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박세리(44)를 모르는 사람 있을까. 하지만 박세리에 대한 기억이 ‘한국 골프의 전설’ 또는 ‘골프 여제’에 멈춰 있다면 당신은 중년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젊은 층에게 박세리는 ‘리치(rich) 언니’로 통한다. 각종 예능 프로에서 웅장한 자택을 공개하고, 명절 음식 준비를 위해 재래시장에 카트를 2개나 끌고 가 식재료를 가득 사 담고,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우 스테이크를 직접 조리해 배불리 먹이고, 사비(私費)로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려 놀게 하는 등 재력을 유감없이 플렉스(flex·과시)하며 ‘리치 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칫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박세리는 특유의 진솔함과 솔직한 말투, 당당함으로 오히려 사랑받고 있다.
그는 TV 화면 밖에서도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자신의 회사를 세워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고 종합 스포츠 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림픽 여자 골프 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따냈다. 얼마 전에는 자기 이름을 라벨에 새긴 와인을 출시했고, ‘세리, 인생은 리치하게’(위즈덤하우스)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골프 이후의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펼쳐가고 있는 박세리를 만났다. 그는 “’리치 언니’라는 별명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금전적 의미의 ‘리치’가 아닌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롭다는 진정한 의미의 ‘리치한 삶’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 골프 선수로서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렸듯, 저의 두 번째 삶으로 많은 분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지도자 아닌 다른 길에 도전했다
-골프의 전설이 ‘예능 대세’가 됐다.
“그동안 운동선수가 은퇴하면 갈 수 있는 길이 딱 정해져 있었다. 지도자의 길. ‘과연 이 길밖에 없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꼭 방송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방송을 즐기는 듯 보인다.
“재미있다. 원체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성격이라 즐겁지 않았다면 진작 그만뒀을 것이다. 친해지기 어려웠던 다른 종목 선수들, 그리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설정이나 연출은 없나.
“꾸며서 하는 건 없다. 억지로 지어내야 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에서 보이는 성격은 정말 날것 그대로의 캐릭터다. 꼬질꼬질하고 별거 없는 나의 일상에 관심을 가져줄까, 내 솔직한 모습이 드러날 텐데 오해를 사진 않을까 긴장됐다.”
-방송 후 반응이 폭발적이라 얼떨떨했다던데.
“생각해보니 과거 골프 선수로서 나는 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표정을 감춘 사람이었다. 뜻하잖게 신비주의의 그늘에 가린 사람이었던 걸까.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반려견들과 놀고, 밥 해 먹고 늘어져 TV 보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게 아닌가 싶다.”
-골프 선수로서 전성기였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가.
“선수 시절 삶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현역 시절 행복은 우승 순간에 느끼는 성취감에 가까웠다. 은퇴 후 사업을 하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해설위원을 해보니 각각의 영역에 고유한 보람과 성취감이 존재하더라. 방송은 중압감에서 벗어난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만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
-방송 나갈 때마다 ‘세리 언니, 사이다’라는 반응이 올라오더라.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반응을 보면 기분 좋다. 하지만 솔직하다고 하고 싶은 말을 무작정 다 하진 않는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전달하려면 ‘선’을 지켜야 한다.”
-방송을 통해 얻은 별명 ‘리치 언니’가 부담스럽진 않은가.
“‘나는 어쩌다가 만인의 언니가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편안하게 아무 말이나 나눠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넓은 품을 가진 사람이 언니 아닐까. 그래서 언니라고 하는 존재가 된 건 마음에 든다. 리치(부자) 언니라는 별명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금전적 의미의 ‘리치’가 아닌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롭다는 의미의 ‘리치’ 언니로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마음의 ‘리치함’은 어떻게 갖게 됐나.
“선수 시절에는 마음의 여유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매주 대회가 있었고, 좋은 성적을 위해 연습해야 했고,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알람을 맞춰놓고 자면 몇 시간 간격으로 계속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고 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하지만 긴장돼도 아닌 척, 멘털이 흔들려도 굳건한 척, 기뻐도 덜 기쁜 척 살았다. 원래 솔직한 사람인데, 선수로서 솔직함은 언론을 거치며 때로 독이 되기도 해 항상 조심했다. 은퇴하니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모든 순간에 솔직해지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노는 언니’에 함께 출연하는 여자 후배들이 ‘살림도 음식도 잘하는 천생 여자’라던데.
