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유명 유튜버 ‘입짧은햇님’은 편의점 음식들을 먹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실시간 채팅창을 보던 그는 “아, 진짜? 체크를 못 했네”라며 황급히 딸기 우유를 숨겼다. 이 우유는 서울우유의 제품. 최근 서울우유가 여성을 젖소에 비유하는 듯한 광고를 내 논란이 됐는데, 화면에 서울우유 제품이 나오자 시청자들이 이를 지적한 것이다.
우유업계가 요즘 연이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문제의 서울우유 광고에는 초원에서 요가를 하는 여성이 젖소로 변하는 장면, 그 모습을 남성이 몰래 카메라로 촬영하려 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이 광고는 지난달 29일 공개됐는데, 논란이 커지자 8일 비공개로 전환됐고 서울우유는 “앞으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검토와 주의를 기울이겠다”며 사과했다. 9일에는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의 웹툰이 문제가 됐다. 2014년 제작된 웹툰 ‘춘봉리 사람들’의 여성 캐릭터 밀키는 몸에 딱 붙는 짧은 얼룩무늬 원피스를 입고, 소의 목에 다는 방울 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다.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도 비판 여론이 일자 11일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에서 해당 웹툰을 내렸다.
논란이 잇달아 터지자 소비자들은 “대체 우유업계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세 쌍둥이 형제를 키우고 있는 주부 최모(40)씨는 “서울우유 제품을 애용했었는데, 이제 조금 더 비싸더라도 다른 브랜드 제품을 사려고 한다”며 “서울우유 제품을 볼 때마다 역겨운 그 광고가 떠오를 것 같다. 그 광고를 만들고 승인한 사람들이 만드는 우유를 우리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대생 김모(23)씨는 “(논란이 된) 광고와 웹툰 모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심각하다. 여자가 젖소란 말인가. 몰카는 또 뭔가. 정말 소름끼치고 불쾌하다. 우유는 저렇게 안 하면 홍보가 안 되는 건가”라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서울우유의 2003년 행사, 부산우유의 2006년 광고도 소환됐다. 당시 서울우유는 요구르트 신제품 홍보를 위해 행사장에 전라의 여성 모델들을 출연시켰고, 이 행사로 인해 당시 서울우유 마케팅팀장 등이 공연음란죄로 벌금형을 받았다. 부산우유 광고에는 남자 선생님과 여학생들이 등장하는데, 교탁 위에 놓인 우유를 보고 선생님이 의아해하자 한 여학생이 ‘저희가 한 방울씩 모았어요’라고 답한다. 양웅 동서대 교수는 “논란이 된 우유 광고들은 일종의 성적 소구(sexual appeal) 광고로, 사람들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해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라며 “과거와 달리 지금 서울우유 광고 논란이 크게 번진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미디어에 매우 민감하고, 소비자의 광고 리터러시(문해력)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 “식품 광고에서 무분별하게 성적 소구형 광고를 활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인터넷 여초 커뮤니티에는 서울우유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글도 여럿 올라왔다. 일부 이용자는 서울우유를 사용하는 카페 리스트를 올리기도 했다. 한 이용자는 “남양(유업) 보고도 위기의식이 없나. 유제품 쪽은 대체품이 많아서 불매 타격이 크던데”라고 했다.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이른바 대리점 갑질 사건 이후 여직원 성차별, 경쟁사 비방, 불가리스의 코로나 예방 효과 허위 과장 광고 등 각종 논란과 의혹에 휩싸이며 수년째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양유업은 한때 자사 상표를 가리거나 숨기는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는데, 일부 소비자들은 요즘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남양유업 관련 제품들의 목록을 올리며 불매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상품의 바코드를 찍으면 남양유업 상품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애플리케이션도 나왔다.
업계에서는 매일유업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1위인 서울우유에 대한 불매 의지를 보인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매일유업 제품을 대체재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주부 김모(43)씨는 “딸들과 서울우유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마시던 우유를 매일유업 제품으로 바꾸는 데 다들 동의했다”며 “이왕 먹는 것 착한 기업에서 만드는 우유를 먹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소비자들은 매일유업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천성 대사이상을 겪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특수 분유를 생산한다는 등의 미담을 적극 소개하며 매일유업 제품 소비를 독려하고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매일유업이 이 일로 반사이익을 받는다는 관측은 부담스럽다”며 “우유업계 전반적으로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출산율 감소, 다양한 음료의 출시 등으로 소비 변화가 일어나 백색시유(흰 우유)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논란들이 터진 것”이라며 “향후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서울우유는 국내 최고 우유 기업임에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모유 생산자로 보는 시각이 담긴 매우 부적절하고도 시대착오적인 광고를 내보냈다”며 “오늘날 기업은 과거와 달리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고, 기업 이미지는 매출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철저한 반성과 이미지 개선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에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우유 광고는 과거에 이미 철퇴를 맞았다. 코카콜라의 우유 브랜드 ‘페어라이프’의 2014년 광고에는 여성들이 흰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했는데, 자세히 보면 마치 몸에 우유를 끼얹은 듯한 모습이다. 광고에는 ‘그녀가 입은 것을 마셔요’ 등의 문구도 삽입됐다. 테스트 광고가 나간 뒤 비판 여론이 일었고, 코카콜라는 해당 광고를 중단했다. 2011년에는 미 캘리포니아 우유가공위원회(CMPB)가 만든 광고가 논란이 됐다. 이 광고에는 미안한 표정의 남성이 양손에 우유를 가득 들고 등장한다. 남성의 머리 위에는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 등의 문구가, 아래에는 ‘우유가 여성의 월경전증후군(PMS)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 광고 역시 비난 여론에 직면했고, CMPB는 공식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