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졸업생인 김모(39)씨는 이달 초 구글 클라우드에 있던 47기가바이트(GB) 상당의 파일을 네이버 클라우드로 옮겼다. 구글은 2019년부터 졸업생을 포함한 대학 구성원들에게 지메일 기반 포토, 드라이브 등의 용량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 돌연 내년 7월부터 100테라바이트(TB, 1TB=1024GB)까지만 무료 제공하기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구글이 100TB 이상 저장 용량에 대해 이용료를 얼마나 받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당장 서울대 졸업생·재학생 등 구글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7만4000명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서울대 외에도 현재 국내에서 구글 저장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학은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등 50곳이 넘는다. 일부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많아지면서, 구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무료 제공인 것처럼 해놓고 결국 유료화 선언을 하는 구글이 괘씸해, 1년에 3만3000원을 내고 네이버 클라우드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며 “처음부터 유료화를 할 예정이라고 얘기했으면, 굳이 번거롭게 구글에 데이터를 매번 저장해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영어로 구름을 뜻하는 클라우드(Cloud)는 데이터를 인터넷과 연결된 중앙 컴퓨터에 저장해,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그 자료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6~7년 전부터 USB, 외장 하드 등 이동식 저장 장치의 대체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동식 저장 장치는 아무리 큰 외장 하드라도 저장에 한계가 있고, 다른 곳에서 사용하려면 따로 들고 다녀야 해 번거로운 데다, 가격도 비싸 고민하는 소비자가 많았다. 클라우드는 이름 그대로 ‘구름’처럼 형태가 없는 무형 서비스로, 당시엔 대부분 무료였다. 그렇다 보니 클라우드를 쓰지 않으면 오히려 뒤처진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쑤일 정도로 디지털 시대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최근 이 믿었던 클라우드에 발등 찍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클라우드 서비스가 유료화를 시작하거나, 아예 서비스를 접기도 하면서다. 아이디가 삭제돼 애써 만든 자료를 통째로 날리는 경우도 있다.
◇비밀번호 잊거나, 휴면 계정 되면 끝?
직장인 A(32)씨는 지난 5월 한 통신사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저장해뒀던 자료를 모두 날렸다. A씨가 해당 서비스에 1년 동안 접속하지 않아 휴면 계정으로 전환됐고, 3개월간 휴면 상태가 지속되면서 탈퇴 처리가 된 것이다. A씨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 기본 서비스 용량으로는 부족했다. 통신사 클라우드에 이를 백업해뒀는데, 어느 날 접속하려고 보니 아이디 자체가 삭제돼 파일도 모두 날아갔다”고 했다. 해당 클라우드 서비스 관계자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1년 이상 접속하지 않는 사용자는 휴면 상태로 전환이 된다. 가입 당시 이메일 등으로 여러 차례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A씨와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네이버 클라우드를 사용했다는 이모(25)씨는 “1년 동안 로그인을 하지 않았더니 휴면 계정으로 전환돼, 과거 추억과 기록을 모두 잃어버리게 됐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꼭 간직하고 싶은 자료들을 결국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것 아니겠느냐. 주기적으로 로그인하지 않았다고 계정이 삭제될 거란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물론 이씨는 네이버에서 휴면 계정으로 전환된다는 이메일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나 해당 이메일 주소도 이씨가 평소 잘 쓰지 않는 것이라 확인을 못 했다고 한다. 이씨는 “최근엔 다시 예전처럼 외장 하드를 구입해 자료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통신 3사 개인용 클라우드 접어
클라우드 서비스 자체가 사라지기도 한다. 오는 12월에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통신 3사가 제공하던 개인용 클라우드 서비스가 모두 종료된다.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한 데다, 대부분 무료 이용자라는 점에서 수익을 얻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KT는 이미 지난해 개인용 클라우드 서비스를 종료했고, SK텔레콤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베리’는 오는 9월 27일을 끝으로 종료된다. LG유플러스도 11월 30일까지만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클라우드 서비스 종료 과정에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해 2월부터 꾸준히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등으로 서비스 종료 사실을 알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 6일에는 클라우드 베리에 저장한 데이터를 이용자 PC에 자동으로 백업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LG유플러스도 이용자가 동의할 경우, 자동으로 자료를 구글 드라이브·포토로 옮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비스 종료 이후에는 소비자가 뒤늦게 복구를 요청해도 방법이 없다. 개인 정보 관련 법령에 따라 기존 사용자의 정보를 모두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만큼 국회에서는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은 구글 서비스 이용이 급격하게 늘어난 초·중·고교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한 실태 조사를 교육 당국에 요청했다. 조 의원은 “무제한 무료라고 선전하며 서비스 가입자를 흡수하다가, 시장 지배 후 돈을 요구하는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이용자의 실망과 배신감이 매우 클 것”이라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