“집이 깔끔하다고들 하는데, 원래 지저분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생활하면서 스스로 편해지려다 보니 물건이 늘 있는 곳에 있어야 하고, 바로바로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됐다. 요리는 해외에서 선수 생활 하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인터넷에 나오는 레시피 따라 하다 보니 기본은 한다. 잘한다기보다 간은 맞추는 것 같다.”
-재력도 재력이지만 손이 워낙 커서 리치 언니 소리를 듣는 것 같더라.
“음식을 조금만 하는 게 제일 힘들다(웃음). 양 조절을 못한다. 장 볼 때도 적게 사지를 못한다. 항상 넉넉한 걸 좋아한다. 여럿이 모여 나눠 먹기를 즐긴다.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으면 절대 맛없다. 흥청망청 쓰지는 않지만 이렇게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지 않았을까.”
◇방송은 부캐, 사업이 본캐
-이제 방송이 본업인가.
“방송은 박세리의 ‘부캐(부수적 캐릭터)’다. 뭘 하건 홍보 효과는 무시 못 하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 내가 과연 매력적 브랜드일까 고민했다. 미국에 건너가 첫 우승을 한 1998년 태어난 이들이 TV를 시청하고 있다. 은퇴 후 예능에 처음 출연했을 때 ‘박세리가 누구냐’고 묻는 시청자가 꽤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그저 ‘전설’로 전해 듣는 인물이 아닌, 동시대인이라는 위치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송은 그 디딤돌이 돼주었다.”
-박세리의 ‘본캐’는 뭔가.
“지난해 ‘바즈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골프 관련 콘텐츠 제작, 제품 판매 교육까지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박세리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의식주 관련 다양한 사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한다. 궁극적으로는 골프뿐 아니라 모든 종목을 아우르는 ‘종합 스포츠 학교’를 세우고 싶다.”
-종합 스포츠 학교라니?
“선수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골프 같은 인기 스포츠도 그런가.
“신기하지 않은가? 비인기 스포츠는 더더욱 그렇다. 학업이 끝난 후에 멀리 이동할 필요 없이 바로 훈련할 수 있고, 전문적 훈련 코치·감독과 기숙사를 갖춘 학교를 만드는 게 목표다.”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올해 치른 도쿄 올림픽에서는 4위라는 성과를 올렸다.
“골프는 개인 운동이다. 단체 스포츠와 달리 합숙해서 같이 훈련하고 호흡 맞추는 과정이 없다. 더구나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오른 선수들이었다. 자기 방식대로 잘해오던 선수에게 갑자기 새로운 코칭을 하면 도움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된다.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수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선수들이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분위기를 잡아갔고, 선수들에게 먹고 싶은 게 뭔지 물어봐서 숙소에서 만들 수 있는 거라면 다 만들어줬다.”
-최근에 ’박세리 와인’도 내놨다. 양조장도 차린 건가.
“직접 만든 건 아니고 여섯 가지 와인을 시음해 입에 맞는 와인 3가지를 골랐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많이 마셔봤기 때문에 좋은 와인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수는 있다. LPGA 투어 생활을 하면서 지인들과 식사하는 기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와인에 빠져들었고, 은퇴 무렵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파밸리 와인 투어를 다녔다.”
-미국 와인의 아버지라는 로버트 몬다비(1913~2008년)가 만든 ‘몬다비 와이너리’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던데.
“몬다비가 만든 와인 코르크에는 ‘와인은 열정이다(Wine is Passion)’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와인을 골프 특히 한국 골프로 바꿔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와인을 좋아하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와인도 첫인상이 중요하다. 첫 모금에서 깊고 강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가장 맛있다.”
박세리가 선보인 와인은 ‘더 시즌 와인즈 바이 세리 박(The Season Wines by Seri Pak)’이다. 레드와인 2종류와 화이트와인 1종류 등 3종으로 구성됐다. 와인 업계 최초로 시즌제 방식을 도입해 매년 새로운 와인을 선보인다는 점이 독특하다. 박세리와 함께 와인을 출시한 와인 수입사 관계자는 “박세리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와인 정보 없이 시음)에서 포도 품종을 모두 맞혀 놀랐다”고 했다.
-책에서 스스로를 ‘사회 초년생’이라고 소개했던데, 24년간 프로 생활을 했는데 초년생이라니?
“필드와 사회는 차이가 크다. 선수는 자기 자신만 책임지면 된다. 사회에 나와서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대인 관계도 선수 때는 한정적이지만 사회 활동을 하면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운동 말고는 해본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경험자로서 조언한다면.
“과거의 영광을 지우고 리셋(reset)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새로운 일을 할 때는 초보의 마음으로 임해야지,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만 생각하면 결과도 금방 나와야 할 것 같고 자리도 바로 잡아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휘둘린다. 뜻하는 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초조해지고 일을 그르친다.”
