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의대는 반드시 수능 1등급만 가는 의대가 안 됐으면 좋겠고, 지역 의사 필수 의료에 헌신할 마인드가 있는 학생을 선발하면 좋겠다.”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가 한 말이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당시 의료 정책 연구 기관에서 내놓은 홍보물 때문이었다.

당시 의사 파업 이슈 중 하나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의대 설립이었다. 공공 병원에서 근무할 의사가 부족하니, 공공 의대를 만들어 그 졸업생으로 하여금 공공 의료에 봉사하도록 의무화하자는 게 그 취지였다. 문제는 공공 의대 선발에 시민 단체가 관여한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조국 딸의 부정 입학이 논란이 되던 때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시·도 추천위원회”가 공공 의대 선발을 담당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답변서는 입시 불공정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의사 측은 여기서 무리수를 둔다. ‘당신의 생사를 가를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 vs ‘성적은 모자라지만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 의대 의사’ 중 하나를 고르라는 홍보물을 만든 것이다.

일러스트=유현호

질문 취지가 전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치료할 실력과, 잠을 희생하면서도 환자에게 헌신할 성실성을 모두 갖춰야 하는 게 의사인데, 학교 성적은 이 두 가지를 판단할 근거가 되니 말이다. 공공 병원이라고 해서 위급한 환자가 오지 않는 것도 아닌데, 기준에 미달하는 이가 공공 병원에 배치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공공 병원을 찾는 환자를 차별하는 행위 아닌가? 하지만 그 홍보물이 ‘무리수’였던 것은, 이것이 공부 잘하는 사람만 의사가 돼야 한다는 엘리트 의식의 표출로 보였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안 대표의 말은 이에 대한 반박이었다. 훗날 안 대표는 자신의 발언이 “수능 성적이 한참 모자라는 실력 없는 학생도 선발해야 한다는 의미로 왜곡됐다”고 했지만,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교 1등 vs 인성’은 한동안 논란이 됐다.

그런데 인생을 좀 살아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사회의 선입견과는 달리 공부 잘하는 이가 꼭 인성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이 중에도 천사가 아닐까 헷갈리는 이들이 있었고, 공부와 담을 쌓은 이 중에도 인성 개차반은 존재했으니까. 게다가 봉사 활동 경력의 화려함이 인성의 보증수표도 아니니, 인성으로 의사를 뽑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이 잣대는 이념 논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흔히 보수는 성장을 중시하고, 진보는 분배를 중시한다고 한다. 보수의 금과옥조인 자유시장경제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소홀한 면이 있으니, 복지를 확대해 약자들의 자립을 돕자는 진보는 꼭 필요한 존재다. 그런데 진보를 표방하는 우리나라 좌파가 이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

멀리 갈 것 없이 문재인 정권을 보자. 경제성장이 자신들의 특기가 아니라서 성장률이 박살 났다면 분배라도 제대로 해야 했건만, 문 정권은 이 일에는 더 무능했다. 우선, 부동산 가격을 유례없이 폭등시킴으로써 서민들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음에도 비정규직 숫자는 사상 처음으로 800만명을 넘어섰다. 저소득자와 고소득자의 양극화는 훨씬 심해졌다.

물론 좌파는 이게 다 코로나 탓이라 하겠지만, 이런 현상은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다. 소득 상위 20% 가구원 1인 소득을 하위 20% 가구원 1인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을 보자. 2015년 4.19배, 2016년 4.51배였던 5분위 배율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후 2017년 4.73배, 2018년 5.23배, 2019년 5.26배로 해마다 악화됐다. 오죽하면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김수현이 “소득 분배 지표 수치가 악화된 것을 보고 밤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을까? 이게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소득 주도 성장과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결과이건만, 김수현은 잠만 안 잤을 뿐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양극화는 코로나가 시작된 뒤 훨씬 심화됐다. 특히 문 대통령이 자랑하는 K방역이 사실상 자영업자 때려잡기였기에, 수많은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성적은 안 좋아도 인성이 좋다면 봐줄 수 있는 법. 좌파가 자기가 해야 할 분야에 무능하다면, 최소한 착하기라도 해야 한다. 여기에 관한 강준만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좌파는) 기본적으로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으로 이야기한다거나.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건 선악 이분법입니다.”

그러니까 좌파는 자기들이 공부는 못해도 인성은 좋다고 우기며, 보수를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입시 비리를 저지른 조국 전 장관 부부, 댓글 조작으로 감옥에 가 있는 김경수 전 지사,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윤미향 등등 좌파는 비리의 정도에서 보수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살다 보면 비리를 저지를 수 있다 해도, 최소한 걸렸으면 사과 정도는 하는 게 도리 아닌가? 그런데도 그들은 사법부의 판결까지 무시한 채 자신은 깨끗하다고 외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성적과 인성 모두 파탄 난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쿠데타의 주범이고 또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등 비판받을 점이 있지만, 북방 외교 등 그 나름의 업적을 세웠고, 무엇보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니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하는 게 맞는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를 보자. 당시 집권당인 보수 측은 심심한 애도를 표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욕을 먹으면서도 조문했다. 가족 비리로 수사받는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지만, 그걸 핑계로 고인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건 좌우를 떠나 너무도 당연한 일이건만, 지금 좌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국가장으로 모시는 것을 극구 반대했고, 문 대통령은 조문조차 가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지금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고 있다. 성추행으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葬)으로 닷새나 했던 걸 떠올리면 어이가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공부도 못하고 인성도 파탄 난 집단에 다시는 표를 주지 맙시다.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