임대료를 낮추고 권리금을 받지 않기 시작했다. 상권 활성화 추진위원회도 만들고, 추진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시행하는 ‘사단법인 압구정로데오’도 결성했다. ‘착한 임대료’와 함께 특색 있는 맛집을 입점시키는 데 신경 썼다. 류 셰프도 “지금 가게도 원래 옷집이었는데 식당을 넣고 싶어 하더라”고 했다.

코로나와 함께 부활한 압구정 로데오거리, 코로나가 사라지면 다시 침체할까. 종합부동산서비스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 코리아’ 김성순 전무는 “코로나가 로데오거리 부활을 앞당긴 건 사실이지만 이미 준비돼 있던 상권이고, 부동산은 트렌드가 급변하지 않는다”며 “당분간은 현재의 상승 모멘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