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행주대교 북단 교각 아래 선착장 모습. 이곳에는 마지막 남은 도시 어부 41명이 조업을 하고 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저 같은 뱃놈 인생에 이런 복이 또 오겠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2년째 풍어제도 못 치렀는데…. 욕심 그만 내고 방류해야지요.”

지난 1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에 황금 뱀장어가 나타났다. 월척을 낚은 주인공은 어부 박찬수(62)씨. 비가 온다는 예보에 서둘러 조업을 끝내려던 박씨는 그물에 걸린 황금빛 뱀장어를 발견하고 재빨리 건져 올렸다. 옅은 노란빛 바탕에 갈색 반점을 띤 50㎝ 길이의 뱀장어. 산란을 위해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일명 ‘내림 장어’였다. 박씨는 이를 ‘길조’라 여겨 어창(魚窓) 안에 황금 뱀장어를 보관 중이다.

겸재 정선이 행주나루에서 고기 잡는 어부를 보고 그린 ‘행호관어도’. 그림 속 풍경은 28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서울 한강 하구 행주나루에는 41명의 도시 어부들이 조업 중이다. 하지만 선대 어부와 달리 이들에겐 고민이 있다. 며칠 전 잡힌 황금 뱀장어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질오염으로 생긴 돌연변이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 이전부터 등 굽은 물고기가 10마리 중 1마리꼴로 잡히고, 봄철에는 유해생물인 끈벌레까지 나타난 탓이다. 수질 변화로 위협받는 도시 어부의 삶. 지난 12일 행주나루 어부들을 만났다.

황금 뱀장어를 잡은 17년 차 어부 박찬수(62)씨.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함지박에 고기 받으러 왔는데…”

이날 새벽 6시, 박씨가 행주대교 아래 선착장에서 그물을 챙겨 출어에 나섰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이곳에서는 주로 뱀장어와 참게, 숭어가 잡힌다. 요즘은 한창 참게가 잡히는 철. 박씨는 물때에 맞춰 하루 중 수위가 낮을 때 통발을 설치하고, 물 높이 850㎝가 되기 전 걷는다. 17년 차 어부이지만, 평생 일해 온 행주어촌계 다른 어부들에 비하면 늦깎이 신입이다. “독서실도 하고 다른 일도 해봤지만 결국 고향에서 어부로 일할 운명이었나 봐요. 어릴 적 팔뚝만 한 고기를 한가득 안은 어부를 봤는데, 그게 잊히지 않았어요.”

박씨의 배가 참게를 싣고 돌아오자 도매상인이 반겼다. 그는 그물망 사이로 뾰족한 다리를 내놓은 참게 더미를 들어 올려 도매상인이 가져온 드럼통에 쏟아부었다. 마리당 1500원, 이날 총 120만원어치 정도 팔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부 심화식(66)씨는 “옛날엔 도매 트럭이 줄지어 기다리고, 고기 받아 가려 옆 마을에서 함지박 메고 왔다”며 “요즘엔 사는 사람이 줄어 소규모로 직거래를 하는 등 판로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시신 수습이 도시 어부의 숙명?

도시 어부는 물고기 말고도 낚아야 할 것이 많다. 어부 임정욱(66)씨는 한국해양구조협회 행주구조대장으로도 일한다. 그는 조업 중 매년 평균 10구의 시신을 인양하고 5명의 인명을 구조한다. 2019년 8월 ‘한강 토막살인범’ 장대호가 살인한 시신의 머리를 최초 발견한 것도 임씨였다. 그는 “도심 한강에서 익사한 시체가 이곳으로 자주 밀려오는데, 해양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떠내려가지 않도록 인양하는 것이 내 임무”라며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무섭지는 않다”고 했다.

