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사무실이 아니다.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5층에 있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은 ‘의원님 방’의 고정관념을 깬다. 시커먼 가죽 소파 대신 알록달록한 가구로 채워졌다. 국회 본회의장에 입고 나가 화제 모았던 멜빵 청바지 차림으로 ‘빈백’에 앉아 류 의원이 말했다. “이 모습 보면 또 화내실 분이 많지 않을까요? 제가 뭘 하면 하도 화내시는 분이 많아요. 하하하!”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IT 회사 사무실인가, 이케아 쇼룸인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5층, 정의당 류호정(29) 의원실은 파격이었다. ‘의원님 방’ 상징인 가죽 소파와 묵직한 사무용 책상이 없다. 그 자리를 빨강, 노랑, 초록의 원색 가구가 대신했다. 앉는 자세 따라 푹 꺼지는 ‘빈백’, 코로나 손실 보상법 제정을 위해 64일간 농성하며 썼다는 피카츄 모양 텐트도 있다.

“권위적인 가구는 다 뺐어요. 게임 회사에서 일했을 때 느낌이 나도록 가볍고 캐주얼하게 했죠. 이런 거 보면 또 화내실 분들이 있으려나. 제가 뭘 하면 하도 화내시는 분들이 많아서. 하하하!” 경상도 억양(경남 창원 출신)이 밴 굵은 음성으로 류호정이 씩씩하게 말했다.

게임 회사 해고 노동자 출신이라는 경력부터 화제였던 그는 21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자 유일한 20대 의원이다. 기존 문법을 깨는 의원실 인테리어만큼이나 지난 1년여간 파격 행보를 거듭했다. 등이 확 파인 드레스를 입고 ‘타투 합법화’를 얘기하고, ‘킬(kill)비리’라는 이름의 채용 비리 신고 센터를 출범할 땐 영화 ‘킬빌’의 우마 서먼처럼 노랑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했다. 대리 게임, 비서 해고 논란 등으로 자격 시비도 있었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거부, 조국 사태 비판 등 첨예한 사건 때마다 소신 행보를 했다. 최근 안산 선수의 ‘숏컷’ 논란 땐, 정치인 중 가장 먼저 ‘숏컷’ 인증 사진을 올려 연대를 표시하면서 페미니즘 선봉장이 됐다.

그를 둘러싼 뜨거운 응원과 격한 비난이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이름 한 자라도 더 노출하려고 안달인 여의도 ‘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슈 몰이를 하며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했다는 것. “그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 있는 줄 아느냐. 세금 아깝다”는 비판엔 “이런 거 하려고 국회의원 있다. 당연하다고 넘어가는 것에 긁어 부스럼 내는 것이 진보 정치인 역할”이라고 호기롭게 맞짱 뜬다.

관심을 먹고 사는 단순 관종인가, 권위적 국회에 변화를 불어넣는 당돌한 존재인가.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여의도의 뜨거운 감자, 류호정을 만났다.

의원실에 둔 알록달록한 원색 책상에 앉은 류호정 의원. 정의당 상징색 노란색 소품이 가득하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원피스 걔? 패션 감각은 없어

-류호정 의원을 인터뷰한다고 했더니, “왜, 하필 ‘걔’를 만나느냐”는 반응이 꽤 있더라.

“하하하하! 걔!”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자조인가?

“그런 식의 편견, 얕잡아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다른 의원들은 보통 어떻게 부르나. 그런 분? 그런 사람? (의원으로서) 존중을 제대로 겪어 보질 못한 것 같다.”

-화가 날 법도 한데.

“폄하가 바람직하진 않지만, 그렇게 국회의원을 편하게 부를 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오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부만 편집돼 기사로 나가니 종종 과장, 곡해된다. 정의당 의원들은 늘 화나 있고 투쟁한다는 이미지도 있는 것 같다. ‘인간’ 류호정을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인간’ 류호정과 ‘정치인’ 류호정이 많이 다른가.

“사람들은 여러 가면을 쓰고 산다고 하지 않나. 직업인으로서, 딸로서, 친구로서 다양한 류호정의 모습이 있다.”

류호정 의원실 한쪽에 있는 옷걸이. 퍼포먼스를 위한 다양한 옷이 걸려 있다. 그에게 '옷'은 "정치를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도구"라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의원실 한쪽으로 긴 옷걸이가 놓여 있다. 문신 합법화를 위한 ‘타투업 법’ 퍼포먼스 때 입은 보라색 드레스와 본회의장에서 입은 점프 슈트, 노란 원피스 등이 걸려 있다. ‘킬비리’ 퍼포먼스에 썼던 노랑 트레이닝복은 초콜릿이 묻어 세탁 맡겼다고 했다.

