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에 수많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을 했다.”
지난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일본 대표단장 이즈미 히로토(和泉洋人)가 단상에 올라 말했다. 일본이 국제 무대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이 회의에서 일본은 ‘강제 노역’ 사실을 인정하며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안내 센터 설치 등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영세 당시 외교부 장관은 “외교적 노력으로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됐다”며 “한·일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등재에 성공한 이후 일본은 말을 바꿨다. 2017년 유네스코에 낸 첫 보고서에서부터 ‘강제 노역’이라는 표현이 빠지더니, 2019년 2차 보고서에서는 관련 내용이 아예 생략됐다. 강제 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겠다는 당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오히려 강제 노역을 부정·왜곡하는 내용을 전시했다.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등재 당시 권고한 후속 조처를 이행하지 않은 데 강한 유감을 표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네스코가 일본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강제 동원’ 역사 감추려는 꼼수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佐渡)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됐다.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는 지난달 28일 세계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사도광산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다음 달 1일까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최종 신청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일본이 신청서를 제출하면 유네스코 자문 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심사·평가를 거쳐 2023년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전문가들은 ‘제2의 군함도’ 사태가 재연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 사도광산은 17세기 에도 시대 세계 최대 금 산출지다. 1896년 민간 기업인 미쓰비시에 매각됐고, 이후 태평양전쟁 당시 구리·철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활용됐다. 당시 조선인 최소 1140명이 강제 동원돼 고초를 겪었다.
문제는 니가타현이 사도광산의 신청 대상을 ‘센고쿠 시대(1467~1590) 말부터 에도 시대(1603~1867)’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어두운 역사를 감추려는 ‘꼼수’ 전략이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1467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 가운데 일부만 똑 떼어내 등재하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사도광산의 현장이 쌓아온 수백 년 역사에서 일부 시기만 자른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원칙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완전한 역사(full history) 반영’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이사인 강동진 경성대 교수는 “사람으로 치면 유년기 특징만 놓고 ‘어릴 때는 착했다’고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일 정치 싸움으로 비치면 안 돼
일본 정부도 유네스코에 최종 등재 신청서를 내느냐 마느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29일 일본 정부 관계자가 “매우 고민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면서, 등재 신청을 하면 한국 측 반발이 불가피하고 한일 사이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생길 것이 뻔하며, 반대로 신청을 보류한다면 올해 5월 니가타현 지사 선거나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표심이 (집권 자민당에 불리한 방향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일본이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또다시 강제 노역 사실을 숨긴 채 등재를 시도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지만, 뒤통수를 또 맞지 않으려면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5년 군함도 문제 대응에 참여했던 세계유산 전문가 A씨는 “군함도의 교훈은 강제 노역이라는 정확한 기록을 갖고 일본 정부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국제사회에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라며 “한·일 간 정치적 싸움이 아니라 완전한 역사를 공유하기 위한 세계 시민의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쟁에 대한 사실을 인류가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했다. 정확한 ‘팩트’ 수집과 고공 외교전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탐욕의 땅, 미쓰비시 사도 광산과 조선인 강제 동원’을 출간한 정혜경 위원은 “사도광산이 1943년 6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 3월 기준으로 조선인 1005명이 동원됐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그중 10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탈출했다”고 했다. 정 위원은 2015년 해산한 ‘국무총리 산하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11년간 조사과장으로 일하면서 사도광산 피해자 조사를 했다. 조선인 근무자로 당시 상황을 구술한 고(故) 임태호씨는 “합숙소에서 광산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걸렸고, 지하에서 광석 채굴을 했다. 죽음을 맞닥트리는 일이었으므로 하루하루가 공포 그 자체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완전한 역사 알리는 게 등재 기본 원칙
소위 ‘네거티브 유산’이라고 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를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우크라이나인 등을 강제 동원했던 람멜스베르크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시설 내 박물관의 20%를 할애해 과거 강제 노동 역사를 비중 있게 전시하고 있다. 람멜스베르크 광산 박물관 측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강제노동 생존자들을 일일이 찾아서 인터뷰했고, 피해자 목소리를 생생히 담아 전시에 소개하고 있다. 강동진 교수는 “관건은 세계 시민이 공유해야 하는 ‘완전한 역사’를 빠뜨리지 않고 알리는 것”이라며 “사도광산이 일본의 침략 전쟁을 위해 조선인을 동원했던 곳이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