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동생은 사립대학 행정실에서 일한다. 한번은 그 대학 기숙사 매점 운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동생에게 물었다. “너희 기숙사 학생이 몇 명이더라?” 뜬금없는 전화에 무심코 답한 동생이 정색하며 말했다. “매점 들어오려고?” 뜨끔. “형. 괜한 오해 받을 일, 하지도 말자.” 뚝, 전화 끊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간 매정한 녀석.

편의점은 이미 과포화라고 생각해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특수 상권 편의점을 노렸다. 학교, 관공서, 공원 등에 달린 편의점(혹은 매점) 말이다. 그동안 몇 점포를 운영했다. “이런 데는 어떻게 들어오셨소?” 손님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혹은 뒷배가 보인다는 눈빛으로 묻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이라고 그러겠나. 대체로 입찰해서 들어간다. 요새는 관공서에 철사 한 가닥 납품하는 일마저 그렇다.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운 좋게 낙찰받으면 노다지가 쏟아지리라 예상하지만, 그렇지 않다. 좀 괜찮다 싶은 점포는 입찰 기준을 ‘도저히 수익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놓았다. 관공서 입찰 담당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편의점 매출과 수익이야 뻔하다. 상주 직원과 방문객으로 매출을 가늠하고, 임대료와 인건비 빼면 순수익이 나온다. 그리하여 관(官)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민간의 몫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배분 구조를 짠다. 입찰 공고문 보고 계산기 두드리다 보면 ‘인건비나 건지면 다행이겠네’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른 수건 쥐어짜는 격이다.

게다가 열심히 노력해 매출을 올리면 재계약할 때 혜택이라도 있느냐. 아서라. 매출 오른 걸 어찌 알고 배분율을 재편성한다. 관의 지분을 더욱 올린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봉공(奉公) 의식에 흠뻑 감읍하게 되었다. 이만하면 공직 사회를 믿어도 되겠구나!

따라서 편의점 베테랑일수록 이 시장에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 매출 자료가 없는 신생 점포, 기대 수익보다 저평가된 점포를 골라 신중히 응찰한다. 하지만 매출이 올라도 걱정, 떨어져도 걱정. 아예 연간 매출 자료를 내라는 기관마저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어디 공공 입찰뿐이겠냐만, 부익부 빈익빈 세상에서 관공서는 ‘잃을 것 하나 없는’ 수퍼 울트라 갑(甲)이다. 그렇게 ‘쥐어짠’ 이익이라도 얻어보려고 경쟁에 뛰어드는 을과 을의 사투는 오늘도 계속된다.

민초들이 살아가는 풍경은 이러할진대, 요즘 세상 소식 들으니 희한하다. 한낱 관공서 편의점 운영자 뽑는 일에도 공공의 몫을 극대화하도록 설계하는데, 경기도에서도 부자 동네로 꼽히는 도시의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면서 특정한 민간 업체가 이익을 독식하도록 만들어줬단다. 그런데도 당시 행정 책임자께서는 “나는 1원짜리 한 장 가져가지 않았다”는 말씀만 되풀이하신다. 왜 자꾸 1원을 앞세우는지 모르겠다. 그걸 묻는 것이 아닌데.

의혹은 화수분처럼 쏟아진다. 도대체 누구 결정인지 공고 며칠 전에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이 삭제되었다는 말이 있고, 특정 업체에 유리하도록 입찰 자격을 바꿨다는 말도 진즉 들린다. 심지어 공기업 사장을 강제로 밀어내면서까지 뭔가를 꾸몄다는데, 그런 식의 ‘한탕’을 다른 곳에서도 벌였단다. 거기서는 나라 땅을 특정 업체에 헐값에 넘겼는데, 매각 후 토지 용도가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로 4단계나 높아졌다나. 그렇게 산(山)을 돈으로 만든 아파트 단지에는 또 임대주택 비율을 한껏 낮춰 민간 업체의 이익을 극대화해 주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담. 날마다 신세계를 경험한다.

편의점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관공서 편의점은 위치가 대체로 좋지 않다. 당연하다. 청사(廳舍)는 편의점 운영을 위해 지은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편의점은 자투리 공간에나 설치하는 정도다. 그런데 그런 편의점 위치를 출입문 바로 옆으로 옮기고, 그것을 위해 민원실을 없애고, 규정과 절차까지 바꾸고, 편의점 운영자가 가져갈 이익을 최대한 높이고, 운영자는 특정 업체로 한정했다면…. ‘일반인’ 세상에서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담당자는 과연 무사했을까? 최종 결재권자는?

일개 편의점이나 운영하는 주제에 네가 뭘 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비웃고 조롱하는 ‘흐흐흐흐’ 웃음소리도 들린다. 그렇다. 아는 것 없는 우리는 그저 소중한 한 표나 잘 행사해야지. 앞에서 ‘공공 입찰에는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는데 그건 내가 세상 물정 몰라 했던 말이고, ‘그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와 성격이 한참 다르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삼 깨닫는다.

어느 관료 출신 정치인은 “세력 교체만 이뤄졌을 뿐 권력 속성에는 변함이 없더라”는 씁쓸한 회고를 남기셨다지. 서민들에게는 이익을 남길 수 없는 모진 설계 보여주면서 자기들끼리는 설계도 바꿔가며 수천억 불로소득 나눠 가진 ‘억강부약 대동 세상’ 지켜보며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림이 없음을 깨닫는다. 서민들은 동생이 근무하는 대학에 매점 하나 운영하는 일조차 주저하고, 오해받기 싫으니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손사래 치는 동안, 그분들은 참세상 만나 돈벼락 맞았다. 그분들에게 ‘억강부약’이란 “약한 자에게 모질게 굴고 친한 자에게 널리 베풀라”는 숨은 뜻 아니었을까. 오늘도 우리는 땅바닥에 떨어진 낟알이나 한 톨 주워 먹으러 입찰 공고문을 뒤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