-류호정 하면 ‘원피스 논란’부터 해서 ‘패션 정치’가 떠오른다.

“나에게 ‘옷’은 정치를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각적 도구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미디어 매체를 통해 소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사실 패션 감각이 좋진 않다. 보좌진이 추천해주면 인터넷 쇼핑으로 사서 입는다.”

-의정보고서 제목에 아예 ‘원피스 걔’라는 말을 박았던데.

“정성 들여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누군지 몰라서 바로 버리면 안 되니까(웃음). 분당 집 근처에서 배포했는데 알아보시더라.”

표지에 '원피스 걔'라는 문구를 넣어 만든 류호정 의정 보고서 / 류호정 의원 제공

-맷집이 센 것 같다. 욕먹는 게 두렵지 않은가.

“정치인은 미움받을 용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마다 지향하는 사회상이 있고, 그것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늘 좋은 얘기만 들을 순 없지 않나. ‘악플’에도 무딘 편인데, 요즘은 도가 지나칠 때가 많다. ‘죽이고 싶다’는 댓글까지 등장해 주변에서 걱정하는 바람에 예전만큼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지도 못한다. 기사에 달린 악플을 보다가 걱정된 어머니가 창원에서 올라오셔서 함께 산다. 결국 의정 활동 1년을 맞아 그동안 받은 악플을 소셜미디어에 ‘전시’했다. 젊은 여성이 받는 혐오 언어를 공론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딸이 정치인으로 사는 걸 보고 뭐라고 하시나.

“평범하게 살지 왜 튀는 삶을 선택해 사서 고생하느냐고 하신다. 사람들이 대학 나와 좋은 직장 가고 결혼하고 애 낳으면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지만, 거기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왜?’라고 물으며 설명을 요구한다, 설명하는 삶은 피곤하다면서. 그러면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불필요한 설명을 요구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 일’이라고 답한다.”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채용 비리 신고 센터 '킬비리' 설립 기자회견에서 류호정 의원이 영화 ‘킬빌’의 우마 서먼처럼 노랑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한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내 이름은 ‘야’ ‘어이’… 꼰대엔 좌우 없더라

-유일한 20대 의원으로서 지난 1년여간 겪은 국회는 어땠나.

“국회의원 평균 나이가 55세 정도, 80% 이상이 남성이다. 50대 중년 남성 위주 국회에서 20대 여성 의원은 ‘낯선 존재’다. 낯선 존재가 뭘 하니까 자꾸 ‘소란’으로 보는 듯하다. 국민 중엔 청년, 여성, 노동자도 있는데 내 존재가 낯설다는 것은 그만큼 국회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어이’ ‘야’ 같은 일도 겪게 된 것 아닐까.”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최창희 전 공영홈쇼핑 대표는 그에게 “어이”라고 반말을 했고, 민주당 문정복 의원은 “야, 어디서 감히”라고 막말했다.

-둘 다 진보 인사 아닌가.

“꼰대엔 좌우가 없더라(웃음).”

-연륜이 중요하단 생각은 안 들던가.

“나이 많은 의원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해보고 국회에 오는 건 아니다. 각자 잘 아는 전문 분야가 있고,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는 게 중요하다. 연륜도 중요하지만, ‘경청’과 ‘실행력’도 중요하다. 의원 개개인은 똑같은 권한을 부여받은 입법 노동자다. 중년 남성 의원들이 사회 모든 부분에 대해 목소리 내듯 20대 여성 의원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호정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기. 사회적, 문화적 편견에 억눌린 이들을 대변하는 스피커가 되고 싶다. 이 과정에서 날아오는 날 선 비판과 비난을 감당하는 ‘샌드백’ 역할을 기꺼이 하겠다.”

-퍼포먼스로 주목받으려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우리 사회엔 목소리가 지워진 소위 ‘투명 인간’이 많다.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려면 정말 처절하게 불행을 전시해야 하는데, 나는 옷 한번 입는 것으로 현장 목소리를 알릴 수 있다. 그렇게라도 알려진다면 ‘쇼’라는 비판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소수 정당의 한계도 이해해 달라. 법안 발의를 하려면 10명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 정의당은 의원이 6명밖에 안 되는 비교섭단체다. 사람들에게 먼저 알려서 공감대를 형성한 뒤, 그 여론을 다시 국회로 들고 와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 관심을 끌기 위해 별의별 걸 다 해야 한다. 퍼포먼스를 하면서도 기사 한 줄 실리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류호정 의원이 국회 앞뜰에서 등 파인 드레스를 입고 타투업 법 제정 촉구를 위해 한 퍼포먼스. 등에 타투 스티커를 붙였다. /뉴시스

-‘타투업 법’ 발의에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회의 중 눈썹 문신을 한 의원들을 떠올리다가 ‘홍그리버드(홍 의원의 눈썹이 앵그리 버드 같아 생긴 별명)’가 생각났다. 협조를 구하려고 홍 의원님 직통 번호로 전화했는데 받으시더라. ‘눈썹 문신 하시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빵’ 터지시더라. 흔쾌히 서명해 주셔서 감사했다. 홍 의원님이 최근 우리 상임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로 사보임(상임위 바꾸는 것)해서 옆자리에 앉게 되셨다. 의원님이 오시자마자 회의 때 꾸벅꾸벅 졸아 카메라에 찍혔는데 나도 한 앵글에 나왔다(웃음).”

