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일시적 시련’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실패’라고 말한다. 현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운 ‘K방역’ 얘기다.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은 위중증 환자가 폭증하고 의료 체계가 마비되면서 결국 44일 만에 멈춰 섰다. 지난 18일부터 거리 두기가 재개됐지만 확진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위중증 환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사실상 의료 체계가 마비되면서 코로나 환자가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고 임신부가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현 상황에 대해 “시련이 성공을 만든다”며 “잠시 멈추는 지금 이 시간을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K방역이 실패한 게 아니라 일시적 시련에 봉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평가는 싸늘하다. 이들은 “지금 위기는 정부가 자랑하던 ‘K방역’의 실패가 누적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의료계 및 사회 각계 전문가들이 현 정부의 방역을 비판한 목소리를 망라한 책 ‘K방역은 없다’의 대표 저자 이형기 서울대 임상약리학 교수는 “정부가 자화자찬하는 K방역은 분명히 실체가 없다”며 “K방역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의 공로가 아니라 국민의 희생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했다. 한때 방역 실패로 조롱받던 일본은 최근 코로나 상황이 급격히 호전되면서 “J방역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체 K방역은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①뒤늦은 입국 제한… 물 건너간 대만 모델
정부·여당은 유럽과 미국 등 서방 선진국보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적다는 점에서 K방역이 성공이라고 말해왔다. 검사(Test)-추적(Trace)-치료(Treat)로 이뤄진 ‘3T’ 전략으로 확진자를 조기에 찾아 격리·치료한 덕분에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크게 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K방역은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대만, 뉴질랜드, 호주 등과 성과를 비교하는 게 맞는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반도 국가지만, 분단 상태를 감안하면 사실상 섬나라다. 항공편 입국·검역만 엄격하게 관리하면 해외발 전염병 유입을 차단하기 쉽다는 점에서 유럽 국가들과 차이가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이점을 살리자는 의료계 조언을 무시했다. 입국 금지가 외교·경제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도 1월 30일 중국 우한 주민 전면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2월 초에는 중국발 입국을 전면 차단했다. 조기에 코로나 유입을 막으면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이 정상 유지됐고, 덕분에 경제성장이 가속화되고 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사태 초기 입국 제한 조치를 했다면 대만과 같은 ‘코로나 제로’ 모델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었는데, 정부가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방역 당국은 입국 금지나 자가 격리 대신 입국자에 대한 체온 측정과 모바일 앱으로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자진 신고를 하는 검역 조치를 취했다. 당시 코로나가 무증상 감염·전파가 가능하다는 명확한 정보가 없어 이런 허술한 검역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사태 초기 입국 제한이 중요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②위기 대응 파트너인 의료계와 내분 자초
대구·경북 유행 이후 전문가들 사이에선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정부는 돌연 공공의대 신설과 의사 정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공공의료 인력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최근 중환자 병상과 의료 인력이 부족한 걸 감안하면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부 말대로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의사 인력이 새로 배출되려면 최소 6~1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코로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도 아니고 의료계가 오랫동안 반대하는 사안인 걸 잘 알면서도 코로나를 핑계로 정치적 숙원 사업을 밀어붙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쟁 중에 내분을 일으킨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의료계와 싸울 게 아니라 민간 의료 자원을 어떻게 동원·활용할지 의료계와 협의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의료계 파업이라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정부는 공공의대 학생 선발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일고 8월 중순부터 2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슬그머니 정책 추진을 중단했다. 그해 여름 정부와 의료계와 부딪치는 동안 유럽 선진국과 일본 등은 해외 제약사와 코로나 백신 선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③고무줄 방역이 가져온 불신
전문가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연초까지 이어진 3차 대유행은 K방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 결정적 시점으로 평가한다. 확진자가 일일 1000명대를 넘어가면서 감염원을 추적·검사하는 3T 시스템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역학조사보다 고위험군 보호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방역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도리어 검사량을 더 늘리고 강도 높은 거리 두기를 장기간 유지하는 ‘코로나 제로’ 정책을 고수했다. 코로나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과 ‘적은 확진자’를 성과로 내세운 K방역에 대한 집착이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교수는 “정부가 정한 거리 두기 기준을 정부 스스로 지키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작년 11월 초 거리 두기 단계를 개편하고 돌연 거리 두기 단계를 낮췄다. 그러다 확진자가 급증하고 의료 체계가 과부하에 이른 3단계 상황에 이르렀지만, 정작 정부는 “3단계를 시행하면 사회적·경제적 피해가 크다”며 2.5단계, 1.5단계 등 일명 ‘쩜오’ 조치를 반복했다.
이번 위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지난달 말부터 수도권 의료 체계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달했지만 정부는 공언했던 비상 계획을 발동하지 않았다. 그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④백신 두고 우왕좌왕… 위드 코로나도 꼬였다
방역 실패로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는 뒤늦게 백신 도입을 서둘렀다. 국산 백신 개발에 근거 없는 기대를 걸다 뒤늦게 계약에 뛰어든 탓에 계약한 물량 대부분이 올해 하반기 들어서 도입됐다. 최재욱 교수는 “중요한 방역 결정이 과학과 의학에 근거하지 않고 번번이 여론의 눈치를 살핀 정치적 판단으로 이뤄진 게 K방역의 실체”라고 말했다
백신 수급난이 빈발하자 정부는 임의로 접종 간격을 바꾸고 교차 접종도 급작스레 허용했다. 추석 전 1차 접종률 70% 달성을 위해 2차 접종 물량을 1차 접종에 앞당겨 쓰려는 조치였다. 지난 6월 전파력 강한 델타 변이가 국내에 확산하면서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전문가들은 “접종률 달성을 고집하지 말고 고위험군부터 접종 완료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정부는 집단면역 목표를 철회하지 않고 접종률 달성에만 매달렸다.
지난 10월부터 이미 치명률이 상승하는 이상 조짐이 나타났는데도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을 강행한 것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정부 관계자는 “10월에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절대적으로 높았다”고 항변했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코로나 치명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위험 신호를 제대로 알렸다면 여론은 얼마든 달라질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⑤확진자 줄이려 공포에 호소한 K방역의 한계
K-방역에 대한 평가에서 빠질 수 없는 건 ‘국민의 협조’다. “우리 국민만큼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백신 접종에 협조적인 나라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하지만 국민들의 강력한 협조는 정부가 코로나 공포감을 키운 영향도 적지 않다.
마상혁 부회장은 “확진자를 보면 50대 이하는 특별한 증상이 없거나 경증이 대부분인데, 무조건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는 식으로 확진자를 줄이려는 데만 집중했다”며 “정부가 코로나 공포감을 키워놓다 보니 국민들은 더 강한 방역 정책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한때 1일 2만명 넘게 발생해 조롱을 받던 일본의 J-방역이 최근 재평가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K방역은 없다’의 공저자인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는 “한·일 간 방역의 차이는 성적보다 전략에 있다”며 “일본은 선택적으로 검사하고 중증 환자에게 의료 자원을 집중하는 등 처음부터 종합적 안정성을 중시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위기는 고위험군 보호와 일상과 방역의 균형 대신 확진자 수 줄이기에 급급했던 K방역의 단면이 드러난 결과인 셈이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