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 선량한 국가에 의한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7일 ‘음식점 총량제’를 언급했다. 이 후보는 “음식점 할 권리를 200만~300만원씩 받고 팔 수 있도록 하자”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설명했다. 해당 발언이 논란으로 불거지자 후보 관계자는 “당장 시행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해명했다. 야권은 이를 두고 ‘헛소리 총량제부터 시행하라’고 비난했다.
현직 자영업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최근 1년간 자영업을 하다가 실직자가 된 이들은 24만7000명.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가구 중 저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25.9%에서 28.4%로 늘었다. 자영업자들은 총량제가 경쟁 심화를 줄일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경쟁을 심화하고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 주장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폐업을 앞둔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폐업 컨설턴트와 현장의 자영업자들을 만나 그 이유를 들었다.
◇ “망한 가게 쪽으론 소변도 안 본다!”
‘11월 5일 자로 본 매장이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의 한 무인 점포 앞에 안내문이 걸려있다. 이곳은 7평(23㎡) 남짓한 공간에 포장된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자판기 안에 진열된 육류 판매 무인 점포다. 주인 김모(63)씨는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은 돼야 수지 타산이 맞는데, 1년 4개월 장사하면서 적자를 본 달이 절반 이상”이라고 했다.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무인 매장을 택했지만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냉장고와 냉‧난방기의 전기 요금, 다달이 나가는 임대료 때문에 부담이 컸다.
이날 오후, 한적했던 김씨의 매장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더니 마음대로 냉장고를 여닫고, 테이블을 옮기기 시작했다. 김씨에게 이 남자의 정체를 묻자, ‘폐업 컨설턴트’라고 했다. 지난달 김씨는 장사를 접기로 결심했지만 남은 임대차 계약부터 공과금 처리, 폐업 신고까지 혼자 할 생각에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폐업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월간창업경제 강종헌 대표를 만났다. 이날도 강 대표는 김씨의 점포를 찾아 에어컨이나 테이블 같은 집기를 중고로 판매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철거를 앞둔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거칠게 욕을 내뱉거나, 펑펑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 아무 내색 없이 담배만 피우기도 한다. 강 대표는 1년 전 생선구이 식당을 하다 반년 만에 장사를 접은 50대 남성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고 했다. 주방 조리 기구며 테이블이며 모든 짐들이 철거되고 휑한 가게를 보자, 그는 참았던 욕을 뱉으며 “에라이, 내가 이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강 대표가 1년 전 폐업 컨설팅을 맡았던 키즈카페 40대 여주인도 잊을 수 없다. 1년 만에 문을 닫게 돼 빚 5000만원을 갚을 수 없게 됐고,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 이혼까지 했다. 폐업 한 달 후 만난 주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대출받은 5000만원, 쓸 때는 적은 돈인데 알바로 갚으려니 막막하다”며 소리 내어 울었다.
◇ 참고 참다 폐업 의뢰하는 자영업자들
폐업 컨설턴트는 사업 정리를 앞둔 가게에서 ‘저승사자’ 취급을 받는다. 환영보다 원망 섞인 말을 더 듣지만, 이들은 자영업자들이 더 큰 손해를 보지 않도록 돕는다. 강 대표는 24년 전 창업 컨설팅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폐업 매장이 급격히 증가한 탓에 요즘은 창업과 폐업 컨설팅 비율이 거의 1 대 1 수준이다. 강 대표와 같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소속된 컨설턴트들은 폐업 상인에게 돈을 받지 않는 대신, 방문 상담 1회당 30만원씩 공단을 통해 받고, 한 매장당 최대 2회까지 방문한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점주의 폐업 결심을 재차 확인하는 것. 그리고 상가 임대차 계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폐업이 아닌 업종 전환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한다. 폐업이 확실한 상황이라면 매장에 남아있는 집기류 판매를 돕는데, 정수기나 CCTV처럼 다달이 이용료를 내는 대여 물품일 경우 위약금 때문에 자영업자가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씨 역시 대여한 냉장고를 팔지 못해 자신의 집에 둘 예정이다.
