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일병’ 우상혁입니다.”
군복 차림으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이 꼿꼿하게 거수경례하며 관등 성명을 댔다.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도전을 끝낸 뒤 했던 바로 그 포즈다. 키 188㎝. 화면보다 훨씬 크고 삐쩍 말랐다. 얼핏 키 큰 조승우 같다. “그런 말 많이 들었습니다! 조승우 배우, 드라마 촬영하는 모습을 실제로 봤는데 좀 닮은 것도 같습니다!” 군기 잔뜩 들어 ‘다나까 체’로 말하는 우상혁이 낯설다. “경기 때 기쁨에 방방 뛰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고 하자, 그제야 전 국민을 흐뭇하게 한 ‘스마일 일병’의 환한 미소가 나왔다.
우상혁은 도쿄올림픽이 낳은 최고 스타 중 한 명이다.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뛰어 종전 한국 기록(이진택·2m34)을 무려 25년 만에 깬 동시에, 한국 역대 올림픽 육상 트랙·필드 사상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국민은 스물다섯 청년이 뿜어낸 무한 긍정 에너지에 열광했다. 대중의 관심 밖인 비인기 종목에서, 메달은 못 땄지만 최선을 다해 뛰고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은 ‘메달지상주의’ 대한민국에 뭉클한 감동을 던졌다. “금은동보다 더 귀한 다이아몬드 메달”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주는 선수”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지난 18일, 귀국 후 2주간 자가 격리를 마치고 군에 복귀한 우상혁을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났다.
◇거수경례의 정석? 샤워하며 매일 연습
-2주 격리 기간은 어떻게 보냈나.
“인천에 있는 김도균(42) 코치님 댁에서 2주 있었다. 경기 앞두고 체중 관리 때문에 ‘먹방’ 보면서 잠들었는데, 귀국해선 매일 밤 따끈따끈한 2시간 47분짜리 ‘높이뛰기 영화’를 보고 잔다.”
-높이뛰기 영화가 개봉했나?
“도쿄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에서 이번 올림픽 높이뛰기 결선 경기 풀 영상을 올려뒀다. 나도 한국 육상 역사를 새로 썼지만, 109년 만에 올림픽 공동 금메달이 나온 종목 아닌가.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다.” 이 ‘영화’에서 해설자는 강력한 ‘신 스틸러’ 우상혁을 ‘해피 맨(happy man)’이라 부른다.
-마지막 2m39 도전에 실패하고 한 거수경례가 화제였다. 미리 계획한 건가.
“경기 시작과 끝은 거수경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군인 신분이란 걸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각이 살아있는 경례’라고 찬사가 많던데.
“간부님들도 자세가 좋았다고 칭찬해주시더라(웃음). 사실 올림픽 준비 때문에 지난 3월 입대해 훈련소에서 한 주, 체육부대에서 한 주 있다가 바로 미국 전지훈련을 갔다. 경례를 제대로 배울 시간이 없었다. 형한테 계속 물어보고 샤워할 때도 수없이 연습했다.”
-형에게 배웠다고?
“두 살 위 형이 직업 군인이다. 해외 파병 부대인 한빛부대 소속 부사관인데, 곧 남수단으로 파병 간다.”
-경기 직후 “메달을 아쉽게 놓쳐 조기 전역이 무산돼 아깝지 않으냐”는 취재진 물음에 “군대 간 덕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답했더라.
“슬럼프로 힘들었는데 군대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부대 입구에서 만난 한 장병이 “우상혁 일병 덕에 며칠 전 불닭볶음면을 잔뜩 실은 트럭이 왔다. 우리 부대 최고 스타다, 스타!”라고 흥분하더라.
“선수촌에 불닭볶음면이 있어서 가지고 와 방에 쌓아뒀다. 체중 조절 때문에 샐러드와 소스 없이 생면만 먹을 때였는데, 시합 끝나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다가 먹었다. 그게 기사화되면서 라면 회사에서 부대로 보내줬다더라(웃음).”
◇'괜찮아?’ 경기 몰입해 기억도 안 난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 결과,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로 김연경, 안산, 김제덕 다음으로 4위에 꼽혔다. 인기 이유가 뭘까.
“난 ‘멋있어서’라고 생각했는데 댓글을 보니 ‘순수하다’ ‘귀엽다’고 하더라. 대중 의견이 옳지 않을까. 하하!”
-2m39 1차 시기를 실패한 다음 ‘괜찮아’라고 했다. 그 말에 위안을 얻었단 사람이 많다.
“경기 끝나고 친구들한테 온 ‘거수경례 대박’ ‘괜찮아 대박’이라는 문자가 쏟아졌다. 경례는 알겠는데 ‘괜찮아’가 뭔가 했다. 나중에 영상을 보고 알았다. 경기에 몰입해 그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몸 풀다가 아이돌 춤 추는 장면을 봤다.
