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YG 강양구’(왼쪽)와 ‘JYP 박재영’이 서울 옥인동 초소책방 잔디밭에 앉아 활짝 웃었다. 이공계 출신 저널리스트 책벌레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은 “매월 13일엔 소셜미디어에 음식이나 풍경 사진 대신 책 표지 사진을 올리자”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안녕하세요, YG와 JYP의 책걸상이 찾아왔습니다~.”

감미로운 음악 위에 두 남자의 목소리가 흐른다. ‘YG 강양구’와 ‘JYP 박재영’이 진행하는 북토크 팟캐스트. 자칭 타칭 ‘책벌레’인 두 사람이 저자나 관련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책’에 관한 ‘걸’쭉하고 ‘상’큼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름하여 ‘YG와 JYP의 책걸상’. “이름만 듣고 국내 대표 연예 기획사가 배출한 걸그룹 멤버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시는 분도 있는데, 죄송하지만 책걸상에 걸그룹은 없습니다!”

얼핏 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조합이다. 박재영(51)은 의사이고 보건학 박사이며 23년 차 기자. 메디컬 드라마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종합병원’의 원작 에세이를 썼고, 의료신문 ‘청년의사’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강양구(44)는 과학자를 꿈꾸다 과학·환경 전문기자가 됐고,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서 지난 2005년 ‘황우석 사태’를 특종 보도했다. ‘조국 흑서’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이자 진중권·서민·김경율·권경애를 한데 모은 실질적 기획자. “그러니까 책걸상은 ‘저널리스트’로 밥벌이 하는 ‘이공계’ 출신 ‘책벌레’ 두 사람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죠. 막상 시작해보니 둘의 교집합이 하나 더 있더라고요. 40~50대 중년 아재라는 것!”

두 사람은 최근 ‘북데이(bookday) 13′ 챌린지를 시작했다. 매달 13일 소셜미디어에 책 표지 사진을 올리자는 운동. 박재영은 “한 달에 하루쯤은 음식 사진이나 풍경, 아이 사진 말고 책 사진을 올리자는 거다. 읽고 있는 책, 읽고 싶은 책, 내 인생의 책, 무슨 책이든 좋다”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나 아이유 같은 스타가 올리면 금세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까칠하지만 유쾌한 두 남자를 서울 서촌의 북카페에서 만났다.

박재영(왼쪽)과 강양구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뭔가를 이뤄낸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이라며 "자기 분야에서 성취를 이뤄낸 이들 뒤엔 반드시 책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었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매월 13일엔 책 사진을!

-왜 하필 13일인가.

박재영(이하 박): “책을 뜻하는 Book의 ‘B’와 숫자 13이 모양이 닮아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이 운동이 뻗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BTS와 블랙핑크가 한국 작가 책을 올리면 해외 팬들과 출판 에이전트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아이슬란드는 1인당 평균 독서량이 우리보다 6~7배 많은 나라인데, 한 해 책 매출의 절반 정도가 12월 한 달간 팔린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책을 선물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이나 대선 후보들이 매달 13일 자신이 읽은 책을 공개하면서 비전과 철학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강양구(이하 강): “사실 누가 어떤 책을 읽고 올리는지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수준을 알 수 있다. 그걸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분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추천하기 민망한 책들도 당당하게 올리지 않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청와대 직원에게 선물했을 땐 정말 실망스러웠다. 대학생 리포트를 길게 늘여쓴 수준의 책이니까. 직접 정독했다면, 함부로 남에게 권하기 어려운 책이다.”

박: “탁현민이 골라줬겠지.”

강: “그런가? 어쨌든 대통령의 책 읽기는 품격 있는 정치의 연장이 되어야 하는데, 문 대통령의 독서는 좁고 얕고 결정적으로 뜬금없다.”

2017년 1월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방송을 시작해 곧 6년째. 책걸상에 ‘주례사 비평’은 없다. 베스트셀러나 스타 작가라도 ‘함량 미달’이면 거침없이 비판을 쏟아낸다. 반면 장편 소설 ‘섬에 있는 서점’(개브리얼 제빈),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실레스트 잉), ‘사랑의 이해’(이혁진) 같은 숨은 보석도 이들이 건져 올렸다.

-애청자들이 ‘독지가들!’이라는 팬카페까지 만들었더라.

