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은행을 다니다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는데요, 사정이 어려워서 월급이 안 나온다고 했어요. 남편이 술을 마신 후 길에 쓰러져 있다는 연락을 경찰로부터 받았어요. 나를 폭행하고 자해까지 시도했어요. 더는 같이 못 살겠어요.”
주부 김모씨는 45세 전업주부다. 아이 둘이 있지만, 10년 넘게 이어오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작년 말 상담소를 찾아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김씨처럼 이혼을 고려하는 여성 가운데는 40대 이상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이 단체를 찾아 상담한 여성은 모두 326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1044명(32%)이 40대고, 50대는 829명(25%), 60대 이상은 728명(22%)이었다. 이는 20년 전인 2000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에 이혼 상담을 하러 온 여성은 30대(37.9%)가 가장 많았다. 30대 비율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2010년에는 31.7%였는데, 지난해엔 절반인 15.7%로 떨어졌다. 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부장은 “보통 결혼 초기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참다가 10년이 흘러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다시 위기가 오는데, 결혼 연령이 30대로 늦어지면서 40대 여성이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혼 상담에 나선 남성(979명) 가운데는 60대 이상(43%·426명)이 가장 많았다. 이 비율은 20년 전에는 5%밖에 되지 않았고, 10년 전에도 10%에 불과했지만,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웅진 결혼정보업체 선우 대표는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황혼 이혼이 보편화하면서 남성들이 이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하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남성들의 경우 결혼한 지 20여 년이 지나면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거부감이 줄면서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이혼하겠다고 나선 30대 남성의 비율은 급감했다. 2000년과 2010년에는 각각 전체의 38.4%, 31.8%가 30대였는데, 작년에는 7.5%에 그쳤다. 이 대표는 “과거 30대는 결혼 7~8년 차인 경우가 많았지만, 결혼을 늦게 하면서 현재의 30대 남성은 신혼인 경우가 많아 이혼을 생각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이혼하겠다는 이유로 여성은 ‘남편의 폭력’(1573건)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과거에는 성격 차이 등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가정 폭력이 더 많아진 탓이라는 게 상담소의 설명이다. 남성의 경우 51.3%(502명)가 별거나 아내의 일방적인 가출로 인해 부부 관계가 파탄 났기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아내의 가출을 이유라고 답한 남성의 비율은 2019년 15.8%에서 2020년 23%로 크게 늘었다. 박소현 부장은 “남편의 폭력이 늘어나면서 여성이 집을 나가는 경우가 늘다 보니 아내의 가출을 이혼 고려 이유라고 말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여성은 참고 살기보다 나가서 독자적으로 인간답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