“스타디움에서 갑자기 ‘잇지’ ‘블랙핑크’ 등 K팝이 흘러나왔다. ‘한국 선수가 나밖에 없는데 한국 노래가? 와, 대박!’ 하면서 그냥 췄다. 음악 취향은 아이돌 노래보다는 힙합. 비트가 높이뛰기 박자 맞출 때 도움이 되어서다. 플레이리스트에 힙합 가수 포스트 멀론, 다베이비 노래가 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도 하고, 세리머니도 적극적으로 하더라.
“준비된 사람이 자신을 보여주는 건 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들 지켜봐’란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에요’라고 카메라에 대고 말할 때부터 텐션이 최고조였다. 그 순간을 인증 샷으로 남기겠다는 마음이었다.”
-인증 샷?
“한국에서 TV로 생중계하는지 몰랐다. 비인기 육상 종목 중계를 제대로 해준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안 해줄 줄 알았다. 나중에 짧게 편집되어서라도 나오면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 봤을 줄이야!”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씩 웃는 모습에 힐링받는 사람이 많았다. 무슨 생각을 했나.
“장대한테 말을 걸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근데 너 오늘은 나한테 안 되겠다. 낮네 낮아~. 나, 오늘 너 넘는다!’ 아무리 올려도 그날은 높이가 똑같아 보였다. 그런 날이 있다.”
-흥에 겨워 박수 유도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높이뛰기 하는 미국 친구가 날 응원하러 경기장에 왔다. 관중석을 채우고 있던 외국 스태프들이 다 날 응원했다고 하더라. 일본의 전 유명 테니스 선수가 관중석에서 따라서 경례하고 손뼉 치는 모습도 나중에 봤다. 일본도 날 인정하는구나 싶어 뿌듯했다.”
-‘레츠 고, 우(Let’s go, Woo)’ ‘점프 하이어(Jump higher)’ ‘올라간다’ 같은 주문을 쉬지 않고 읊는다.
“경기 때 혼잣말로 중얼중얼하면서 긴장을 푼다. 미국서 훈련할 때 친구들이 ‘레츠 고, 우’ 하는데 소름이 싹 돋더라. 그때부터 그 구호를 쓴다.”
-‘올림픽 프로 즐겜러(게임을 즐기는 사람)’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경기를 즐기던데.
“리우올림픽 때 몸 관리한다고 방에만 있었다. 나중에 보니 영상도, 사진도 거의 없어 후회됐다. 이번 올림픽은 재밌게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준비된 사람은 뭘 해도 되고, 준비 안 된 사람은 뭘 해도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선수촌을 돌아다니면서 기념 배지도 바꾸고 선수들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첫날 조코비치를 보고 깜짝 놀라 같이 사진을 찍었다.”
◇머리맡에 두고 잤던 2m35, 강박 버렸더니 성공
-‘금메달 못지 않는 4위’ 라고 하지만 아쉬움은 없나.
“아쉬움이 1이라고 하면 만족이 99다.”
-연습 때 최고 기록은 얼마나 나왔나.
“높이마다 쓰는 힘의 강도가 다르다. 그 사이 2m31(올림픽 전 개인 최고 기록) 이하 데이터만 있었다. 2m33은 뛰어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못 넘었다. 2m35, 2m37, 2m39는 연습도 안 해봤다. 어느 정도 힘을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왔다. 그냥 전력으로 뛰었다. 연습 때 뛰어봤다면 발목에 무리가 가서 이미 부러졌을지 모른다. 2019년 정강이 부상을 당한 뒤로 발목 부하가 빨리 온다. 역설적이지만 그 높이를 연습 안 했기에 올림픽 당일 200퍼센트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 신기록을 25년 만에 갈아치웠다. 2m35를 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발 구르는 순간 선수들은 안다. 내 경우 트랙이 ‘쏴악’ 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무조건 넘었구나 생각했다. 사실 공중 동작을 제대로 못 했는데 점프 힘이 워낙 좋아 넘어간 거다. 완벽하게 아치를 못 그려 살짝 걸렸다.”
-한동안 2m35라는 숫자를 종이에 써서 머리맡에 두고 잤다고?
“스무 살 언저리까지 그랬다. 이진택 선생님이 내 나이 때 얼마나 뛰었는지 항상 비교했다. 중·고등학교 땐 내가 늘 1~2㎝ 정도 높았다. 한국 기록을 빨리 깨고 싶어 머리맡에 숫자 적은 종이를 두고 잤는데, 잘 안 되더라. 그때 깨달았다. 기록은 수직 상승이 아니라 ‘파도’라는 걸, 굴곡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강박을 버리기로 하면서 쪽지도 더는 두지 않았다.”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어린 시절 택시에 발이 치여 오른발을 백 바늘 정도 꿰맸다. 왼발이 280㎜, 오른발이 270㎜로 1cm 정도 차이 나는 ‘짝발’이다. 높이뛰기 선수치고 키도 작다. 신체 조건이 불리해 한국 신기록은 절대 못 깬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보란 듯이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진택이 “비가 와도 좋은 기록을 낸 선수”라고 했다.