박: “BTS에게 ‘아미’가 있다면, 책걸상엔 ‘독지가’가 있다.(웃음) 사실 우리에겐 재능 기부다. 둘 다 책 쓰고 강의하고 많은 일을 하지만, 팟캐스트는 그중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일이다. 시간 투입 대비 생기는 건 없지만 좋아서 하니까 못 끊는다. 매주 두 번씩 방송하면서 한 번도 펑크 낸 적 없고, 여름휴가를 갈 때도 미리 녹음하고 떠났다.”

-역할 분담이 돼 있더라. 강양구가 차분히 책 해설을 하고, 박재영은 농담으로 숨통을 트여주는 식으로.

강: “이름이 ‘책에 관한 걸쭉하고 상큼한 이야기’인데, 원래는 선배가 걸쭉, 제가 상큼 담당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걸쭉이고 이분이 상큼을 노리고 있다. 하하!”

박: “저는 대체 가능한 사람이고, 이건 YG가 없으면 못 하는 프로그램이다. YG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의 독서가이고 박학다식한 교양 시민이지만 별로 재미있지는 않거든. 제가 유머가 좀 되니까 그쪽으론 도와줄 수 있겠다 싶었다. 흐흐흐.”

-그런데 왜 YG와 JYP라는 닉네임을 쓰나?

박: “‘나는 의사다’ 팟캐스트 때 쓴 닉네임이다. 원래 의사들끼리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방송에서 서로 ‘선생님~’ 하면 재수 없으니까.”

강: “SM도 있다. 기생충 학자인 서민 교수. 책걸상에도 서 교수가 게스트로 나와서 SM·YG·JYP가 완전체로 방송한 적이 있다.(웃음)”

박재영이 서울 옥인동 초소책방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강양구가 서울 옥인동 초소책방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책을 통한 느슨한 공동체

청취자들은 “고막 남친 두 아재의 티키타카 독서평이 오스카 생중계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며 열광한다. 첫 회 초대 손님 장강명 작가를 시작으로 지금껏 소개한 책이 500여 권. 인문·사회·과학·예술 등 장르를 넘나들지만, 절반을 차지하는 건 소설이다. 박재영은 “이공계 출신이지만, 둘 다 전문 서적보다 소설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녹음 준비는 미리 책을 정해서 읽어오는 게 전부다. 강양구는 “준비 부담이 많을수록 지속 가능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지향하는 건 ‘책을 통한 느슨한 공동체’”라며 “너무 질척이거나 너무 끈끈하면 안 되고, 친구랑 맥주 한잔하면서 최근에 읽은 책을 얘기하듯이 대본 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강: “지금 시즌3인데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네이버는 원래 1년을 약속하고 6개월 더 제작비(딱 실비만!)를 후원해줬다. 그 뒤엔 자립해야 했는데 사정을 알게 된 독지가 한 분이 ‘얼마면 돼?’ 하고 2년 후원을 약속했다. 덕분에 시즌2까지 진행했는데, 재작년 8월 다시 막막해졌다. 그때 처음으로 방송을 두 달 넘게 쉬었다. 다시 고마운 분들이 제작비 후원을 약속해주셨고, 그 연장선상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애청자에게 1년 제작비 1000만원을 만들어 달라고 크라우드 펀딩 요청을 해본 거다.”

박: “소문도 안 내고 알림 방송만 슬쩍 올렸는데, 사흘 만에 1000만원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마감일까지 총 1264만2000원 모였다. 아마도 청취자가 제작비 모아서 방송해달라고 요청한 북토크 팟캐스트는 한국에서 처음일 거다. 1000원부터 1만원, 10만원, 30만원까지, 빠듯한 살림살이 쪼개서 ‘느슨한 독서 공동체’를 지키고자 마음을 열어준 애청자의 마음이 고맙고 기쁘고 애틋했다.”

'YG 강양구'(왼쪽)와 'JYP 박재영'이 서울 옥인동 초소책방 잔디밭에 앉았다. 이공계 출신 저널리스트 책벌레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이들은 "매월 13일엔 소셜미디어에 음식이나 풍경 사진 대신 책 표지 사진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황우석 특종하고 ‘개양구’가 됐다

강양구는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땐 과학자가 아닌 미래를 상상해본 적 없었고, 현미경으로 동식물의 세포를 관찰하고 나서는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는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과학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 생물학과로 진학했지만, 재목(材木)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 “과학을 탐구하고 기술을 설계하는 삶 대신 현대 과학 기술의 역설을 폭로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택했다”.

