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5만원만 보내주세요. 발목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해서요. 아, 너무 걱정은 마시고….”

경기 지역 한 부대에서 복무하는 육군 김모(21) 일병은 작년 12월 군 동기들과 축구를 하던 중 오른쪽 발목 인대가 파열됐다. 군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2개월이 지나도 통증이 계속됐다. 자신의 부주의로 다쳤다는 생각에 김 일병은 군 병원이 아닌 부대 근처 민간 병원을 찾았다. 나라사랑카드에 6만원이 채 없었던 김 일병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어머니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고 송금된 돈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일러스트=안병현

일과 후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작년 7월 1일 전격 허용된 지 1년. 선진 병영의 첫걸음으로 시행된 정책인 만큼 군대 풍경도 달라졌다. 특히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휴가와 면회를 통제당한 상황에서 휴대전화는 장병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숨구멍이자 유일한 탈출구. 하지만 군사비밀 유출 위험을 비롯해 병사들이 휴대전화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군 내에서 처리할 사소한 문제까지 외부로 공론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병사들의 휴대전화 허용 1년을 맞아 <아무튼, 주말>이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와 함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일반 병사와 부사관 및 장교, 전역자, 장병의 가족과 지인 2만6290명이 응답했다. 응답자 비율은 병사가 75.2%로 가장 많았고, 가족과 지인(17.0%), 부사관 및 장교(5.5%), 전역자(1.8%), 기타(0.5%) 순이다.

◇단어 외우는 이 일병, 소설 쓰는 천 이병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은 군 안팎을 막론하고 ‘찬성’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체 응답자 중 92.4%(2만4282명)가 찬성, 7.6%(2008명)가 반대했다. 현역뿐 아니라 이미 전역한 이들도 83%(400명)의 찬성 답변을 내놓으며 휴대전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병사의 부모와 지인들도 88.9%(3965명)가 찬성했다.

휴대전화 사용의 장점 1순위로 꼽힌 항목은 ‘자기 계발(50%, 1만2139명)’. 공군 제17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는 이모(20) 일병은 “두꺼운 책 대신 휴대폰으로 토익 단어를 외울 수 있어서 좋다”며 “전역이 다가오면 정보처리기사와 같은 자격시험도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소설 쓰기가 취미인 천효철(20)씨는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복무하며 휴대전화로 짤막한 시나리오를 썼다. 고교 동창 2명과 단톡방을 만들어 스토리라인을 쓰고 공유하는 식이었다. 천씨는 “군 외부에 있는 친구와 소통한 덕에 꾸준히 동기 부여가 됐다”고 했다.

휴대전화 도입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에서 복무 후 전역한 방모(27)씨는 “병영 생활 중 가장 큰 고민은 학업 복귀였다”며 “온라인 강의를 들으려 해도 군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은 이용 시간과 인원에 제한이 있어 어려웠는데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마음 편히 전공 강의와 자격증 수업을 들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부조리 고발’ 위한 찬성은 6.9%뿐

자기 계발 다음으로 휴대전화 사용에 찬성하는 이유는 ‘복무 부적응 완화(27.2%, 6615명)’ ‘위급 상황 즉시 전달(14.6%, 3540명)’ 순이었다.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시행된 후 실제로 장병들의 복무 불안은 줄고 군 내 소통은 늘어났다. 한국국방연구원 조사 결과에서도 휴대전화는 입대 초기 병사들의 군 생활 적응에 도움(88.6%)을 주고, 복무 부적응 병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79.5%)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휴대전화가 보급되자 소셜미디어에 군 내부 부조리를 제보하는 문화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실제로 휴대전화 사용을 찬성하는 이유로 ‘부조리 고발’을 꼽은 이들은 6.9%(1678명)에 그쳤다. 작년 8월 해군 작전사령부에서 전역한 김성호(22)씨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병영 내 괴롭힘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부조리 고발은 첫째 이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로 병사들의 휴가와 외출이 제한되며 고립감이 심해진 상황에서 휴대전화는 병사와 가족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육군 제7사단에 입대한 이등병 아들을 둔 이종미(47)씨는 “면회도 아들과 부모가 모두 백신을 맞은 다음에야 가능하고, 휴가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나마 카톡과 전화라도 가끔 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실제로 군 내 자살률과 심리적 불안도 휴대전화 허용 이후 줄어들었다. 증가 추세를 보이던 군 내 자살 사고는 2020년부터 전년 62건에서 42건으로 감소했다. 2019년 4월과 2020년 2월 각각 한국국방연구원이 장병 인식조사를 시행한 결과, ‘심리적 안정’ 점수는 57점에서 97.5점으로 크게 올랐다.

◇‘꿀 빤다고?’ 그 조롱 듣느니 차라리

소수이지만,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병사 중에서는 6.1%가 반대했는데, ‘카톡을 이용한 선임병들의 사적 지시가 우려된다’ ‘SNS에 셀카(사진)를 올리는 등 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등이 그 이유였다. 육군 3포병여단에서 복무했던 신모(22)씨는 “훈련이 힘든 건 변함 없는데, 휴대전화가 있다는 이유로 소위 ‘꿀 빤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며 “조롱을 들을 바에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했다.

장병들의 가족과 지인 중에서도 11.1%는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 7월 입대한 아들을 둔 부모 윤모(51)씨는 “아들이 느끼는 장점은 분명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나라 지키는 군대에 있는 만큼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며 “아직 기밀 유출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안 일어나라는 법은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이어폰 끼고 있어 안내 방송 못 들었답니다”

군 간부들은 병사들이 휴대전화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지시에 불응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부사관 및 장교 중 휴대전화 사용에 반대하는 이들은 15.7%였다. 이들이 꼽은 반대 이유는 과도한 의존(44.1%)이었다. 육군 21사단에서 중위로 복무한 박모(29)씨는 “이어폰을 낀 채 복도를 돌아다녀 간부나 선임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생활관 안내 방송도 못 듣는 병사들이 꽤 있다”며 “심지어 병사들 간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릴까’ 하는 농담도 심심찮게 들린다”고 했다.

자녀의 안전을 신경 써 달라는 병사 부모의 전화도 늘었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병사들이 부모와 소통하며 애로 사항을 말할 기회가 늘자, 민원 전화를 받는 간부들이 힘들다며 토로해온다”며 “어느 간부는 ‘내가 나라를 지키는 건지 아이를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더라”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허용 시간은 일반적으로 평일 오후 6~9시, 주말 오전 8시 30분~오후 9시다. 주말의 경우 휴대전화를 ‘주어진 시간 전부’(38.2%) 사용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10시간 이내’(23.6%), ‘5시간 이내’(27.1%) 순으로 답했다. 현행 휴대전화 사용 시간이 적절한가에 대한 답변도 ‘더 늘려야 한다’(74.3%)가 ‘현상 유지’(19%)나 ‘줄여야 한다’(6.6%)보다 훨씬 많았다.

국방부는 일과 시간 중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금과 같이 사용 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닌, 작전·교육 훈련 등 임무 유형에 따라 사용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하반기 육군 사단급, 해군 함대급, 공군 비행단급 부대 중 각각 1∼3곳을 시범 부대로 운영할 예정이다. 지평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입대하는 병사들은 ‘검지 세대’로 불릴 만큼 휴대전화에 친숙한 세대”라며 “군사비밀 유출 등의 보안 문제는 사진 촬영을 차단하는 보안 통제 체계 도입 등으로 예방하고, 병사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휴대전화 사용을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