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에 올인하면 대박 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이 회사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곽씨는 최근 낸 입장문에서 “열정으로 가득 찬 채 일하다 기침과 이명, 어지럼증을 얻었고, 회사가 이를 인정해 거액의 성과급과 위로금을 책정한 것”이라 밝혔다.
대학가에는 ‘당신이 오십억 게임 즐기는 동안 청년들은 죽어가고 있었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고, ‘박탈감닷컴’이 등장했다. 박탈감닷컴은 지난 6월 박성민 청와대 1급 청년비서관 임명 직후 만들어진 웹사이트. 또래 청년들은 누군가의 열정이 누군가의 목숨보다 비싸게 매겨지는 현실에 분노했다.
올 상반기에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20~30대 청년은 113명. 지난달에는 아파트 외벽 청소 중 밧줄(로프)이 끊어져 한 청년이 추락사했다. 사망하지 않은 재해자까지 범위를 넓히면 1만3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이 50억원을 손에 쥘 가능성은 희박하다. 열정은 물론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작업 현장의 청년들을 만났다.
◇ 떨어지고 끼고 깔리는 청년들
지난 4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한 어린이집 외벽 청소 현장. 5층 건물에 작업자 2명이 붙어 고압 살수 장비로 오염을 씻어 내렸다. 바스켓 밖으로 몸의 1/3이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로프 대신 고소 작업 차량을 이용하는 업체가 늘었지만 차량 진입이 어렵거나 20m 이상 고층 건물은 여전히 밧줄을 타고 작업한다.
로프 작업은 반드시 두 줄(안전줄과 온줄)에 매달려 해야 하지만, 작업 여건상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로프공 이모(28)씨는 “고층일수록 이동 편의성을 위해 안전줄을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작업자 책임도 있지만, 무리하게 일감을 처리하도록 지시하는 선배들이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또 다른 로프공 안모(27)씨는 “옥상에 줄을 걸 곳이 마땅치 않으면 말통(20L 생수통)에 물을 채워 줄을 고정한다”며 “빨리 작업을 끝내라는데 어쩌겠나”라고 했다.
최근 한 달간 4명의 청년이 추락사했다. 서울 구로구의 아파트 외벽을 청소하던 23세 청년, 마포구 지하철 환기구에서 일하던 27세 청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일하던 25세 청년, 그리고 인천에서 아파트 외벽을 청소하던 29세 청년까지. 추락뿐만이 아니다. 끼거나 깔리고, 맞거나 떨어져 다치고 죽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산업재해자의 22.9%가 20~30대 청년이었고, 사망에 이른 사람은 198명이었다.
◇ “로프 추락사, 많이 받아야 3억”
산재 사망사고로 받는 보상금은 얼마일까.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따르면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작업 중 숨진 김씨 유족에게 1억3000만원의 보험 급여가 지급됐다.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유족급여 1억1900만원과 장례비 1100만원을 합친 금액이다.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군의 유족에게는 7900만원, 평택항에서 깔림 사고로 숨진 이씨 유족에게는 1억3900만원이 지급됐다.
물론 이들 유족이 받은 ‘산재보험 급여’와 곽씨가 회사로부터 받은 ‘위로금’은 다르다. 산재보험 급여는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해 받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근로자 손해액의 70~80%를 지급한다. 나머지 부족분을 메우려면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법원 결정에 따라 회사로부터 받는 돈이 위로금(합의금)이다. 노무법인 성공 정시환 노무사는 “대부분의 회사는 위로금 지급을 꺼리는데, 곽씨는 산재 신청이나 민사소송을 거치지 않고도 회사로부터 자발적으로 50억원을 받았다”며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곽씨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이에게 지급된 산재보험 급여는 작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2800만원에 그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재해자에게 일시로 지급되는 장해급여는 1인당 1600만원이었고, 유족 급여는 1억700만원이었다. 정시환 노무사는 “최근 인천에서 로프 작업 중 사망한 청년 유족에게 지급되는 산재보험 급여도 최대 3억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청년들이 산재에 취약한 이유
산재 사고가 빈번한 업종에서 청년들이 일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최근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는 제목의 책을 낸 허태준(24)씨는 “토목, 고공 작업 현장은 위험 수당이 포함돼 일당이 높게 책정되는데, 사회적 편견이나 인식보다 벌이가 중요한 청년들이 주로 접근한다”고 했다. 충남 서산에서 측량 보조와 타설 작업을 하는 장태성(29)씨는 “대학 방학 때마다 학비에 보태기 위해 일하고, 집과 가까워 식비나 생활비를 아낄 수 있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청년층 산재가 많은 건 현장에서 이들이 숙련공이 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충북 음성에서 굴착기를 모는 반모(26)씨는 “매번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저연차들은 익숙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며 “작업이 느려지면 마음이 불안해 주변 사람이나 장애물을 칠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충남 천안에서 비계(飛階, 임시가설물) 설치 작업을 하는 박진구(27)씨는 “적어도 3년 이상 일해야 손에 익는데, 초보들은 발 걸림이나 자재 부딪힘, 안전고리 미체결 같은 실수가 잦다”고 했다.
◇ “그래도 이 일이 좋다”
열악한 작업 환경이지만 청년들은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고 기록한다. 이윤성씨는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줄쟁이’라 표현하며 작업 현장 사진을 올리고 있다. 로프를 탄 자신을 두고 ‘낚시꾼에게 낚여 올라가는 물고기 느낌’이라며 재치있게 일상을 전한다. 이씨 외에도 인스타그램에 ‘노가다’ ‘일꾼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각각 14만 명, 3만 명이 넘는다. 유튜브에도 ‘청년일꾼 일꾼킴’ ‘로프타는남자’ ‘로프공3인분’ 등 채널 영상이 인기다.
자신이 3년간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낸 허태준씨가 말했다. “우리는 죽어야만 드러나는 존재인 것 같아 안타깝죠. 하지만 불쌍하게 보지는 마세요. 전 이 일을 억지로 한 게 아니고, 불행한 사람도 아니에요. 몸으로 하는 일이 너무 좋고 자부심도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