2003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그가 대중에 각인된 건 줄기 세포 논문 조작을 둘러싼 이른바 ‘황우석 사태’ 때였다. 2005년 집요하게 황 박사 연구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기사를 썼고, 마침내 12월 5일을 시작으로 ‘줄기 세포는 거짓’이라는 팩트를 밝혀냈다. 그는 “최근 20년간의 여러 싸움 가운데 가장 치열했고, 드물게 승리했던 일”이라고 했다. 황우석 사태 보도로 그는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받았다.

-기사가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강: “황 박사 연구가 허상이고, 언젠가는 밝혀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만 그걸 밝혀낼 기자가 내가 아닐 수는 있겠다, 이것 때문에 기자를 관두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맹목적으로 황 박사에게 열광하고 있었고, 그는 ‘신(神)’이었으니까. 회의에서 ‘제 판단이 잘못이라면, 모든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대표, 편집국장, 부국장이 3년 차 후배 기자의 ‘감’을 믿어줬다.”

-결국 ‘줄기 세포는 없었다’는 게 밝혀졌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강: “블로그는 초토화됐고, 누리꾼들은 나를 ‘개양구’라고 조롱했다.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 우편이 하나 배달됐는데, 하얀 종이에 핏빛 글씨가 가득했다. ‘개양구, 너와 네 가족은 교통사고로… 뇌수가…' 그때부터 염산 테러 당할까 봐 골목길을 피해 다녔다.”

-‘조국 흑서’ 공동 저자라서 요즘엔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에게 ‘참(진짜)기레기’라고 불린다던데.

강: “오죽하면 제 호가 ‘진안(眞雁)’이다. 참 진(眞)에 기러기 안(雁), 하하! 요즘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리는데, 솔직히 지금 문 정부 옆에 붙어 있는 기자 출신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에 비하면 ‘참기자’ 아닌가?”

강양구는 1년에 100권 이상 책을 읽는 다독가다. "한달에 평균 8~10권 읽는 것 같다"고 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어준이 언론인? 그는 프로파간다 머신일 뿐

-강양구는 조국 흑서 공동 저자들을 모은 주역이다.

강: “처음에 출판사 사장이 책을 내자고 진중권 선생을 찾아갔는데, 진 선생이 강양구를 먼저 만나보라고 했다더라. 그때 제가 사장한테 이런 이런 분들을 찾아가면 된다고 연락처를 다 넘겨줬다. 스타일이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명확했다. 조국 사태 이후에 한국 사회가 더 이상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분들. 그리고 실명으로 책을 쓸 만큼의 멘털이 강한 사람들.”

-강양구야말로 멘털이 단단한 사람 같다.

강: “황우석 사태 때는 좀 젊었던 것 같다. 지금 같은 일을 당한다면 그때만큼 패기롭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번에 조국 흑서를 내면서도 인간관계가 많이 끊어졌다. 하지만 이런 일로 단절될 관계였으면 어차피 피상적인 관계 아니었을까. 학생 운동 같이하고 수십년간 같이 일해온 사람들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조국 교수 때문에 오랜 관계를 저버릴 수 있다는 게 비이성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투사로 싸울 때마다 중학교 사회 교사인 아내 반응은 어땠나.

강: “아무 얘기 안 하고 묵묵히 지켜보다가 폭풍이 지난 후에 한마디 한다. 당신 그때 맘에 안 들었다고. 걱정되고 불안하면서도 저 인간이 대책 없이 그러는 건 아니겠지, 하는 믿음으로 지켜봐주는 것 같다.”

-지난해 6월부터 TBS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조국 백서’ 후원회장인 김어준씨가 TBS 간판 프로그램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는데.

강: “김어준씨는 엔터테이너로서 감각이 있고, 대중이 궁금해하고 시원해하는 걸 예민하게 포착하는 방송쟁이지만, 그가 언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 권력이 계속 재생산되기 위해서 담론을 생산하는 프로파간다 머신, 대표적인 음모론자 아닌가. 팩트를 추구해야 할 언론인과는 거리가 있다.”

박: “아, 김어준 얘기는 그만그만. 이러다 기사 제목으로 김어준이 뽑힌다, 하하!”

-TBS는 서울시민의 방송인데 편파적인 방송이 계속 나가도 되나.

“맞다. TBS는 서울시 재원이 출자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방송사다. 서울시민 가운데는 문재인 정부 지지자도 있고, 비판자도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좋아하는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TBS 구성원 내에서도 ‘뉴스공장’ 논조와 입장에 박수 치는 사람도 있지만, 저처럼 냉담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TBS가 양쪽에 다 열린 공간이 돼야 하지 않을까? 개인에게 의존하는 프로그램의 논조나 입장을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모습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TBS가 지금보다 훨씬 더 열린 플랫폼이 되면 좋겠다. 아침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나가고 저녁에는 ‘진중권의 돌직구’ 같은 프로그램에 김경율 회계사가 출연하는 모습을 꿈꾼다.”

