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대선 주자들의 별명도 풍년을 맞았다. 정치인들에게 별명은 인지도의 바로미터. 좋은 별명이든, 나쁜 별명이든 일단 있는 게 좋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좋은 별명은 후보를 위한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후보 자신은 물론 캠프도 적극적으로 나서 좋은 별명을 이용,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하려고 노력한다. 나쁜 별명은 ‘낙인찍기'용 공격 무기다.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려 쓰는 경우가 많다.
여권 대선 주자 중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자타 공인 별명은 ‘사이다’다. 이 지사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서 “저만큼 ‘사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은 정치인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별명은 성남시장 재직 시절부터 있었다. 말투와 논리가 시원하다는 의미에서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예비 경선 토론에서 그가 ‘돌직구’ 발언을 삼가자 ‘김빠진 사이다’란 비난을 받았고, 이에 이 같은 글을 올린 것이다.
야권 1강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1일 인스타그램에 대구의 한 어린이로부터 받은 만화 캐릭터 ‘엉덩이 탐정’ 그림 사진을 올렸다. 엉덩이 탐정은 윤 전 총장의 닮은꼴 캐릭터다.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일에 공개한 페이스북 소개글에 ‘엉덩이 탐정 닮았다고 함’이라고 적은 바 있다. 윤 전 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엉덩이 탐정 별명이) 처음에는 뭔가 싶었는데 가만히 보니 비슷하기도 하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이 별명을 부각하는 것은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여니’,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추다르크’ ‘돼지엄마’란 별명을 즐겨 사용한다. ‘여니’는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이니’와 비슷한 별명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3월 유튜브에서 “제게는 과분한 별명”이라며 “여니라는 별칭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18일 페이스북에 대구 방문 소식을 알리며 자신을 “김대중 대통령을 만든 추다르크,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돼지 엄마”라고 칭했다.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는 1997년 대선 당시 대구·경북 유세를 지휘하며 얻은 별명이고, ‘돼지 엄마’는 2002년 대선 때 ‘희망 돼지’ 모금 운동을 벌이면서 얻은 별명이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과 자신의 인연을 강조하는 별명으로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까미남(까도 까도 미담만 나오는 남자)’ ‘미담 제조기’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장애가 있는 친구의 등·하교를 도운 일화, 두 아들 입양, 꾸준한 기부 등 미담이 많기 때문이다. 홍준표 의원은 ‘홍카콜라’ ‘홍반장’이란 별명이 있다. 거침없는 언행과 리더십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서는 나쁜 별명이 훨씬 더 자주 사용된다. 비속어가 포함된 멸칭이 많은데, 대부분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이나 스캔들 내용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주로 상대 진영에서 만들고 퍼뜨린다.
이재명 지사는 ‘점지사’ ‘바지사’ ‘이죄명’ 등의 별명이 있다. ‘점지사’와 ‘바지사’는 여배우 스캔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죄명’은 음주운전 등 그의 전과에서 비롯됐다. 윤석열 전 총장은 ‘윤차차’ ‘윤도리’ ‘윤짜장’ 등의 별명이 있는데, 앞선 별명 두 개는 그가 “차차 알게 될 것”이란 말을 자주 하고 회견 때 머리를 좌우로 자주 흔들어 붙었다. ‘윤짜장’은 2019년 조국 전 법무장관 자택 압수수색 때 검찰 수사관들이 중국 음식을 배달해 먹었다는 루머가 퍼졌는데, 여권 지지자들이 당시 검찰 수장이었던 윤 전 총장을 비난하면서 만든 별명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엄중이’, 추미애 전 장관은 ‘추크나이트’란 조롱 섞인 별명이 있다. ‘엄중이’는 이 전 대표가 총리·당대표 시절 “엄중히 보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이유로, ‘추크나이트’는 추 전 장관이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처럼 악역을 자임하며 상대 진영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붙여졌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자리 먹튀’, 홍준표 의원은 ‘홍감탱이’란 별명이 있다. 각각 최 전 원장이 공직을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든 것을 ‘먹튀(먹고 튀었다)’로 표현한 별명, 홍 의원이 과거 장인을 ‘영감탱이’로 지칭했다가 붙은 별명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후보자들의 별명을 만들고 퍼뜨리는 것은 프레임 전략의 일종으로, 상대 후보의 나쁜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자기 후보에게 유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