장사를 접는 식당이 늘면서 중고 집기류를 사고파는 황학동 중앙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강 대표는 “폐업 의뢰를 할 정도면 이미 임대료를 못 낼 수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폐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내색은 하지 않지만 전부 빚더미에 내몰린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 총량제가 경쟁 완화? 이들의 반대 이유
‘음식점 총량제’는 폐업을 줄이기 위해 애초에 음식점 개수를 제한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경영 상식이 부족한 이야기라고 비판한다. 강 대표는 “음식점 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음식점 수를 제한한 채 권리를 사고팔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200만원이었던 권리금이 금세 5배, 10배로 늘게 될 것”이라며 “덩달아 식당 상가 임대료도 올라 결국 부익부빈익빈이 심화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관악구 신원시장 송기춘 상인회장도 음식점 총량제에 반대했다. 송 회장은 지난달 27일 이재명 후보가 음식점 총량제를 언급했던 간담회 자리에 참석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당장 음식점 총량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이 아닌, 앞으로 고민해 보자며 가볍게 말하는 분위기였다”면서도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어야 경쟁이 되고 서비스 질도 좋아지므로 총량제 시행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신원시장에서 10년째 식당을 해온 송명선(61)씨는 “어려운 자영업자를 정부가 도울 순 있지만, 점포 개수를 정해 놓는 방식은 개인 자유를 침해할 뿐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상인들을 앞에 두고 너무 심한 말을 했다”고 말했다.
◇ 가게 내려면 최소한 ‘이 능력’ 있어야
물론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 최소한의 자격은 필요하다. 강 대표는 투자 금액 대비 얼마를 팔아야 순이익을 얻는지 계산하는 ‘수익률 계산 능력’, 그리고 매장 위치와 판매 가격 등의 ‘경쟁력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커피숍을 열 계획이라면 하루에 몇 잔을 팔아야 이익인지, 장소에 적합한 가격으로 팔고 있는지 따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가게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강 대표가 담당하는 또 다른 자영업자 진모(35)씨는 의류 소매점을 1년간 운영하다 지난여름 폐업을 결정했다. 진씨는 “친한 언니가 옷 가게를 열어 잘되는 것을 보고 생애 처음 장사를 시작했는데, 하루 매출이 ‘0′원일 때가 많아 임대료나 인테리어 비용 등 들인 돈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강 대표는 “의류 소매업은 온라인 매장이 많아 오프라인으로는 경쟁력이 없는데 지인의 사례만 보고 섣불리 가게를 연 경우”라고 했다.
◇ 폐업 ‘낙인’ 찍혀버린 사람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고용 동향에 따르면 올해 9월 자영업자 수는 552만8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만6000명 줄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34개월째 연속 감소 추세다. 현 정부 출범 이전인 2016년 9월에 대비하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33만5000명 감소했다. 반면 빚을 진 자영업자는 늘었다. 올해 1분기 기준 자영업자 246만명이 총 832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 작년보다 빚을 진 자영업자가 50만명 늘고, 부채는 132조원 증가했다.
폐업을 앞둔 자영업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업 기간이 60일 이상인 업주 중 폐업했거나 폐업을 앞둔 자영업자라면 ‘희망리턴패키지’ 홈페이지에서 지원할 수 있다. 사업 정리 컨설팅과 점포 철거비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점포 철거비는 평(3.3㎡)당 8만원, 최대 2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강 대표 역시 자영업자 출신이다. 중화요릿집부터 편의점, 닭고기와 소고기 판매도 했다. 하지만 닭 공장을 연 직후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했고, 소고기 육가공 가게를 내자마자 광우병 파동이 일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하고 꼭 이사를 하더라고요. ‘폐업자’ 낙인이 찍힌 것 같대요. 인생 전부를 다 걸고 창업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분들을 상대로 하는 정책은 좀 더 고심하고 진중하게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