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라카이’를 아시는지. 포항과 필리핀 유명 휴양지 보라카이의 합성어로 요즘 젊은 층이 포항 해변을 얘기할 때 종종 쓰는 애칭이다. 원래는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에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이국적 분위기의 ‘프라이빗 비치 바(bar)’ 간판이었는데, 지금은 광범위하게 ‘포항 해변’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중. 보라카이가 부럽지 않다는 포항의 해변은 알고 보면 우리가 바라던 바다일지도 모른다.
204㎞의 긴 해안선을 따라 서핑은 물론 스쿠버다이빙 등 다양한 해양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최근 포항을 배경으로 한 어느 예능 때문이 아니어도 포항 바다는 올여름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전국 해양스포츠 제전’도 내달 12~15일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서 열린다.
포항을 그저 묵직하고 차가운 ‘철의 도시’로만 알고 있다면 해변 여행을 강추한다. 포항엔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조용하고 소박한 언택트(untact) 해변들이 ‘천지삐까리’로 널렸다.
◇204㎞ 해안선 따라 20여 개 해수욕장
강원도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달리면 울진, 영덕을 지나 포항의 최북단 해수욕장인 북구 송라면 화진해수욕장부터 만난다. 이를 시작으로 월포·칠포·영일대·도구·구룡포 해수욕장 등 6개의 지정 해수욕장과 조사리·용두1리·이가리·오도리·칠포2리·용한1리·죽천리·흥환리 해수욕장 등 무려 14개의 간이 해수욕장이 이어진다. 개중엔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곳들도 있고 이름조차 없는 해변도 있다.
‘포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영일대’다. KTX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장 쉽고 빠르게 만나는 바다가 영일대해수욕장이다. KTX 포항역에서 차로 10여분. 포항 시내와 가까워 여행객뿐 아니라 포항 시민들이 가장 만만하게 찾는 대표 해수욕장이다. 1975년 개장 당시엔 ‘포항북부해수욕장’으로 불리다가 2013년 ‘영일대 해상 누각’이 들어서면서 이름을 바꿨다. 드넓은 해변에 서면 ‘포스코(POSCO)’와 ‘영일만’이 보인다. 바다 위로는 윈드서핑족들이 돛을 잡고 바람을 가른다. ‘해양스포츠 제전’ 등 굵직한 해양 관련 행사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열린다.
아쉽게도 해수욕장 상징인 영일대 해상 누각은 현재 보수 공사 중이다. 대신 올해 말까지 ‘영일대 샌드페스티벌’이 열린다. 해운대 모래 축제에 비하면 소박한 규모이나 영일대 바다를 배경으로 ‘바다를 품은 인어’ ‘바다의 여신’ ‘소라와 물고기의 섬’ 등 모래 작품들이 소소한 즐거움이 돼준다. 지리적으로 영일대해수욕장은 포항 해안선 중심에 있다. 북쪽에 칠포·월포·화진 해수욕장이, 남쪽에 도구·구룡포 해수욕장이 있다.
◇서핑은 ‘월포’ ‘용한’, 차크닉은 ‘도구’ 해변으로
포항 해변을 훑고 싶은 마음에 해안도로부터 달렸다. 북부 해안도로는 카페 투어와 맛집 탐방을 겸하기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본격적인 코스는 ‘죽천 2교차로’에서부터 ‘월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바다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 인기인 영일신항만을 지나면 용한리 해수욕장이 나온다. 용한리 해수욕장 주차장은 포항 최고 전망을 자랑하는 해변 주차장으로 꼽힌다. 모래사장 뒤쪽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수평선과 눈높이를 나란히 한다.
