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삼거리 대형 건물에 개 식용 금지 촉구 현수막이 내걸렸다. 현수막 속 사진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불법 도살장에서 도살된 개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여름철이면 어머니가 보신탕을 해주셨다. 반려견을 키우면서 더 이상 먹지 않지만, 어머니가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식들 튼튼하게 크고, 남편 무탈하게 여름 나길 바라는 마음이 잘못된 것인가? 사라져야 할 문화라면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40대 직장인, 김모씨)

“어릴 때 집 근처에 부산 구포 개시장이 있었다. 좁은 철창에 갇힌 개들의 울음소리, 골목을 휘감던 비릿한 냄새가 30년이 지나도 기억에 또렷하다. 소·돼지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지만, 개는 불법 농장에서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훨씬 잔인하게 죽어간다.” (30대 직장인, 박모씨)

개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달 27일 UN 총회에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의 “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됐다”는 말이 도화선이 됐다.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개는 먹기 위해 키우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 식품위생법에도 개는 음식의 원료로 분류되지 않아 오히려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개 식용 금지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개 식용을 금지하는 명백한 법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동물권단체인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삼거리 고층 빌딩에 올라 ‘개 잡는 선진국 대한민국’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대한육견협회는 “먹을 것에 대한 선택과 먹는 것에 대한 자유를 박탈하겠다고 하는 것은 공산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맞서고 있다.

◇국제 대회 치를 때마다 얻어맞은 개고기

‘한국에서 개장국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올림픽을 보러 가지 않겠다.’

선조들의 문화라고만 생각했던 개고기에 대해,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된 건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서다. 유럽과 미국 등지의 동물애호단체들은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결국 읍(邑)급 이상의 도시에서 개고기 판매가 금지됐고, 공무원들에게는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공문까지 내려왔다.

이때는 ‘우리가 왜 문화 사대주의에 굴복해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분위기가 더 컸다. 올림픽 이후 단속이 느슨해지자, 개고기 소비량도 다시 늘었다. 1989년 개고기 소비량은 돼지고기, 소고기에 이어 3위로 추정된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1997년 유명 전통주 브랜드는 ‘보신탕, 이제 떳떳하게 먹자’는 광고도 냈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2002년 월드컵이다. 프랑스 여배우이자 동물애호가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월드컵을 유치하려면 보신탕은 먹지 말라’는 편지를 2002한국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에 보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세계축구연맹은 “개최국 선정에 그러한 이슈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개고기는 또 한차례 샌드백이 됐다.

◇1500만 반려인구에 중요해진 ‘펫심’

최근의 개고기 논란은 국내 반려인구가 늘면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깊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638만 가구로, 대략 1500만명이 반려동물을 키운다.

정치권에서도 ‘펫심’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2016년 전국 최대 육견 시장인 성남 모란시장을 정비한 일로 정치적 유명세를 치렀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그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건축물 무단 증축 등 시장 내 위법사항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상인들과 협의회를 구성했다. 결국 상인들이 개고기 관련 시설을 자진 철거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는 일찌감치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개 식용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야권에서는 유승민 후보가 “개 식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개 식용 금지 정책을 두고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의 생각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내 최대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보신탕집을 하는 자영업자보다 애견인이 훨씬 많으니 그들의 표를 가져가고 싶다는 것 아니겠느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부산 연제구에서 27년째 보신탕집을 운영하다 지난해 문을 닫은 신모(65)씨는 “코로나 위기에다, 보신탕집은 식당 허가를 안 내준다는 소문까지 돌아 결국 문을 닫았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고, 세금 꼬박꼬박 내며 평생 이 일만 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