◇‘게임 아이돌’에서 ‘페미’ 선봉장으로

-같은 MZ세대인 이준석 대표와 종종 설전을 벌인다.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더러 “경쟁에 미쳐 있는 분 같다”고 꼬집었던데.

“예전에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난 적이 있다. 문자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다. 얼마 전 우리 의원실에서 홍콩 민주화 관련 화상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 대표가 먼저 연락해 참석하기도 했다. 공통 관심사엔 얼마든지 손잡을 수 있다. 채용 비리 처벌법도 청년 이슈니 동참해 달라고 하려 했는데, 내 발언이 편집돼 뉴스로 나가는 바람에 연락을 못 하고 있다(웃음). 이 대표가 당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치이고 있는 것 같아 동병상련도 느낀다. 나이에 대한 편견과 싸우며 열심히 하는 것은 응원한다.”

-이 대표가 ‘이대남(20대 남자)’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젠더 갈등’을 이용한다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이대남·이대녀(20대 여자) 사이에 전선을 긋고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는 나쁘다. 온라인에서 갈등이 첨예한 것과 달리, 오프라인 일상에서 평범한 2030 남녀는 잘 지낸다. 같이 살아가야 할 존재니까. 남녀 상관없이 청년은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같은 곤궁에 처해 있다. 공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산 선수의 '숏컷' 논란이 일자 류호정 의원이 연대를 밝히며 페이스북에 올린 과거 자신의 '숏컷' 인증 사진. /연합뉴스

-안산 선수의 ‘숏컷’ 논란은 어떻게 생각하나. 논란이 되자 페이스북에 과거 ‘숏컷’ 사진을 올리며 “페미(니스트) 같은 모습이라는 것은 없다. 여성 정치인의 복장, 스포츠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논쟁거리가 될 때마다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여성들도 참 피곤할 것 같다”고 했던데.

“부당한 공격을 받은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또래 여성들이 자기 검열하며 위축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대를 표현한 것이다. 원피스 사건을 겪었을 때 생각도 났다. 머리가 짧다고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억지 아닌가. 그리고 설령 안 선수가 ‘페미’라면 또 어떤가. 그렇게 사상 검증을 한다는 것 자체에 화가 난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 소수 남성들 의견을 확대 재생산해 논란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다.

“안 선수 인스타그램에서 혐오 표현을 한 사람들이 문제를 만들고 공격한 것이 팩트 아닌가. 왜 다른 말을 얹는가.”

-대학 때 아마추어 게임 대회에 출전해 ‘이화여대 재학 중인 미모의 여성 게이머’로 인기를 얻었다. 지금의 페미니스트 면모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돌이켜보면 성 상품화하는 걸 알았지만 재미있는 추억이라면서 넘어갔던 것 같다. 그땐 ‘탈 코르셋’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살까 싶었는데, 게임 회사에 들어가서 현실을 깨달았다. 젊은 남성들이 주소비층인 게임 업계엔 여성 혐오가 심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되는 경우도 봤다. 대체로 비정규직이었다. 사내에서 성희롱을 당하고도 침묵했는데, 1년 뒤 후배가 같은 사람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내가 침묵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했으면 피해를 안 겪었을 텐데,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IQ 156 이상 멘사 회원, 게임에 빠지다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첫 직장은 게임 회사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썩 잘했다. 대학 때 게임 동아리 활동을 했고, 게임 회사에 인턴으로 채용됐다. 1년 있다가 게임 회사 ‘스마일 게이트’에 입사해 3년 반 일했다. 주로 마케팅 기획을 했다.”

-MZ세대의 정서를 이해하려면 게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

“게임은 틀리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과 다르다. 퀘스트(게임에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끝내면 아이템으로 즉각 보상도 받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상받을지조차 예측할 수 없는 현실보다 공정하다.”

-’공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각자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것.”

-그런데 남자 친구를 통한 ‘대리 게임’ 논란이 있었다. 불공정 행위를 한 사람이 어떻게 공정을 얘기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2014년에 한 ‘대리 게임’은 분명 경솔하고 잘못된 행동이었다. 거듭 사과하고 반성한다. 그런데 아무리 사과하고 증명해도 비난을 위한 논란 생산은 끊이질 않는 것 같다. 답답하지만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회사에선 왜 해고됐나.

