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상관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추미애씨라고 부르는 용기는 가상합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씨(氏)’ 호칭을 두고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추 전 장관 캠프는 지난 12일 ‘한동훈씨가 해야 할 일은 궤변이 아니라 반성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입장문을 냈다. 한 검사장도 기자단에 입장문을 내 ‘추미애씨는 도대체 뭘 보고 다 무죄라고 계속 거짓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맞받았다. 그러자 2차전이 벌어졌다. 추 전 장관 캠프가 ‘상관에게 ‘씨’라고 부르는 용기가 가상하다’며 비꼬았고, 한 검사장은 ‘추미애씨를 추미애씨라 부르는데 ‘가상한 용기’가 필요한 사회가 되면 안 된다’고 반격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씨’를 쟁취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상대를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는 호칭 ‘씨’가 무례하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아랫사람도 자신이 ‘씨’라고 불리는 것을 불쾌해하는 분위기다. 급기야 씨 대신 ‘님’이라 부르거나, 이름 뒤에 ‘분’이나 ‘선생님’을 붙이는 등 과도한 높임 표현도 남발되고 있다. ‘씨’는 어쩌다 부르기 민망한 호칭이 되고 말았을까?

◇ 김대중씨는 되고, 노무현씨는 안 되나

‘씨’는 높임 표현이지만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말로, 그 자체로 모순적 측면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씨를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이라 정의했지만 ‘공식적·사무적인 자리나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가 아닌 한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고 덧붙였다.

지금과 달리 ‘씨’가 의심의 여지 없는 높임 표현일 때도 있었다. 24년 전에는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씨’를 붙였다. 1997년 12월 본지와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겨레 등은 각 1면에 ‘김대중씨 당선’이라고 썼다. 전임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그 외 총리나 장관처럼 일반적으로 높이는 대상을 씨로 지칭했다. 그러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는 ‘씨’ 대신 대통령 당선자, 후보자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씨 대신 다른 존칭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한겨레는 오랜 전통을 깨고 2017년 대통령 부인의 존칭을 ‘씨’ 대신 ‘여사’로 바꿔야만 했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씨로 호칭한 한겨레를 두고 일부 독자들이 “대통령을 무시하냐”는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추미애 전 장관 캠프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두고 ‘상관에게 ‘씨’라고 부르는 용기가 가상하다’고 한 것도 ‘씨’에 더 이상 존대를 느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

◇‘임’에 치이고, ‘분’에 치여서

씨가 높임 기능을 잃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많은 이들이 ‘호칭’과 ‘지칭’을 헷갈려서다. ‘씨’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일상에서 ‘호칭’으로 쓸 때는 동료나 아랫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다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 기사 등에서 대상을 ‘지칭’할 때는 높임 표현이 된다. 그런데 씨를 전부 아랫사람에게 쓰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아 지칭으로 쓰는 씨의 존대 의미가 약해졌다. 기사에서 전직 대통령 이름 뒤 씨를 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대상을 높인 것이다. 흉악 범죄자처럼 높여선 안 될 사람을 이를 때는 아예 씨를 빼고 이름만 쓰기도 한다.

둘째 이유는 다른 높임 표현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상대를 부를 때 ‘사장님’ ‘부장님’ ‘교수님’과 같이 직함에 ‘님’을 붙여 높이기도 하고, ‘아내분’ ‘자제분’ 등 ‘분’을 붙이기도 한다. 심지어 이름 뒤에도 분을 붙여 과도한 높임을 하는 사례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잘못된 용례로 올라와 있다. 이렇게 ‘씨’를 대체할 표현이 늘다 보니, 상대적으로 ‘씨’에 담긴 높임의 가치가 낮아졌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호칭 ‘씨’ 논쟁은 글말과 입말에서 쓰이는 ‘씨’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증폭된 측면이 있다”며 “상대방의 직책을 모르거나 애매할 때도 상대가 듣기 좋은 존칭을 사용하려다 보니 여러 높임 호칭, 지칭어가 생겨났고, 씨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왜 리오넬 메시씨라고는 안 하나

변화하는 ‘씨’의 존칭적 의미 때문에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보인다. 올해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호불호 갈리는 요즘 대학 문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대학 선배에게 ‘씨’라고 불러도 괜찮은 것인지 묻는 내용이었다. 게시 하루 만에 댓글 1204개가 달리며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같은 과도 아닌데 선배라 부르기 애매하면 씨라 부를 수 있지’ ‘한두 살은 괜찮지만 그 이상은 안 되지’ 등의 의견이 달렸다.

나이보다는 친밀감이라는 변수로 ‘씨’ 사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 졸업생 최은솔(25)씨는 “또래를 높일 때 ‘씨’보다는 ‘님’이라고 하는 편인데, 나이를 막론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씨’라 하면 무례한 듯해서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씨를 높임으로 쓸 수 있는 공적, 사무적인 자리가 어디까지인지 애매하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 3학년 차모(24)씨는 “대면 상황에서 윗사람에게 씨라 부르지 않는 건 알겠는데, 카톡이나 이메일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외국인 이름 뒤 ‘씨’를 붙여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도 남아있다. ‘리오넬 메시(34)는 FC 바르셀로나와 작별했다.’ ‘톰 크루즈는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모두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이나 총리 등 명확한 직책이 없는 외국인은 이름 뒤 씨를 생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흉악 범죄자 역시 존칭 박탈을 위해 씨를 생략한다는 점에서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국립국어원도 무엇이 맞는다 틀리다 뾰족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온라인 가나다에서 씨 호칭 관련 다수 질의에 국립국어원은 “(씨 사용과 관련해) 호칭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지 규범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신지영 교수는 “일제강점기 때 성별과 나이, 직급에 상관없이 ‘씨’로 부르자고 주장한 국어학자도 있었다”며 “현대 들어 씨의 활용에 변화가 생기고 일관성 없는 양상을 보이는데,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사회적 통념에 맞는 기준을 세우고 언어 공동체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