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주요 7국(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문 대통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진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가리키기만 한 게 아니었다. 영국의 존슨 총리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방역 모범국”이라며 칭찬을 건넸고,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여기에 맞장구를 쳤단다. 내친김에 문 대통령은 한국이 “글로벌 백신 허브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다른 G7 국가들과도 백신 파트너십을 모색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은 안 했으면 좋을 뻔했다.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률은 1차만 따져도 이제 30%를 막 넘은 상태로, 주요 국가들에 비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백신 재고분이 떨어져 아직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교차 접종을 결정하기까지 했다. 다른 나라들도 다 인터넷이 되는지라 우리나라 백신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터. 백신 파트너십 운운은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우리나라 대통령이 해외에서 이렇게 칭송받는 것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코로나 방역이 지난 4년간 문 대통령 업적의 전부라는 데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남북 관계 등등 잘한 구석이 단 하나도 없다! 업적이 오죽 없었으면 문 대통령에게 ‘망상’이란 단어까지 쓰며 비판한 ‘타임'지 표지 모델마저 자랑거리로 이용했겠는가? 어찌나 안쓰러운지, 이를 지적한 윤희숙 의원의 ‘팩트 폭행'이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하는 얘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사실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 정부의 대처가 썩 훌륭한 것도 아니었다. 감염학회 등에서 요구했던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게 가장 컸다. 지금처럼 입국자에 대해 2주간 격리를 시행하기만 했어도 감염자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 마스크 수급도 문제였다. 우리가 쓸 마스크가 부족하던 초창기, 정부는 업체들이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마스크를 수출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몇 백m씩 줄을 서던 광경을 기억하는가? 심지어 우리 정부는 마스크가 모자라자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망언까지 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국민은 정부가 뭐라고 하든 마스크를 꼭 썼는데, 우리나라의 마스크 착용률 93%는 독보적인 세계 1위다. 미국 50%, 프랑스 34%, 독일 20%, 영국 16% 등등 다른 나라들의 처참한 착용률과 비교하는 게 좀스러워 보일 정도인데, 심지어 마스크를 안 쓴다고 신고를 하고 때리기까지 했으니, 방역 모범국은 필연으로 보인다.

국민이 이렇게 했으면 정부는 신속하게 백신을 구해 코로나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하건만, 정부는 이 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우리는 올 11월이나 돼야 일상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확진자 숫자. 덕분에 정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K방역을 요란하게 홍보했고, G7 정상회의에서 방역 모범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G7의 칭찬 말고도 코로나는 문 정권에 여러 가지 선물을 줬다. 가장 큰 선물은, 지난 몇 년간의 실정에 대한 변명거리를 줬다는 것이다. 예컨대 2020년 1월, 전년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2%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더 안 좋은 건 민간의 기여도는 0.5%에 그친 반면 정부 기여도는 1.5%에 달했다는 점으로, 이는 성장률 2%를 달성하지 못할까 봐 정부가 4분기에 세금을 마구 투입한 결과였다. 2019년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니 현 정권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곧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묻혔다. 게다가 성장률은 원래 전년도와 비교하기 마련. 2019년의 낮은 성장률은 이듬해 성적을 올리기 쉬운 환경을 제공했고, 우리나라는 2020년 성장률 -1.0%로 주요 15국 중 3위에 올랐다. 정부가 이 순위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음은 물론이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도 코로나의 혜택을 누렸다. 안 그래도 의료 과잉 상태였던 대한민국은 비급여의 상당 부분을 건강보험이 흡수해준 문 케어로 인해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예컨대 원래 보험이 안 되던 부위별 MRI는 문 케어 이전 6개월간 73만건 정도였지만, 시행 이후 149만건으로 늘었다. 건강보험은 이 돈을 대느라 바빴고, 결국 2019년 한 해 동안 2조8000억의 적자를 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비축됐던 20조의 건강보험 흑자분이 소진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이대로 간다면 국민 세금으로 건보료를 충당해야 할 판이었다. 문 케어를 당장 중단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위기였지만, 코로나는 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감염 위험 때문에 사람들은 병원 가기를 꺼렸고, 마스크와 손 씻기 효과로 감기 환자 숫자도 크게 줄었다. 원래 3조원가량의 적자가 예상됐던 2020년, 건강보험의 적자는 불과 3500억에 그쳤다. 물론 문 케어가 잉태한 비극은 몇 년 후면 현실로 드러나겠지만, 그럼 어떤가. 문 대통령은 이미 퇴임한 후인데.

이 밖에도 코로나가 문 정권에 준 선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들 알다시피 문 정권은 재정을 방만하게 썼다. 공무원을 역대 최대로 늘렸고, 지난 4년간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20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받는 월급과 퇴직 후 받는 연금은 모두 국민의 부담이다. 원전을 줄이고 풍력·태양광을 한답시고 한국전력을 적자투성이로 만들어 놓은 것도 문 정권의 업보다. 인기가 떨어질까 두려워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요구도 거절하고 있으니, 빚은 빛의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공공기관이 비단 한전뿐일까. 결국 GDP 대비 국가 채무는 2020년 43.9%가 됐고, 내년에는 50%에 육박할 예정이지만, 현 정권은 이게 모두 코로나 탓인 것처럼 선동하는 중이다. 정권 출범 이후 내내 높았던 청년 실업률도 이젠 코로나 탓으로 치부된다. 이런 것들에 비한다면 코로나로 인해 문 정권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지 못하는 것,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것 등등은 사소한 이득으로 보인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코로나로 인한 착시 효과를 걷어내고 현 정권이 한 일들을 냉정하게 따져봐 달라. 시위를 할 수는 없을지언정, 선거를 통해 문 정권을 심판하는 일은 반드시 해 달라. 코로나로 퉁치기엔 이 정권은 선을 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