◇상록수가 ‘내 노래’인 줄 알았다
박세리가 골프의 전설이자 국민 영웅으로 각인된 건 1998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했을 때다. 1996년 프로 데뷔한 박세리는 1998년부터 미국 LPGA 투어에 참가했다. 투어 첫해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신인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우승했다. 같은 해 7월 열린 US 여자오픈 연장전 18번홀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하얀 맨발로 연못(워터해저드)에 들어가 어려운 샷을 극적으로 성공시켰다. 그의 우승은 당시 IMF 외환 위기로 절망에 빠져 있는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박세리는 그해에만 4승을 거두며 LPGA 올해의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 최연소 메이저 4승, 2007년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최연소 LPGA 명예의 전당 입회 등 기록을 써 나갔다.
-’맨발 연못 샷’ 영상과 함께 광고에 깔리는 ‘상록수’가 당신을 위해 만든 노래인 줄 알았다던데, 사실인가.
“원곡을 최근에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가사가 꼭 내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신기했다.”
-희망의 아이콘으로 국민적 영웅이 됐다. 부담스럽진 않았나.
“전혀.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인정해주는 만큼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성격 같다.”
-연못에 발을 내디디며 어떤 생각을 했나.
“시간은 굉장히 짧았지만 머릿속은 엄청 복잡했다. 이 샷을 선택할지, 아니면 안전하게 벌타를 먹고 공을 필드에 드롭(drop) 하고 쳐야 할지. 오래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단 한 가지는 알았다. ‘도전해봐야겠다’는 것.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도 생기지 않고, 내가 뭘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앞으로 살면서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면 주저 없이 도전할 거다.”
-뭐든 일단 해보자는 주의인가.
“실패가 두려워서는 성장할 수 없다. 일단 해보면 성공하건 실패하건 내 자산이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많이 쳐보고 많이 실수해봐야 한다.”
-슬럼프 덕분에 인생 2막을 열 수 있었다고.
“운동선수에게 슬럼프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진다. 슬럼프는 부상이나 훈련을 게을리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각자 다 다르다. 처음 슬럼프가 왔을 때 미친 듯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조급함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손가락 부상이 찾아왔고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면서 오히려 슬럼프를 극복했다. 그때까지 나는 쉬는 법, 스스로를 돌아보는 법을 몰랐더라.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구나. 직업이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는구나.’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앞으로 얼마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인생 계획을 세웠다. 슬럼프 기간은 나에게 25승보다 값진 시간이었다. 슬럼프 없이 계속 잘됐으면 골프 이외의 다른 걸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 시절이 그립진 않은가.
“잘한 샷이 나왔을 때 팬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가장 좋았는데, 은퇴하면서 들을 수 없으니 그립다. 그렇지만 선수 생활로 돌아간다고 하면…. 글쎄다.”
-은퇴 이후로 골프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솔직히 아직 골프가 즐겁지 않다. 보통 선수들도 은퇴하고 나면 ‘명랑 골프’라고 해서 즐겁게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아직 다 내려놓지 못한 모양이다. 필드에 서는 순간 승부욕이 나온다. 은퇴하고 클럽을 잡은 때가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지인들에게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얘기를 해놨기 때문에 같이 골프 하러 나가자는 얘기를 나한테 하지 않는다. 아, 골프는 인류의 마지막 날까지 남을 스포츠가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운동이다. 단지 직업적으로 치기엔 정말 힘들다는 말이니 오해 마시길 바란다.”
-그럼에도 골프 예능 프로는 찍고 있다.
“일이니까. 예능인데도 마음먹은 대로 쳐지지 않으면 화가 난다. 방송에서는 화를 다 낼 수 없어서 자제하느라 너무 힘들다, 하하!”
-’어떻게 해야 골프를 잘하느냐’가 여전히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정말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연습장에서 연습을 많이 하시느냐’고 되묻는다. 내가 생각하는 골프 잘하는 비결은 연습뿐이다. 골프를 많이 하는 분일수록 연습을 소홀히 한다.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한다. 초보자는 반드시 프로 골퍼에게 레슨 받으라고 말한다. 골프를 처음 할 때는 나보다 먼저 친 친구들에게 배우곤 하는데, 기본이 망가지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보고 싶진 않은가.
“다들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묻는다. 결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웨딩드레스를 입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계획한다고 그대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맞는 상대가 나타나야 하는데 아직 없다. ‘박세리의 남편’이라는 닉네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