“게임사가 유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노동권 보장이 안 된다. 고용 불안, 장시간 노동, 수직적 조직 운영 문제가 꽤 심각하다. 밤에도 사무실 불을 밝히고 야근해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란 말도 있다. 서로 울타리가 되어 불합리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무렵, 판교 IT 업계 최초로 네이버 노조가 생겼다. 자극을 받아 사내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모아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후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 부장으로 일했다. 어떤 일을 한 건가.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 IT 업체 노조가 가입된 곳이다. 구글에 민주노총 이미지를 검색해 보면 아저씨, 주먹, 빨간 머리띠가 나온다. ‘아재 이미지’를 바꾸는 것부터 했다. 홍보물엔 궁서체 금지. 주먹 사진도 절대 넣지 말라고 했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한테 주먹 이미지를 박아 투쟁이라고 쓴 전단을 주면 누가 읽겠는가.”

-노동 문제엔 원래 관심이 있었나.

“어머니가 공장 노동자였다. 하청업체 비정규 생산직, 중년 여성 노동자. 세상의 불평등이라는 게 다름 아닌 우리 엄마가 겪는 일이더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분배 구조 개선, 비정규직, 성차별 문제가 해소되면 우리 엄마 삶도 나아지겠더라.”

류호정 의원은 잘 웃어서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유복하게 자란 것 같지만, 어린 시절 지독한 가정 폭력과 가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에게 정치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기”라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력서를 보니 ‘멘사’ 회원이라고 돼 있던데?

“쑥스럽지만 그렇다. 대학 때 보드 게임 동아리에 가입하려 했더니 멘사 테스트 통과를 해야만 받아주더라. 통과 기준이 I.Q 156이니 그건 넘는다는 얘기다. 상세 I.Q 를 알려면 돈을 추가로 내야 하더라. 그렇게까지 알 필요는 없어서 안 했다(웃음).”

-공부를 잘했나.

“잘해야만 했다. 도망치려면.”

-도망이라니?

“어린 시절 어머니와 나, 두 살 터울 쌍둥이 남동생이 매일같이 아버지 폭력에 시달렸다. 열심히 공부해서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는 것, 엄마를 구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고생 하나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데.

“첫 자취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 언덕 두 개를 올라가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4층의 고시원 크기 방에 살았다. 옷장 들어갈 데도 없어 침대 위로 옷을 걸어놓고 겨우 잠을 잤다. 형편이 어려워 삼 남매가 한꺼번에 대학 다니기도 어려웠다. 돌아가며 휴학을 했다. 취직해 정규직이 됐을 때, 대출해 어머니께 월세 방을 얻어 드렸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진짜 ‘독립’시켜 드린 것이었다. 아, 가족 얘기를 하니 멍해진다.”

지난해 출사표를 던지며 류호정은 “개천의 용이 아니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 아니, 개천인지조차 구분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폭력과 가난이 스친 삶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의원님 방' 고정관념을 깨는 스타트업 감성의 류호정 의원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꿈? 퍼포먼스 정치 그만하는 것

-정의당에 정의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조국 사태 때 명확하게 메시지를 내지 못했던 게 컸던 것 같다. 그것이 불공정이 아니면 무엇인가.”

-‘민주당 2중대’란 평은 어떻게 생각하나.

“총선 땐 그런 얘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연히 다른 당이며, 민주당은 의석수 과반을 차지한 집권 여당이다. 본인들이 필요하면 일방 독주해 법안을 통과시켜 버리면서, 협조를 구해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국민의힘 핑계를 대면서 안 해준다.”

류호정은 지난 국감 스타 중 하나였다. 삼성 직원이 기자 출입증으로 국회에 무단 출입한 것을 밝혀내고 호통치는 모습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국회에서 이런 장면 정말 오랜만에 본다”며 칭찬했다. 최근 타투업 합법화는 박용만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이 지원 사격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비동의 강간죄’ ‘IT업계 포괄임금제 금지법’ 등 법안 22개를 발의했다. 최근 발의한 ‘알고리즘 투명화 법’은 시대 흐름을 발 빠르게 포착한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가 적성에 맞나.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행동하지 않는데 거저 바뀌는 것은 없다는 진리도 깨닫고 있다.”

-일상의 정치를 강조하는데,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다루는 의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대선 그림 그리고 당의 큰 전략을 수립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의정 활동이 차곡차곡 쌓여 정치인 류호정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치인으로서 꿈이 있다면?

“일단 재선 정치인이 되고,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되는 것.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머릿수 채우려고 별의별 쇼를 안 해도 되니까. 나도 ‘퍼포먼스 정치’ 그만하고 싶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