“비가 왔으면 우승했을 거다. 하하! 대부분 선수가 비가 오면 미끄러져서 부상당할까 봐 안 뛴다. 나는 비가 와도 뛸 수 있게 연습했다. 도쿄에 비가 많이 오는 걸 노렸다. 예선 날 오전 비가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록 좋은 선수 몇 명이 탈락했다. 결선 땐 아쉽게도 화창했다.”
기적은 올림픽 무대 직전부터 시동을 걸었다. 올림픽 진출권(세계랭킹 32위 이내, 와일드카드 한 장)을 결정하는 랭킹 포인트 합산 마지막 날인 6월 29일, 극적으로 개인 최고 기록 2m31을 넘어 랭킹 31위를 기록했다. 4년 만에 1㎝ 높이 뛴 것이다. 그는 “가만히 있는 높이에 절대 지고 싶지 않아 포기하지 않았더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발표 당일 어땠나.
“7월 1일 자정에 공식 발표가 있는데 빨래를 널고 있었다. 초조하게 같이 발표를 기다리던 코치님이 잠깐 바람 쐬러 나가셨는데 바로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상혁아, 통과했어!’ 목이 터져라 외치시더라. 휴대폰으로 확인하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2019년 무렵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고?
“2017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2m30을 뛰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는데 이후 기록이 2m10대로 떨어졌으니 말 다 했다. 자존심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훈련도 하기 싫고 술만 먹었다. 그러다 부상까지 겹쳤다.”
-그때 김 코치를 만났다고? ‘벼랑 끝에 있는 나를 구해줘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했던데.
“그전엔 무조건 뛰었는데 코치님은 뛰고 싶어서 미치겠어도 못 뛰게 하시더라. 극도로 뛰고 싶을 때 ‘오늘 한번 뛰어볼까’ 하셨다. 욕심부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의 중요함을 가르쳐주셨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지름길을 가려 하면 안 된다는 것.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도(正道)를 차분히 걷다 보면 행복이 군데군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앞길이 창창한 선수인데, 급한 마음에 지름길을 탔다가 낭패 보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안산 금메달 만져 보고 기운 받아
우상혁은 충북 증평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국가대표 동료가 지어준 별명은 ‘증평 날다람쥐’. 장대를 넘을 때 날다람쥐 같은 모습이라 붙었단다.
-높이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달리기가 좋아 부모님께 육상을 하고 싶다고 졸랐다. 아버지가 무작정 교육청에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때 장학사님이 친분 있던 코치님을 소개해 주셨다. 첫 은사인 윤종형(62) 감독님이다. 감독님이 계시던 대전 중리초등학교로 가 테스트를 해본 뒤 전학 갔다. 육상 하고 싶어서 전학까지 오는 아이는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달리기가 아니라 높이뛰기 선수가 됐다.
“달려 보라고 해서 뛰었더니 달리기로는 영 안 되겠다고 하시더라(웃음). 옆에 높이뛰기 하는 형들을 보면서 한번 따라 넘어보라고 하셨다. 가위뛰기로 곧잘 넘었다. 일주일 만에 배면뛰기도 했다.”
입문 1년여 만에 전국대회를 휩쓸며 유망주로 성장했다. 2013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높이뛰기에 모든 인생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고교 졸업 후 여러 실업팀에서 입단 제의가 왔지만, 윤 감독과 함께한다는 조건을 받아준 서천군청을 택했다. 우상혁은 은사를 모시기 위해 자신의 연봉까지 삭감했다. 2006년부터 13년간 그를 가르친 윤 감독을 우상혁은 ‘아버지’라고 부른다.
-야구, 축구 같은 인기 구기 종목을 할 생각은 없었나.
“집안이 그런 운동 할 형편이 안 됐다. 아버지가 건설 관련 일을 하셨는데 그 무렵 잘 안 됐다. 육상이 기초 종목이라 나라에서 훈련·용품 지원을 많이 해준다. 그래서 집안 형편 어려운 친구들이 육상 선수를 많이 한다.” 비인기 종목이지만 부모님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며 거의 모든 경기를 보러 갔다. 부모의 정성이 텅 빈 관중석을 대신했다. 결선 직후 전화를 걸었더니 부모님이 목이 메어 말씀하셨다. “상혁아, 장하다. 누가 뭐래도 우린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올림픽에 나간 국가대표 중 친한 선수가 있나.
