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새벽,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가결된다면, 드디어 더불어민주당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간 현 정권은 언론 개혁을 어떻게 할지 고심해 왔다. 자기들은 잘하는데,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안 해줘서 지지율이 김정은보다 낮게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엔 ‘이대로 간다면 대선도 위험하다’는 위기감을 느꼈으리라. 검찰 개혁이 검찰 힘을 빼서 다시는 권력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듯, 언론 개혁의 목표도 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 기능을 약화시키고자 함이었다.

일러스트=유현호

그 결과 만들어진 언론중재법은 해당 목표에 정확히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다음 조항들이다. ‘언론사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할 경우 최대 다섯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는 포털에 뜨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기자들이 걸핏하면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해 감옥에 가거나 많은 벌금을 무는 나라에서 언론중재법까지 통과된다면, 언론의 비판 기능은 크게 위축될 게 뻔하다. 합리적 의혹 제기조차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허위 보도’로 둔갑해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기자들을 압박할 테니 말이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마저 다음과 같은 걱정을 하겠는가?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그래 잘 걸렸어’라면서 이 법으로 소송을 건다고 하면 기자도, 데스크도, 회사도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이재명은 “5배로는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한 징벌을 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악법의 통과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우리나라 국회에는 안건조정위원회라는 게 있어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을 숙의할 수 있게 해놨다. 여당과 야당 3대3 동수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제1당이 의석수 믿고 법안 밀어붙이는 걸 막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별 소용이 없었으니, 열린우리당의 김의겸이 ‘야당 의원’으로 분류돼 안건조정위원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 출신이면서도 언론중재법을 열렬히 지지했고, 위원회에 나가서도 “위자료가 너무 적다”고 말할 만큼 언론에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3대3이 4대2가 되자 국민의힘 의원 두 명은 퇴장해 버렸고, 언론중재법은 그대로 통과됐다.

김의겸의 활약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기립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때, 자리에서 일어선 9명 중 한 명이 바로 김의겸이었다. 법안 통과 직후 대선 후보인 이낙연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다. “(김 의원이) 국회에 합류한 뒤 언론법이 속도를 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의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쳤을 것이다. 이날의 영광이 있기까지 김의겸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어왔으니 말이다.

한겨레 기자 시절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을 옹호하는 글을 쓰다 정권 교체 후 청와대 대변인 자리를 꿰찰 때만 해도 김의겸의 앞날은 밝아 보였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욕심이 문제였다. 재개발이 예정된 흑석동 상가 주택을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게 들통난 것이다. 아내 탓, 노모 탓을 하며 물러나지 않으려 애썼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결국 그는 대변인 자리를 ‘흑석’이란 호와 바꿔야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권력에 미련이 남았던 그는 국회의원으로 재기를 꿈꿨지만, 민주당은 부동산 투기 전력을 이유로 그의 입당을 거부했다. 그토록 아끼던 흑석동 건물을 팔고 차액 9억원을 기부하겠다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민주당에서 팽당한 이들의 집합소인 열린민주당에 들어가 비례 4번을 받는다. 선거의 신은 가혹했다. 열린민주당이 비례 3번까지만 가능한 표를 얻는 데 그친 것이다. 앞선 비례 후보 중 한 명이 사퇴해야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처지. 아마도 김의겸은 올해 1월, 비례 2번인 최강욱이 조국 아들의 인턴 확인서를 위조해준 혐의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집행유예를 받았을 때 무척 흥분했을 것이다. 야속하게도 최강욱은 항소함으로써 의원직을 유지했고, 김의겸은 또다시 좌절해야 했다. 연이은 좌절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귀인이 나타났다. 비례 1번 김진애가 서울시장에 나가기 위해 비례대표를 사퇴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처음 사퇴 의사를 표명한 3월 2일부터 실제 국회에서 사퇴 안건이 처리된 3월 24일까지, 김의겸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오늘도 사퇴 안 했네’ 하며 울먹이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쓰려온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원이 된 김의겸은 원래 국토교통위원회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흑석’이란 호가 왜 붙었는지 생각하면 그게 타당해 보이지만, 세상 인심은 그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게 놔두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는 문체위에 들어가는데, 이때쯤 김의겸은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꼬이냐?’며 울부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간 문체위에서 김의겸은 주옥같은 활약을 펼치며 존재감을 뽐냈으니, ‘인생은 새옹지마’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갭 투자를 통해 산 우면동 아파트가 1년 새 3억7000만원이나 올랐다! 이쯤 되면 ‘드디어 김의겸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이가 ‘제2의 김의겸’을 꿈꾼다. 특히 그의 전 직장인 언론사에는 김의겸처럼 기자로 명성을 쌓은 뒤 정치인으로 성공하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2의 김의겸은 나올 수 없다. 첫째, 김의겸은 취재할 때 “흔히 경찰을 사칭”함으로써 쉽게 정보를 얻어냈지만, 지금은 그런 취재가 불가능하다. 둘째, 김의겸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건을 특종 보도함으로써 명성을 날렸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곧 통과될 언론중재법이 기자와 언론사를 위축시켜, 확실한 팩트가 아니면 기사화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의 보배다. 온갖 시련을 이기고 이 자리까지 온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야당 속의 여당으로 맹활약할 그의 미래를 응원하며, 다음과 같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 식빵!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