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끌린다. 웹툰 ‘오피스 누나 이야기’는 제목만으로 뭇 남성을 사로잡았다. 2018년 온라인 커뮤니티 엠엘비파크에서 같은 제목으로 연재된 글이 시작이었다. ‘팔메이로’라는 필명을 쓴 작가는 자신의 과거 연애 이야기를 가공한 자전적 이야기임을 밝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총 16화로 연재된 게시글이 편당 조회 수 10만~20만회를 기록하며 소문이 나자 네이버 시리즈에서 판권을 사 웹소설로 만들어졌고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도 연재 중이다.
여성 독자가 압도적인 로맨스 웹소설 시장에서 ‘오피스 누나 이야기’는 독특한 소설이다. 남자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됐고,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남심(男心)에도 불을 지폈다. 지난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웹툰 스튜디오를 방문해 작품을 둘러보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는 작품을 콕 집어 “제목이 확 끄는데요?”라고 했다. 발언이 화제가 되자 연재 중인 웹툰 ‘오피스 누나 이야기’를 찾아보는 이들도 늘었다. 해당 웹툰에는 “이재명 후보 추천받고 왔습니다””뉴스 보고 웹툰 보러 오긴 처음이네요”라는 댓글부터 “집권 여당 대선 후보님도 감탄했다는 제목” ”이재명 후보가 웹툰 보는 눈이 있네” 등 이 후보의 안목을 칭찬하는 댓글까지 달렸다.
◇확 끄는 제목의 중요성
‘오피스 누나 이야기’는 어떻게 제목으로 독자를 확 끌었을까. 로맨스 웹소설 작법을 강의하는 제리안 작가는 “웹소설 제목은 소설의 장르와 소재를 한눈에 보여주면서도 요즘 트렌드를 동시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는 제목은 사내 연애를 암시하면서도 연상연하라는 트렌드가 들어가 있어 잘 지은 제목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웹소설 작법 수업에서도 제목 짓는 법을 따로 가르친다. 웹소설 플랫폼에 게재되는 수많은 작품 중 눈에 잘 띄어야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 창작 전공 교수는 “웹소설의 제목은 로그라인(한 문장으로 요약된 줄거리)이자 독자의 욕망과 기대를 반영한 카피라이팅 문구”라고 했다. “독자는 제목만 보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상을 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 혼자만 레벨업!’이라는 제목이면 레벨업을 통해 성장하는 게임 판타지겠구나,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이라면 강속구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클릭하죠.”
로맨스 웹소설 작가이자 장르 소설 연구자인 손진원씨는 제목을 잘 지은 웹소설의 또 다른 예로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재혼황후’를 들었다. “굉장히 직관적이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잖아요. 둘 다 바람난 남편을 버리고 새 인생을 찾는 복수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제목이죠.”
◇직장인판 ‘건축학개론’?
로맨스 웹소설의 성공 공식 중 하나는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다. 업계에선 “로맨스 웹소설 남자 주인공은 환상의 동물, 유니콘과 같은 존재”라고들 한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의 경우엔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반대로 완벽에 가까운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싱글맘이지만 배우 손예진을 닮은 얼굴에 점심때마다 운동으로 몸매를 관리하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데다 현명하고 배려심까지 깊다. 제리안 웹소설 작가는 “로맨스 웹소설 시장에서 여성 독자 비율이 높긴 하지만,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처럼 남자들도 예쁜 누나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은가”라면서 “여성 독자들도 외형적으로 매력적인 여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면서 보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 못지않게 여자 주인공의 매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는 평범한 30대 대기업 직장인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인 ‘오피스 누나’에게 끌리면서 펼쳐지는 사내 연애물이다. 3년 전 연재 당시 남성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의 직장인 버전이다” ”젊은 날의 추억을 상기시켜줘서 고맙다” 등의 호평이 달렸다. 한 30대 남성 독자는 “제목만 보고 싸구려 B급 소설일 거라 예상했는데 읽는 내내 이뤄지지 않았던 과거의 사랑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 이후에 디시인사이드 웹툰 갤러리에서는 “정치권에 의해 ‘오피스 누나 이야기’ 작품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면서 “이 작품은 단순히 성숙한 어른의 연애 이야기이며, 작가가 연애하며 치유받은 감정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내 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성명까지 발표했다.
‘오피스 누나 이야기’처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남성 작가가 남성 독자를 위한 로맨스 소설을 쓰기가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엔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 ‘밤마다 찾아오는 남자’의 작가가 남성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해당 작품을 거론하며 “남자 작가 밀어주기가 심하다”는 글이 올라왔고 이후부터 일부 독자가 평점을 낮게 주고 악성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손진원 웹소설 작가는 “옛날부터 로맨스 웹소설이나 팬픽을 외설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독자들도 폐쇄적인 성향이 강해졌다”면서 “여성만의 공간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남성 독자나 남성 작가가 섞여 있었다고 하면 당황하고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소설 이용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평소 가장 즐겨 보는 웹소설 장르는 로맨스(28.2%), 판타지(26.9%), 로맨스 판타지(15%)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로맨스를 가장 즐겨 본다는 응답자가 42.1%로 압도적이었다. 남성은 판타지(41.7%)라는 답변이 제일 많았지만, 무협(13%)보다 로맨스(14.4%)를 1순위로 꼽은 남성이 더 많았다. 제리안 작가는 “로맨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는데 기수마다 한 명씩은 남성 수강생이 있다”면서 “여성 작가도 무협 소설을 쓰듯이 섬세한 남성 작가는 충분히 로맨스를 쓸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남성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중성적인 이름으로 필명을 지으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