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분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번 보선(4·7 재·보선)을 통해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4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KB부동산 기준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5751만원.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평균 가격인 6억1755만원에서 5억3996만원(87.4%) 오른 것이다. 정부는 4년 동안 26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폭등했고 전·월세난은 심화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 평가자들이 가장 크게 꼽은 실정은 ‘부동산 정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문제가 내년 대선의 민심 향방을 가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선 주자들도 앞다퉈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정책들인지 <아무튼, 주말>이 살펴봤다.
◇與, 너도나도 공공주도 ‘공급 폭탄’ 약속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의 최대 원인은 부동산이다. 하나, 둘, 셋!” 지난달 5일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TV토론회에서 사회자가 이렇게 외치자 8명의 후보 전원이 동그라미 팻말을 들었다. 여권 주자들도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민심 이반의 주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주택’을 들고 나왔다.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수 있는 고품질 공공임대주택을 표방한다. 경기도가 추진 중인 기본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84㎡ 아파트는 월 임대료가 63만4000원이다. 이 지사는 이런 기본주택 100만호를 포함해 임기 내 주택 25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기본소득토지세(국토보유세) 도입도 제시했다. 부동산 소유자에게 세금을 매기고, 세수 전액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문 정부가 제시한 205만호 공급안을 계속 추진하면서,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이전해 해당 부지에 주택 3만호를 공급, ‘제2의 판교’ 같은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강남·분당 등의 민간 아파트와 경쟁하는 고급형 아파트를 공공 주도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택지소유상한법 등 토지독점규제 3법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부동산 정책은 ‘토지 공개념에 기반한 지대개혁’으로 축약된다. 주자 중 유일하게 공급이 아닌 과세 강화에 방점을 뒀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기 위해 주택 과다 보유자 등을 위주로 보유세를 강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정세균 전 총리는 공공주택 130만, 민간 150만호 등 280만호를 공급해 주택 가격을 2017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고 했다. 또 국·공립학교 부지의 용적률·건폐율을 높여 1~5층은 학교, 6층 이상은 주거공간으로 쓰는 ‘학품아(학교 품은 아파트)’ 임대주택 20만호를 짓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초깔아(초등학교를 깔고 앉은 아파트)냐’ ‘청와대 위에 짓지 그러냐’ 등의 조롱이 나왔다.
박용진 의원은 고밀도 개발과 민간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한 ‘좋은 집 충분 공급’, 건설 원가 수준의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되 공공과 시세차익을 공유하는 ‘가치성장주택’ 등을 공약했다. 또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에 통폐합해 김포공항 부지에 주택 2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여권 주자들의 주택 대규모 공급안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는 물론 시장 수요자들도 의문을 느끼고 있다”며 “공항 이전 공약도 인근 주택 가격 자극 등 부작용 검토는 잘 돼 있지 않고, 보유세 강화 등 투기 수요 억제책은 무주택자·임차인에게 고통이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野, ‘反문재인’ 외치며 규제 완화 강조
야권 주자들의 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부동산 문제는 삼척동자도 (해법을) 안다”(윤석열), “미친 집값과 전월세는 문 정부 최악의 정책 실패”(유승민), “이 정부가 하는 것과 반대로만 하면 부동산 문제를 풀 수 있다”(최재형)고 외친다. 이들의 부동산 정책 1순위는 문 정부가 조여놓은 부동산 규제를 푸는 것이다. 민간 주도의 공급도 강조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아직 공식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민간 주도의 공급 확대, 서울 용적률 대폭 완화, 도심 재개발·재건축 허용, 청년 대출 규제 완화, 양도세 인하 등 세제 개편 등이 정책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캠프의 송석준 부동산정책본부장은 본지 통화에서 “후보자의 철학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완성된 로드맵을 곧 국민께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도심 고밀도 개발, 공공부문 ‘쿼터 아파트’ 도입을 공약했다. 쿼터 아파트는 강북 지역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시세의 4분의 1 수준으로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것. 공영개발로 재개발해 토지는 국가가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분양제를 통해 이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양도세·취득세 완화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도 시사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수도권 민간주택 100만호, 공공임대주택 50만호를 건설하겠다고 했다. 기존 도심의 재개발·재건축을 촉진하기 위해 서울의 용적률을 400%까지 완화하겠다고 했고, 무주택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80%까지 완화, 생애 최초 주택구매자·신혼부부에 대해서는 개인당 2억원까지 저리 대출, 취득세·양도세 완화, 임대차 3법 폐지 등도 공약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는 문 정부의 대표적 불량 규제로 분양가 상한제 및 대출 규제, 임대차 3법 등을 꼽으며 “문재인 정부가 이념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게 부동산 지옥을 만든 원인”이라고 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일명 ‘주택 국가찬스’ 정책을 제시했다. 신혼부부가 생애 첫 주택을 살 때 공동투자 형식으로 집값의 50%까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연한 폐지, 재개발 노후도 기준 폐지 등을 통해 부동산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고, 양도세 완화와 임대차 3법 폐지도 약속했다.
일부 야권주자들이 그저 ‘문재인 때리기’에만 집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야권 주자들의 정책은 시장에 대한 현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문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이는데, 일부 공약은 다소 극단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평했다. 다만 이 교수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폐지 등 정비사업 활성화 여건을 만들어주는 공약 등은 실현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경영이 웃고 갈 ○○○의 황당한 부동산 정책’ ‘△△△ 뽑으려 했더만 부동산 때문에 안 되겠네’ ‘□□□ 공약 보니 한숨 나옴. 이런 사람이 대선 주자라니’…. 네이버카페 부동산스터디에 최근 올라온 글들이다.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에 실망한 글이 많았다.
‘집이 언제나 이긴다’의 저자 에이드리안 킴은 ‘어떤 정책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 보는가’란 질문에 “(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장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답했다. 우선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고, 부동산 세제와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집값은 정책의 결과다.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많이 공급하면 집값은 내린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집값 잡겠다고 투기지역을 정하고 세금을 때리나? (정부가) 남이 돈 버는 걸 배 아파하면 공급은 일어날 수 없다. 부동산 개발 이익을 인정하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