왼쪽으로는 칠포해수욕장이, 오른쪽으로는 영일신항만이 눈에 들어온다. 막힘 없이 뻥 뚫린 전망에 평일에도 카라반 여행객들이나 차크닉(자동차를 기반으로 즐기는 피크닉) 하려는 이들이 수시로 들락날락거린다. 해수욕장은 물이 얕고 깊이가 완만해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비교적 안전한 해변으로 꼽힌다. ‘영일신항만 서핑’으로 소문난 포항의 서핑 성지(聖地)도 용한리 해수욕장 일대다. 계절에 따라 파도가 다양하게 들어와 수준별 서핑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요즘 말로 ‘힙’한 분위기는 월포해수욕장 주변이다. 왕복 2차로를 사이에 두고 ‘누나 서프' 등 3개의 서프숍이 자리하고 있다. 단, 포항에서도 인기 해수욕장이다 보니 한적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위해 포항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용한리 해수욕장 주변 6곳, 구룡포 해수욕장 주변 4곳을 포함해 포항 바다 20곳에서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진행한다. 김동훈(48) 경북수중레저연합회 사무국장은 “코로나 이전에 해외로 수상 스포츠를 즐기러 나갔던 이들이 국내로 눈을 돌리며 스쿠버다이빙 체험에 대한 문의가 많이 늘어났다”며 “바다마다 환경이 달라 전문가 동반하에 체험을 진행하고 있어 한 번에 최대 10명 정도만 다이빙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1회 체험은 슈트 등 장비 대여료 포함 10만원이다. 기상 상황에 따라 안전 교육 포함해 2~3시간 체험한다.
차 트렁크에 피크닉 용품을 싣고 ‘차크닉’을 즐기는 가족, 커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해변을 찾는다면 동해면 도구해수욕장으로 가야 한다. 지도상 포스코와 구룡포해수욕장 중간 지점에 있는 도구해수욕장은 주차장과 해변 모래사장이 바로 이어져 있다. 차크닉을 즐기는 이들에겐 파라솔이나 그늘막 등 피크닉 용품을 이고 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 최대 장점. 몇 안 되는 주차장은 코로나 사태 후 자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해 질 녘이면 간식을 싸들고 온 커플들이 해변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는다. 해수욕장 왼편으로 포항신항 일대에 불빛이 켜지면 야경 감상 명소로 변신한다. 인조이긴 해도 주차장 부근 대형 야자수가 이국적 분위기를 더한다.
◇‘오도리’ ‘흥환리’ 숨은 간이 해수욕장도 인기
간이 해수욕장은 지정 해수욕장보다는 아담한 규모다. 외지인들보다는 현지 주민들의 ‘마을 앞바다'와 같은 곳. 오도1리 간이 해수욕장은 아는 사람만 찾는 포항의 숨은 해변 중 하나다. 완만한 곡선의 해변으로 몇 년 전부터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 민박들이 자리 잡기 시작해 ‘촌’을 이뤘다. 오도2리 카페와 식당들까지 합하면 언뜻 제주 동쪽 ‘월정리 해변’의 축소판 같다. 작은 제주라 불리는 ‘린도 카페’, 유부 초밥 맛집인 ‘섬목’ 등이 해변의 정취를 더한다. 바다 위 납작한 섬처럼 보이는 ‘오도 주상절리’는 숨은 비경 중 하나다. 상공에서 보면 수면 위로 드러낸 고래의 꼬리지느러미 모양으로 동해안에서 몇 안 되는 주상절리군에 속한다.
칠포해수욕장에서 오도리까지 이어진 ‘녹색연안길’의 ‘해오름 전망대’도 지나치면 안된다. 녹색연안길을 두 다리로 걷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와 같은 곳. 전망대 끝에 서면 크루즈의 뱃머리에 선 듯 망망대해와 마주할 수 있다. 다시 북상하면 이가리 간이해수욕장이 나온다. 여행객들이 호미곶 ‘상생의 손’과 함께 한번쯤 들러 사진 찍는다는 ‘이가리닻 전망대’가 있다. 길이 102m, 높이 10m의 대형 닻 모양의 전망대는 독도를 향하고 있다.
포스코를 지나 포항 남쪽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나는 동해면 흥환 간이 해수욕장도 요즘 주목받는 간이 해수욕장이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 ‘바라던 바다’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찾는 이들이 늘었다. 지금은 촬영의 주 무대였던 구조물만 덩그러니 남아 이렇다 할 볼거리는 없지만 포항에서도 멋진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해변으로 통한다. 날씨 운이 좋으면 서해보다 특별한 일몰을 만날 수도 있다. 바다를 지키는 하얀 등대와 멀리 수평선 위로 포항 시내, 포스코 일대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야경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그냥 가기 아쉽다면 해변을 따라 나무덱이 이어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58㎞)을 걸어볼 것. 한반도 지형 최동단인 호미반도를 두른 트레킹 길이다. 화산활동으로 발생한 지형이라 다양한 바위를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있다. 흥환 간이 해수욕장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인 ‘선바우길’(6.5㎞·1시간 30분 소요)에 있다. 근처 ‘힌디기 바위’에선 소원을 빌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구룡포 남쪽의 장기면 신창 간이 해수욕장도 코로나 사태 후 ‘남몰래’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해의 위치에 따라 한낮에 그늘이 지기도 하는 ‘일출 바위’ 주변이 명당으로 꼽힌다.
