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78호(왼쪽)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반가사유상의 새 이름을 찾습니다.”

지난 8월 말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 이런 공지가 올라왔다. 이름하여 ‘반가사유상 애칭 공모전’.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이자 국립중앙박물관의 간판으로 꼽히는 국보 78호, 83호 반가사유상이 대상이다. 박물관은 “두 점의 상징성을 나타내면서도 친근한 이름을 붙여 주고자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걸치고(반가·半跏) 깊은 생각(사유·思惟)에 잠긴 두 불상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걸작이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반가사유상을 보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관람객이 많다. 박물관은 두 작품을 나란히 상설 전시하는 440㎡ 규모의 전용 공간을 만들어 28일 개관한다. 건축가 최욱이 설계를 맡아, 깊고 오묘한 사색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민병찬 관장은 “그동안은 두 작품을 1년마다 교체 전시하고 한 점은 늘 수장고에 있어 아쉬워하는 분이 많았다”며 “‘모나리자’를 보려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찾아가듯 반가사유상 두 점을 보기 위해 중앙박물관을 찾는 발길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개관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문화재청이 국보·보물·사적 등 문화재 앞에 붙는 번호를 없애기로 결정하면서 두 불상의 공식 명칭이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같아졌기 때문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월 “번호가 문화재를 서열화한다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정 번호를 없애고 내부 관리용으로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로 부르던 반가사유상은 졸지에 애칭을 잃게 됐다. 문화재청은 소장처와 지정 연도를 활용해 문화재를 구분하겠다는 입장.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국보 지정 날짜도 1962년 12월 20일로 같다. 제작지를 놓고도 학계에서 백제설, 신라설, 고구려설이 엇갈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박물관이 ‘애칭 공모 이벤트’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진행한 '반가사유상 애칭 공모전'에 지난달 30일 접수 마감까지 6034건이 쏟아졌다. /국립중앙박물관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달 30일 공모 마감까지 총 6034건이 쏟아졌다. 반가사유상 마니아라는 60대 남성은 국보 78호에 ‘미소’, 국보 83호엔 ‘피안’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78호의 얼굴을 보세요. 미소가 은은하면서도 그윽하잖아요. 반면 83호는 소년처럼 앳된 얼굴인데 미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더 오묘해요. 종교적 경지에 오른 것 같달까. 그래서 ‘피안’이라고 붙여봤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반가상인 만큼 하나는 ‘대한’, 또 하나는 ‘민국’으로 구분하자는 의견, 익숙한 번호를 버리지 말고 각각 ‘78′과 ‘83′으로 부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중학생 딸과 함께 밤새며 이름을 고민했다는 40대 주부는 ‘외형 차이’에 주목했다. 국보 78호는 머리에 태양과 초승달이 결합된 모양의 관을 쓰고 있고, 국보 83호는 세 산처럼 솟은 삼산관(三山冠)을 썼다. 그는 “78호가 쓴 관은 해와 달 모양이니까 ‘일월(日月)’, 83호의 관은 산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달처럼 보이기도 해서 ‘반월(半月)’이라 지었다”고 했다.

지난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고대불교조각대전'에서 국보 78호(왼쪽)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전시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한쪽 다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사색에 빠져 있는 포즈는 똑같지만, 두 점의 세부 묘사에선 차이가 있다. 국보 78호는 몸에 긴 천의(天衣)를 둘렀고, 옷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 흐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이 83.2㎝. 반면 국보 83호의 높이는 93.5㎝로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중에서 가장 크다. 목에 목걸이만 두 줄 있을 뿐 옷을 걸치지 않았고, 78호에 비해 별다른 장식이 없다. 일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꼭 닮아 우리나라 불상의 일본 전파를 입증하는 걸작이다.

두 작품의 국적이 베일에 싸이게 된 것은 출토지나 전래 경위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보 78호는 1912년 조선총독부의 데라우치(寺內) 총독이 일본인에게서 입수했고 이후 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보 83호는 일제 강점 초기 일본인들이 경주에서 약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2년 이왕가(李王家) 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에게 2600원(지금 돈으로 약 26억원)을 주고 구입했다. 민 관장은 “박물관 내부에서는 78호를 ‘본관품’, 83호를 ‘덕수품’으로 구별하기도 했다”며 “본관은 총독부박물관, 덕수는 이왕가박물관 입수품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박물관은 이르면 이달 말 21명을 선정해 시상할 예정이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만원 상당 문화상품권과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7종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