인근 행주산성에서 차박 캠핑족이 늘어나면서 강으로 유입되는 생활 쓰레기도 골칫덩이다. 조업에 나서면 각종 비닐봉지와 페트병들이 매일 그물에 함께 걸려 올라온다. 따로 모으면 100L 포대 자루의 절반이 찰 정도다. 심씨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쓰레기가 강으로 흘러든다”며 “그물에 걸린 쓰레기를 강에 다시 버리면 또 오염이 되니 따로 주워 담아 버린다”고 했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행주나루 선착장에서는 주로 뱀장어와 참게, 숭어가 잡힌다. 요즘은 참게가 제철이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등 굽은 물고기와 끈벌레, 대체 왜?

심씨와 배를 타고 선착장에서 5분 떨어진 서남 물재생센터 방류수가 흐르는 곳으로 다가갔다. 서울에는 생활하수를 정화해 한강으로 방류하는 4개의 하수처리 시설이 있다. 그중 두 곳(서남, 난지)의 방류수가 행주나루 조업 구역으로 흐른다. 주변 초록빛보다 짙은 색의 방류수가 흐르고 지하수 악취가 났다. 한강살리기 어민피해비상대책위 위원장이기도 한 심씨는 “근처에 그물을 치면 슬러지(찌꺼기)가 달라붙어 그물이 땅으로 가라앉는다”며 “이곳 주변에서 잡은 고기는 마늘 넣고 매운탕을 끓여도 냄새가 나니, 어찌 방류수 탓을 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봄철 실뱀장어는 장어를 양식하는 양만장에 판매하면 마리당 최소 2000원꼴로, 이곳 어업인들의 큰 수입원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종묘채포망(모기장처럼 촘촘한 어망)을 뜨면 실뱀장어보다 유해생물인 끈벌레가 더 많이 잡혔다. 끈벌레에서 나온 점액질 때문에 실뱀장어는 숨을 쉬지 못하고 허옇게 변하며 죽는다. 올해도 어획 구역의 실뱀장어 90% 이상이 폐사했다. 심씨는 “겸재 정선이 행호관어도를 다시 그린다면 물에 시커멓게 먹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방류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물순환안전국 관계자는 “2019년 민관 합동조사단을 꾸려 방류수 검사했을 때 수질이 기준치 이내였다”며 “현재도 하수도법 기준에 따라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 농도 10ppm 이하로 정화해 내보내고 있고, 방류수 때문에 끈벌레와 등 굽은 물고기가 출현했다는 주장은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행주나루 선착장에서 배로 5분 떨어진 곳에 서울 서남물재생센터에서 처리한 방류수가 흐른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천하다 놀려도, 온몸에 비린내 배도

해가 갈수록 어획 구역도 줄어든다. 이곳 행주어장은 가양대교부터 일산대교 사이, 고양시와 맞닿은 절반의 구역을 가리킨다. 1980년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이곳 중간에 신곡수중보가 설치됐는데, 골재 채취용으로 만든 자갈길이 물길을 방해해 주변에 토사가 쌓였고 점차 육지화됐다. 어민들에게는 수역이 육지화되면서 조업할 수 있는 구역이 줄어든 것이다.

수중보 주변은 물살이 세 인명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육지화된 습지를 피해 좁은 통로로 물이 흘러 유속이 빨라진 탓. 박씨도 얼마 전 와류(渦流·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배가 보 가까이 다가서자 방향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어, 어’ 당황한 박씨와 동승자는 모터를 전속력으로 작동시켰지만 소용없었다. 차선책으로 박씨가 닻을 멀리 던져 배를 고정했고 다행히 와류 구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3년 전 119 구조대원도 구조 중 목숨을 잃었어요. 잊을 만하면 사고가 나는 곳이죠.”

점차 수입이 줄고 때론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곳. 그런데 행주나루 어부들은 왜 매일 아침 흥얼거리며 노를 저을까. 280년 전 겸재는 개화산 위에서 행주나루 어부들을 바라봤다. 멀리서 바라보고 그렸기에 어부들 표정까지 알 순 없지만, 박씨의 말로 짐작해볼 수는 있다. “비린 냄새가 온몸에 배는 천하디 천한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며 사는 사람 얼마나 되겠어요. 저는 그물 꿰는 것도, 퍼덕대는 고기 보는 것도 너무 좋아요. 남들이 천하다고 해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