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너도 MZ세대?”라고 물으면 버퍼링이 걸린다. 그러니까 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브이로그(일상을 담은 영상)’를 일상으로 하는 MZ의 전형은 아니다. 유행하는 메타버스 앱을 깔아보긴 했다. 친구 하자며 다가온 유저에게 “몇 살이냐”부터 대뜸 묻는 난 어쩔 수 없는 ‘유교걸’. 열두 살 친구에게 내 나이를 밝히면 언니가 아닌 이모라 부를까 겁나서 그 뒤로 접속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MZ는 무지하게 큰 덩어리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출생자를 아우르니 20대부터 30대까지 모두 포함된다. 우리나라 20대는 673만명, 30대는 676만명이므로 총 1300만명. 국민 26%를 한 덩어리로 보다니! 아무리 MZ세대에 속한 사람이라도 ‘난 여느 MZ와는 다르구나’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은 ‘MZ는 이럴 거야’ 단정하지 않는 글, 그냥 1300만 MZ 중 한 사람이 쓴 글이다.

일러스트=안병현

나는 올해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한 MZ이기도 하다. 서른이 되기 전 항구도시에서 올라와 첫 자취방은 여의도였으면 했다. 교통 편리하고, 높고 멋진 건물 많은 데다, 길 가다 BTS 지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딱 내가 상상하던 서울이었다. 남들이 “너 어디 살아?” 물으면 “여의도 산다” 답할 생각에 뿌듯해하며 상경했을 정도다.

그런데 맙소사. 지방의 자취방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비쌌다. 살 만한 집 전세는 기본 억 단위였고 월세는 100만원이 넘었다. 결국, 여의도가 아닌 영등포역 앞에 둥지를 틀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원룸이었다. 교통의 요지이긴 했다. 길바닥 소주병 옆에 누운 노숙인,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 낡고 오래된 건물, 시장통 골목들이 한데 모인…. 지난달 <권력자들 부동산 내로남불일 때… 여인숙에선 “월세 밀려 야반도주”> 기사도 집 주변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대체 저런 곳엔 누가 살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그래도 희망은 놓지 않는다. 휴대전화에 깔린 부동산 앱 다X, 직X, 피XX, 네XX가 그 증거다. 길 가다 좋아 보이는 오피스텔, 아파트가 보이면 앱을 켜서 그 집 전세가 얼만지, 월세가 얼만지 찾아본다. 그림의 떡인 집 사진을 구경하면서 ‘여긴 침실, 저긴 옷방, 거실엔 깃털 장스탠드 놓아야지’ 상상하며 인테리어까지 끝낸다.

역시 ‘상경 MZ’인 친구와 지난주 치맥을 했다. 친구는 한 달 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집을 겨우 구했다. 그 집은 장점이 많았다. 창문을 열면 앞집 이웃과 하이파이브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고, 낡은 에어컨은 18℃로 낮춰도 시원하지 않아 냉방병 걱정이 없다. 친구는 ‘내 생애 종부세 걱정하는 날이 올까?’ 물었다. 이왕 돈 걱정할 거 다달이 내는 월세보단 종부세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 얼마나 좋겠냐며.

내 방은 기차역과 가까워서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자주 머문다. 8월 말 인턴 활동이 있으니 방 구할 때까지 며칠 잠 좀 재워 달라는 친구, 다음 날 면접을 앞두고 하룻밤 신세 지겠다며 올라오는 친구. 어디 광고를 낸 것도 아닌데 우리 집 위치나 집 구조까지 기막히게 알고 연락해온다. 난 거절할 수 없다. 이들은 왕복 교통비로만 8만원을 쓸 테고, 잠만 겨우 잘 정도의 숙소도 3만원은 기본. 끼니마다 밥 챙겨 먹으려면 와장창 돈이 깨질 테니까. 몇 개월 전만 해도 내가 겪었던 일이니까.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청년은 늘었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번 달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2020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중 주택을 소유해야겠다는 의식은 2019년 72.5%에서 2020년 78.5%로 증가했다. 하지만 최저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비율은 전체 청년 가구 중 7.5%나 된다. 혼자 살면서 부엌 있는 14㎡(약 4평) 방 한 칸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다.

최신 트렌드다 싶은 일엔 어김없이 MZ가 따라붙는다. 명품 시장 큰손이라는 MZ, 수천만 원대 미술품을 사재낀다는 MZ.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나만 몰랐던 건가’ 주눅 들기도 한다. MZ 안에도 나이, 출신지, 성별에 따라 다양한 개인들이 있다. 뉴스에 나온 MZ가 과연 1300만명 중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데 이들을 한데 묶어 ‘너도 MZ야?’ 묻는다. 나는 다시 버퍼링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