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온다더니, 90년대생 여성은 사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온 2만2572명의 자살 시도자 가운데 20%(4607명) 정도가 1990년대생인 20대 여성이었다. 모든 연령과 성별을 비교해 가장 높은 수치다. 불과 4년 전인 2016년까지만 해도 전체 자살 시도자 중 20대 여성 비율은 9.8%였다.
국가 통계상으로도 이 같은 추세가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2017년 11.4%에서 2018년 13.2%, 2019년에는 16.6%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같은 기간 남성의 자살률이 20.8%, 21.5%, 21.6%로 여성보다 높지만, 증가 폭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90년대생 여성이 극단적 선택에 노출된 이유에 대해 경험과 현실의 차이를 꼽는다.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여성의 교육 수준이나 건강 등은 최고 수준으로 나온다. 그런데 취업률이나 임금 등에서는 여전히 낮다. 과거 세대 여성이 가정과 육아를 중시했던 것과는 달리 90년대생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도록 가치관이 형성됐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일자리나 승진 등에서 여전히 좌절을 겪는 점 등이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다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1990년 남녀 신생아의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16.5명일 정도로 1990년대에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다. 세월이 흘러 제도적으로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겪은 게 90년대 여성”이라며, “이들이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 기회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절망하는 것”이라고 했다.
범죄와 폭력을 원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20대 여성은 성폭력이나 범죄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 개인의 삶에 가치를 둔 젊은 여성들에게 범죄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 계속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대 직장인 신모(25)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서비스업처럼 여성들이 주로 진출해온 일자리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어,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현재 20대인 90년대생 여성들이 겪는 자살률 증가가 30대를 넘어 노년이 될 때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1990년대에 태어난 현재의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과거 세대 여성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어머니 세대인 1951년생 여성이 스무 살일 때 자살사망률을 ‘1’로 본다면, 1986년생이 스무 살일 때의 자살사망률은 1951년생에 비해 6배 높고, 1997년생은 7배 정도 높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정치·경제·사회적 상황 등을 고려하고, 통계 보정 작업 등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다.
그 근거로 ‘코호트(cohort) 효과’를 꼽았다. 코호트란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1990년대 초중반 20대를 보낸 ‘X세대’, 현재의 디지털 환경 등에 익숙한 ‘MZ세대’가 이에 해당한다. 1990년대생의 경우 20대에 ‘공정’이나 ‘취업난’ ‘실업’을 함께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공산권에서 벗어나 체제 변화를 겪었던 동유럽 청년들과 일본 전후세대에게도 코호트 효과가 나타났다. 장 교수는 “1990년대 헝가리에서는 자본주의 사회로 체제가 전환됐을 때 적응하지 못했던 20~30대 청년들이 나이를 먹어도 극단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일본의 전후세대가 자살률이 높은 것도 비슷한 이치”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20대 남성의 자살률이 21.6%로 20대 여성(20.0%)보다 1.6% 포인트 높은 점 등을 들며 전망이 다소 과장됐다는 주장도 펼친다. 이에 대해 중앙대 장숙랑 교수는 “청년 남성들이 극단 선택에 더 노출됐다는 점은 맞고, 남성들의 분노도 이해한다. 다만 자살률 추이와 90년대생 여성이 마주한 현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90년대생 여성의 상황이 오랜 기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