“펜싱 선수 오상욱이 대전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친구다. 신기하게 상욱이 남동생(오상혁)이 나랑 이름이 같고, 우리 형(우상욱)은 상욱이랑 이름이 같다. 상욱이가 금메달을 따고 먼저 연락해 자신감을 줬다. 근대 5종 전웅태 형도 친하다. 형이 요즘 예능 방송에 출연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웃음). 군인이라 방송에 못 나가기도 하지만, 서둘러 나가고 싶지도 않다.”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김제덕 선수하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데.
“양궁 선수들이 귀국하는 날 우연히 선수촌에서 봤다. 결선 날이라 사진 찍고 악수라도 해서 기운을 받고 싶었다. 마침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금메달을 걸어야 한다면서 안산 선수가 캐리어에 있는 금메달을 배낭에 넣더라. 코치님이 옆에서 금메달 한번 봐도 되느냐고 물으니 안산 선수가 열어서 만져 보라더라. 김제덕 선수도 목청껏 ‘파이팅’을 외쳐줬다. 덕분에 기를 잔뜩 받고 갔다. 선수촌 들어온 첫날, 예선 탈락한 꿈을 꿨다. 코치님이 ‘꿈은 반대’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았다(웃음).”
◇걸어 다니는 육상 백과사전
우상혁은 ‘걸어 다니는 육상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틈만 나면 구글 번역기를 돌려 육상 관련 외신을 뒤져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김 코치님 와이프인 허들 선수 출신 정혜림 누나가 이번에 SBS 방송 해설위원을 했는데, 나한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고 했다.
-공동 금메달을 수상한 카타르의 무타즈 에사 바르심, 이탈리아의 지안마르코 탐베리 선수와 찍은 기념사진이 화제였다.
“나한테 먼저 ‘오늘은 너의 날이다. 레전드였다’고 해줘서, ‘너희야말로 레전드’라고 답했다. 탐베리는 내가 이름도 없을 때 인스타그램 팔로를 먼저 해준 착한 친구다. 영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외국 친구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번역기 돌려 유명 선수들하고 어떻게 운동하는지 정보도 주고받는다.”
-키가 181㎝인데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스웨덴의 전설’ 스테판 홀름이 우상이라고 들었다. 홀름이 팔로를 해줘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했던데.
“홀름 부인이 한국계 입양인이다. 아들도 높이뛰기 선수인데 알고 지낸다. 아들이 축하 인사를 해 ‘너희 아버지가 내 롤모델인 거 알지?’라고 했다. 그랬더니 바로 홀름이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하고, 스웨덴에 꼭 와서 얼굴 보자’고 하더라.”
올림픽 전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4000명 정도였는데 최근 7만7000여 명으로 늘었다. 얼마 전 라방(라이브 방송)을 했더니 2만명 정도 들어왔더란다.
-훈훈한 ‘사복 패션’이 화제던데.
“한때 옷에 돈 많이 썼다. 써 봐야 자기 ‘핏’을 안다. 하하. 이젠 비싼 옷은 안 산다. 믹스 앤드 매치해서 입는다.”
-광고 모델 제의도 왔나.
“몇몇 기업에서 문의했다. 감사하지만, 군인이라 영리 활동은 금지돼 있다. 내년에 제대하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신다면 하겠다고 했다(웃음).”
-취미가 뭔가.
“카페·맛집 탐방과 캠핑. 커피 마니아다. 커피는 역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MZ세대니까.”
-대한육상연맹에서 원래 포상금을 2000만원 주려고 했다가 특별포상금으로 1억원을 주기로 했다. 어디에 쓸 건가.
“갑자기 생긴 돈이라 얼떨떨하다. 저축해서 나중에 집 장만하는 데 써야 하지 않을까?”
-높이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경기인 줄 몰랐다는 사람이 많다. 높이뛰기의 매력이 뭔가.
“맨몸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이라는 것. ‘땅이 잡아당기는 느낌’이 늘 들었는데 6월 29일 2m31을 넘는 날, 처음으로 ‘땅이 밀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삶의 중력’에 억눌려 있는 사람에게 한마디 해달라.
“힘들고 무기력할 땐 내가 무의식중에 ‘괜찮아’라고 했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야, 괜찮아’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보시라. 억지웃음도 자꾸 지어보니 진짜 웃을 일이 생기더라. 자, 우상혁을 따라 해봐라. ‘이제 시작이에요, 레츠, 고!!!!’”
우상혁은 격리 중에 숫자 ‘238’과 ‘2024’를 조합해 메일 아이디와 각종 비밀번호를 바꿨다고 했다. 238은 본인의 목표 높이. 높이뛰기 선수들에겐 키에서 50㎝를 더 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2024는 파리올림픽이 열리는 해다. 그의 시계는 이미 도쿄의 단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꿈에 맞춰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