◇낮에는 ‘곤륜산’, 밤에는 ‘운하관’
바다 말고도 바다 근처에 명소가 많다. 칠포해수욕장과 가까운 곤륜산 활공장은 ‘포항 인생 샷 명소’로 인기다. 본래 용도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전국에 산을 무대로 한 활공장은 여러 곳 있으나, 이곳은 산과 바다를 주 무대로 삼은 활공장이다. 패러글라이딩보다 전망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으려 찾아오는 이들이 훨씬 많다. 해발 177m에 불과한 산이지만,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입구에서 활공장까지는 20여분 거리.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사로에 체감 거리는 1시간 이상이다. 땀 범벅에 극기훈련급 희로애락을 경험한 이들에게 곤륜산 활공장은 황홀한 풍경을 선물한다. 마치 호주 시드니 해안 절벽 어디쯤에 선 듯 발 아래 알록달록한 지붕의 오도리 마을과 칠포 해수욕장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산에서 동시에 불어 온몸을 휘감는 시원한 바람은 덤. 그러나 한여름 노약자에겐 자칫 고행 길이 될 수 있으니 마음 ‘단디’ 먹고 나서야 한다.
해 진 후라면 포항 남구 포항운하관 전망대로 간다. 전망대에 오르는 순간 “쥑이네~”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포항의 젖줄인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포스코는 밤이면 형형색색의 조명 옷을 갈아 입는다. 포스코 야경을 데칼코마니처럼 비추는 형산강도 운치 있다.
운하를 따라 밤 산책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길을 잃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지난 2일부터 열리고 있는 영일만친구 야시장으로 밤 마실을 이어간다. 차로 5~6분 거리엔 죽도어시장도 있다. 어시장 활기를 느끼려면 늦어도 오후 5시 전에는 가야 한다. 위판장 난전이 5시면 파장 분위기에 들어간다. 곳곳에서 “떨이” 소리가 울려 퍼진다. 몸값 낮춘 해산물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다.
[‘오도리 해변’서 돌문어 덮밥 먹고 단호박 빙수 한그릇으로 입가심]
포항 현지인 맛집
포항 하면 ‘물회’가 떠오른다고? 공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메뉴를 찾아 도전하는 것도 여행을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이다. 북구 흥해읍 해안 도로 맛집 중 ‘오도1리 간이 해수욕장’ 인근 오도2리 빌라드 웨이브는 깔끔한 덮밥으로 유명하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메뉴 따라 돌문어, 간장 새우, 게살 등이 올라간다. 매콤한 양념을 입은 돌문어 반 마리정도를 썰지 않고 밥 위에 ‘덮어주는’ 돌문어 덮밥(1만8000원)과, 손수 담근 간장 새우를 얹어주는 간장 새우장 덮밥(1만4000원)이 인기다. 영덕게살을 올린 게살 덮밥도 먹을 만하다. 창 너머 해안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도리 앞바다가 보여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
카페와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도1리 간이 해수욕장엔 섬목이 있다. 정갈한 유부초밥 한 상 차림인 1인 밥상 세트(1만900원)와 2인 피크닉 세트(3만원)는 여성 취향을 제대로 읽은 메뉴.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깔끔하다. 매일 아침 끓인 제주산 단호박 퓨레와 팥을 넣어주는 ‘여름 한정판’ 제주 단호박 빙수(8900원)는 그냥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색감이 곱다.
포항 곳곳엔 소머리국밥, 전복죽 등 소문난 맛집이 많지만 여름엔 역시 냉면. 포항 현지인들의 냉면 맛집인 상원동 로타리냉면과 한일냉면식당도 들러볼 만하다. 로타리냉면은 1967년에 문 열어 올해로 5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외관에서부터 ‘연식’이 느껴진다. 메뉴는 비빔냉면(1만원), 물냉면(1만원). 돼지수육(1만3000원) 세 가지뿐이다. 평양식 냉면인 물냉면엔 기호에 따라 매콤한 양념을 넣어 먹는 게 현지 주민들 방식. 1971년에 문 연 한일냉면식당은 ‘사계절 냉면’을 내세운다. 물·비빔냉면(모두 1만원)과 함께 한우 불고기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