-2016년 프레시안 편집국장에 임명됐을 때 기자들이 임명안을 거부했다. 평소 프레시안의 시각과 반대되는 기사를 많이 써서 그런가.

“글쎄, 강양구가 기자로선 훌륭하지만 편집국장으로서의 자질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15년간 몸담았던 조직의 동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내쳐진 느낌이었다. 상처도 많이 받았고, 살면서 가장 속상했던 기억이다. 결국 내가 속해있던 ‘작은 세상’을 나오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계속 있었다면 JYP랑 이런 방송을 같이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지금은 진심으로 친정이 잘되길 빈다.”

박재영은 "어떤 사람에겐 책 읽기가 '놀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가 좋았고,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며 "한 해 총 독서량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지 않게 하자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만 집어드니까"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슬의생’ 이전에 ‘종합병원’이 있었다

박재영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료법윤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과형 인간인데 고등학교 때 수학을 잘하는 바람에 이과에 갔다. 남학생이 수학을 잘하면서 문과에 간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 하던 시절이었다”며 “그나마 이과 계열 중 문과에 가장 가까운 게 의대라서 의대에 진학했다”고 했다.

-그런데 잘 안 맞았나.

박: “아니, 한 번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지만 비교적 잘 맞았다. 대학에서 인턴 마치고 3년간 공중보건의사로 일하면서 보람도 컸다. 환자들도 싹싹하다고 나를 좋아했다.”

-그런데 청진기보다 펜을 잡고 있다.

박: “학생 때부터 관여했던 ‘청년의사’가 판이 커지면서 제대하자마자 입사했다. 그러다 여기까지 왔지.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편집국장으로, 그 후엔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책 쓰는 걸 좋아한다. ‘개념의료’ 등 8권의 저서를 냈고,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 등 7권을 번역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사랑을 받았는데, 무려 27년 전 나온 원조 의학 드라마 ‘종합병원’ 탄생의 주역이다. 원작 에세이 ‘종합병원 청년 의사들’의 대표 필자였고, ‘종합병원 2.0′이라는 소설까지 썼다.

박: “‘종합병원’이 탄생하기 1년 전, 의학드라마를 준비한다는 PD와 작가가 ‘청년의사’를 찾아왔다. 각본을 쓴 최완규 작가는 다짜고짜 병원 응급실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직실에서 먹고 잘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줬다. 일주일도 못 버틸 줄 알았더니, 그 생활을 석 달 넘게 하더라. 등장인물 캐릭터와 상황, 의학 용어 등은 나를 비롯한 청년의사 측에 자문했고, 최대한 도움을 줬다. 방송이 시작된 뒤 제작진에 줬던 에피소드를 묶어서 에세이를 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6만 부 가까이 팔렸다.”

박재영은 취미 부자다. 요리가 수준급이라 어머니와 함께 요리책도 냈다.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은 아니고 요남”이란다. 여행 준비를 좋아해 지난해 ‘여행 준비의 기술’이라는 책도 펴냈다. 그는 “서른 살까지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독서’밖엔 할 말이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즐겨 하는 취미는 여행 준비더라. 여행이 아니라 여행 준비가 취미냐고 고개를 갸웃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시험, 회의, 대회 등 어떤 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대체로 괴롭지만 여행 준비는 설레고 즐겁지 않나.”

-책에 ‘여행 준비는 사실 유전자에 새겨져 있던 취미’라고 썼던데.

박: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행을 좋아해 어릴 때부터 같이 많이 다녔다. 아버지가 ‘월간 시각표’라는 잡지를 가끔 사오셨는데 그걸 뒤적이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 우리나라 기차, 고속버스, 여객선 등의 출·도착 정보와 가격 등이 작은 글자로 빽빽이 적혀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생애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을 때, 시카고에서 옥수수처럼 생긴 거대한 건물 두 동을 보고 순간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가 즐겨 보시던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라는 책 표지에 있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두 사람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영상의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할까.

강: “제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상대로 강의를 나갈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미래에는 굉장히 불확실한 시대가 펼쳐질 것이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펼치려면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직접 쌓을 수 있는 경험은 제한적이지만, 검증되고 안전한 보편적인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독서라고!”

박: “사회에서 굉장히 다양한 사람을 만났지만,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 자기 분야에서 성취를 이뤄낸 이들 뒤엔 반드시 책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