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 가지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34세가 넘었는데도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며느리를 보지 못해 화병을 얻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십니다. 크나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꼭 도와주십시오. 결혼을 하게 되면 꼭 사장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1999년 한 결혼 정보업체에 보낸 남성 A씨의 편지다. A씨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편지를 받았던 이웅진 선우 대표는 “당시만 해도 30대 남자들은 결혼을 꼭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직접 손으로 써서 좋은 여성을 소개해달라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고 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30대 남성은 어떻게 됐을까.

그래픽=김현국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작년 11월 1일 기준으로 우리나라 30대 남성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173만8000여 명이다. 전체 30대 남성(342만여명) 가운데 절반은(50.8%) 결혼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A씨가 결혼 정보업체에 편지를 보냈던 1999년엔 30대 미혼 남성의 비율은 19%였다.

물론 번듯한 직장을 잡기 어렵고, 집값이 폭등하는 등 결혼 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런데 결혼 시장을 분석하는 ‘커플매니저’는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학력이 높고 경제적 능력이 좋은 남성의 미혼 비율이 더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30대 남성의 2015년 미혼율은 18.2%였고, 지난해도 19%로 비슷했다. 중졸 출신 30대 남성 미혼율도 같은 기간 10.5%에서 10.9%로 차이가 없었다. 반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30대 남성의 미혼율은 20.2%에서 23.1%로, 2~3년제 대학 졸업 남성도 24.3%에서 27.3%로 증가 폭이 더 컸다. 결혼 정보업체 위노블의 이나현 이사는 “경제력이 있어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지만, 외모나 성격 등 자신의 마음에 쏙 들지 않는데 뭣 하러 결혼하느냐고 생각하는 30대 남성이 2~3년 새 급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30대 후반인 변호사 박모씨는 고양이를 키우고, 주말이면 경기도 가평 등지에서 서핑을 즐기며 산다. 서울 잠실에 자신 명의로 된 아파트도 있다. 박씨는 “부모님이 수많은 맞선 자리를 마련하시지만, 대를 잇거나 부모님을 위해 의무적으로 결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모 위주로 배우자를 선택하겠다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는 것도 30대 싱글 남성 증가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이나현 이사는 “20년 전 내가 커플매니저 일을 하던 때는 여성의 집안이 좋고, 성격이 잘 맞는다고 판단하면 쉽게 결혼을 결심하던 남성들이 이제는 조건은 덜 볼 테니 외모가 뛰어난 여성을 소개해달라고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운영자는 “유튜브나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사진이나 영상을 접하게 되면서 점점 더 많은 남성들이 배우자 조건에 외모를 우선순위로 둔다. 그런데 결혼 시장에는 그런 여성이 흔치 않다 보니 결혼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결혼에 대한 남성들의 의지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꼽는다. 이웅진 대표는 “20년 전 30대 남성들은 노총각이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새 30대 남성은 버스 떠나면 또 다른 버스가 온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혼 가치관이 변한 젊은 남성들에게 어르신들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태”라며 혀를 차지만 30대 남성들의 생각은 다르다. 경기도에 사는 대기업 과장급 직원인 김모(37)씨는 “고등학교 친구 6명이 있는데, 나를 포함해 4명이 결혼 안 했다. 결혼 안 한 내가 정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