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를 없애자!” “통일부를 없애자!” 최근 정치인들의 논쟁이다. 영원히 존속되어야 할 기관(조직)은 없다. 시대적 소명을 다한 기관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시대적 특혜로 연명함은 국가와 국민의 불행이다.

풍수학인에게 없어져야 할 기관을 꼽으라면? 산림 및 환경 주무 부처, 그리고 인구 3만 명 미만에 재정자립도 10%가 안 되는 지자체이다. 왜 그러한가? 최근 10여 년 사이 국토 오염과 훼손에 ‘총대를 멘 장본인’이란 생각에서다.

지난 7월, 필자가 사는 전북 순창군의 벌목 현장. 순창 곳곳에서 대규모 벌목으로 여기저기 드러난 민둥산을 발견할 수 있다. / 김두규 교수

필자가 주소를 두고 있는 전북 순창 시골만이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다. 태양광 및 풍력발전 시설물이 국토 곳곳에 대못을 박고 있으며, 가축 축사들로 도랑물을 오염시키고, 냇물을 마르게 하였다. 벌목으로 여기저기 민둥산이 드러난다. 마치 1970~80년대 중등학교 남학생 머리를 ‘바리깡’으로 말끔히 밀어 놓은 모습이다. 전국 곳곳이 축사 난립으로 악취를 풍기는 것은 오래 전 일이지만, 태양광 시설과 대규모 벌목 현상은 최근 일이다. 태양광 시설과 벌목은 온실가스 흡수를 통한 ‘2050 탄소중립’이란 정부 시책 때문이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과 관련하여 이해되지 않는 것이 축사 신·증축 허가다. 그것은 ‘탄소중립’의 최대 적이기 때문이다. “소의 트림·방귀·배설물이 배출하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높은 온실효과의 주범이다.”(연윤열, 숭의여대 교수) 오죽하면 유럽에서는 메탄흡수용 소 마스크가 출시되었을까. 최근 필자가 사는 마을 인근에 대형 축사 신축 허가가 났다. 4개 마을 한가운데이자 가까이에 고등학교가 자리한다.(순창이 자랑하는 명문이다.) 원칙상 허가가 날 수 없는 곳인데 예외 조항을 근거로 허가를 내주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현장 실사를 했는지 물었다. “가보지 않았다. 항공사진으로 확인했다”는 답변이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순창군 공무원의 일회적 태만이길 바란다.

또 하나. 벌목이 ‘2050 탄소중립에 기여한다’는 뜬금없는 주장이다. 오래된 나무들은 온실가스 배출 억제력이 약하기 때문이란다. 학자마다 이견이 있는 가설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숲’은 힐링의 장소이자 피난처였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고 노래를 부르며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로서 이해가 안 된다. 하이데거(Heidegger)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환경 문제를 천착하는 박찬국 교수(서울대 철학과)는 “환경과 생태계의 위기” 주범으로 벌목과 오물 오염을 지목한다.

“옛날에도 산림을 남벌한 결과 산이 황폐해지는 경우가 있었고, 강과 길거리에 오물을 무분별하게 버려 주변 환경이 오염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환경 위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이다.”(‘환경문제와 철학’). 굳이 고목들이 문제가 된다면 간벌을 하면 된다. 오래된 숲을 간벌하면 아름다운 “숲속의 길[Holzweg]”(하이데거)이 만들어지며, 나무꾼과 산지기는 그 숲길을 걸어갈 것이다.

풍수이론의 근간인 ‘주역’은 말한다. “땅[大地]은 곧고[直], 올바르고[方], 크기[大]에 배우지 않아도 만물을 이롭게 해준다.” 땅이 ‘곧다[直]’는 뜻은 대지가 정직하게 만물을 키워줌을 말한다. 올바르다[方]는 것은 대지가 동식물마다 타고난 특성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게 해줌을 뜻한다. 크다[大]는 것은 대지가 무엇 하나 ‘왕따’시키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뱀·쥐·독초까지도 품는 큰 그릇임을 말한다.(김기현, ‘주역, 우리 삶을 말하다.’)

‘2050 탄소중립’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대규모 축사, 임야를 잠식하는 태양광 시설과 오래된 숲을 벌목하는 것은 대지를 죽이는 일이다. 죽은 땅에 사람이 살 수 없다. 사람 없는 대지 위에 ‘탄소중립’이 실현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