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무상하고, 시간은 쉽게 지나가 버립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함께 노력하면, 벗들이 자신을 갈고 닦는 타산지석의 길이 될 것입니다. 당장 오늘부터 그 전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이 만남이 헛된 모임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聚散無常, 光陰易過, 共勉爲千秋傳人, 乃爲友朋切磨他山攻玉之道, 今日伊始, 始非虛會)” -신재식의 ‘필담(筆譚)’ 중에서
연말이 되었지만, 바이러스의 창궐과 추가 방역 조치로 인해 모임 갖기가 어려워졌다. 모이기 어려워진 만큼, 간신히 두세 명이라도 만나게 되면 그 정(情)은 각별하기 마련이다. 각자 품에 넣어온 술을 나누어 마시고, 질세라 그 시절의 참소리들과 헛소리들을 교환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무리 즐거운 만남이었어도 결국 어쩐지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배 위에서 경치를 즐기며 술 마시고 희희낙락했던 옛사람들도 이렇게 말했다. “잘 놀고 흐뭇했어도, 일이 지나고 보면 문득 슬프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風流得意之處, 事過輒生悲凉).”(홍세태의 ‘유하집’)
이 슬프고 쓸쓸한 감정은 노년이나 연말이 되면 한층 더 심해진다. “누가 백 살을 살 수 있으리오. 지나간 날은 멀고, 올 날은 짧으며, 올라가는 기세는 더디고, 내려오는 기세는 빠른 법이다(人生誰能萬百, 去日遠而來日短, 上勢遲而下勢疾).”(오광운의 ‘약산만고’) 왜 이렇게 슬프고 쓸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일까? 세상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그 즐거웠던 모임도 영속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한 만남도 시간 속에서 풍화될 것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어 그 즐거웠던 순간을 박제하려 든다.
십수 년 전 미국의 대학에서 가르치던 시절의 일이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졸업식과는 달리 그곳 졸업식은 화창한 6월 초의 날씨만큼이나 흥겨웠다. 함성과 농담과 춤사위와 행진과 음악이 어우러졌다. 그 광경이 하도 신기하고 다채로워서, 예복을 입고 내 앞을 뒤뚱뒤뚱 지나가던 총장을 사진으로 찍었다. 찰칵! 르네상스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답게 그 총장은 천천히 돌아서서 사진을 찍는 내게 장중한 농담 한마디를 던졌다. “그대는 나를 불멸화(immortalize)하려는가?”
그의 모습은 시간 속에 사라질지라도, 사진에 박힌 그 순간만은 어쩌면 (사진이 보존되는 한) 영속할지도 모른다. 나는 단순히 셔터를 누른 것이 아니라, 셔터 누름을 통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 것이다. 불멸과 영원이라, 그런 녀석들에 대한 욕망이라면 동서고금에 두루 발견된다. 약 200년 전 이맘때, 조선 지식인 신재식(申在植)은 사신 자격으로 북경에 갔다가, 청나라 지식인들과 귀한 만남을 갖게 된다. 특히 왕균(王筠), 이장욱(李璋煜), 왕희손(王喜孫) 등과 마음이 맞아 네 번이나 회합을 갖고, 그 시절의 학술과 문화와 인생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한겨울에 국경을 넘어 이루어진 그 밀도 있는 만남이 그저 한때의 이벤트로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모임의 기록을 남기자고 그들은 의기투합한다. 사진이 없던 시절, 만남을 남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남기는 일이었다. 서두의 인용문은 왕희손이 만남의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자고 제안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나 글이라고 영원할 것인가. 시간의 덧없음에 대처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해서 개별 인생이 실제로 영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천지간에 산다는 게, 군집하는 하나의 사물에 불과할 뿐이다. 홀연히 모였다가 홀연히 흩어진다. 소리 낸 것이 말이 되고, 흔적을 남긴 것이 글이 되지만, 금방 노쇠하여 적막하게 사라지고 만다. 새와 짐승이 울고, 구름과 안개가 변해 사라지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으리오(人生天地間, 固羣然一物耳. 其忽而聚, 忽而散, 聲之爲話言, 跡之爲翰墨, 仰俯遷謝, 固歸銷寂, 與鳥獸之啁啾, 雲烟之變滅, 亦復何別).”(김매순의 ‘대산집’)
이렇게 탄식한 김매순도 글 쓰는 일의 각별한 의미를 아예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백 년 전 일을 바로 어제 일처럼 뚜렷하게 말할 수 있으니, 어찌 그 사람이 뛰어나고 문채와 풍류가 기록할 만해서가 아닐까(而有能道數百年前事, 顯顯如昨日者, 豈非以其人之賢而文彩風流足述也歟).”(김매순의 ‘대산집’)
글을 썼다면 누군가 읽어줘야 한다. 서두의 인용문에서 왕희손이 굳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래서이다. 타산지석은 원래 시경의 소아(小雅)편에 나오는 “다른 산의 (못난) 돌도 옥을 가는 데 사용할 수 있다(他山之石, 可以攻玉)”라는 표현에서 유래한 말이다. 못난 돌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왕희손은 자신들이 후대 사람의 모범이 되고자 글을 남기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 저 표현을 썼다. 뒷사람이 자기들의 못난 글을 보고서, 나는 이렇게 멍청한 소리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경각심을 가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왕희손의 말대로라면, 글 쓰는 사람은 용기를 가져도 좋다. 못난 글은 못난 글대로 누군가의 타산지석이 될 수 있으므로. 이렇게 자신을 이해해 줄 독자를 상상하고 글을 쓰는 한, 시간을 뛰어넘어 필자와 독자 간의 ‘상상의 공동체’가 생겨난다.
이처럼 사람들이 글을 써 남기는 것은 하루살이에 불과한 삶을 견디기 위해 영원을 희구하는 일이다. 훗날 누군가 자기 글을 읽어주기를 내심 바라는 일이다. 불멸을 원하지 않아도, 상상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지 않아도, 글을 쓸 이유는 있다. 작가 이윤주는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서 글을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엄습하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쓸 필요가 있다고. 쓰기 시작하면 불안으로 인해 달구어졌던 편도체는 식고,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진정될 수 있다고.
인류는 멍청한 짓을 반복하고 환경은 꾸준히 망가지고 있는데, 불멸을 꿈꾸는 것은 과욕이 아닐까. 연말을 맞아 나는 고생대에 번성하다가 지금은 멸종한 삼엽충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장차 멸종할 존재로서 이미 멸종한 존재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상상의 공동체를 이룬다. 그것이 시간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