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대통령리더십연구원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윈스턴 처칠이 우리 대선에서 붙는다면? 여기에 에마뉘엘 마크롱까지 경합한다면?’

대선 후보들은 선거 기간 자신이 존경하는 지도자, 롤모델을 제시하곤 한다. 롤모델에는 후보가 만들고 싶어하는 나라, 그가 꿈꾸는 리더십이 담겨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을, 문재인 대통령은 다산 정약용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롤모델로 꼽은 바 있다.

◇李, 국난 극복 루스벨트 리더십

“좌파 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에게 배우겠습니다. 경제에, 민생에 파란색, 빨간색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작년 10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직후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루스벨트 대통령을 존경한다” “루스벨트는 소수의 개인과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정부의 권위를 세워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 미국 복지의 토대를 마련했다”며 루스벨트를 소환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DR·1882~1945)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미국이 대공황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당선됐고,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뇌출혈로 쓰러질 때까지 재임했다. 그의 재임기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했고, 연합국의 중심국으로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FDR은 ‘노변정담(爐邊情談·fireside chat)’, 라디오를 통한 대국민 소통으로도 유명했다. 전기작가 진 에드워드 스미스는 장년에 소아마비를 앓아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FDR에 대해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나라를 일으켜 세운 인물”이라며 “침착하게 나라를 번영과 평화의 미래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강남훈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대공황을 극복하고 위기에서 미국을 구한 FDR처럼, 이재명 후보도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대전환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이 후보는 FDR의 새로운 지지층 확보를 위한 정치 연합(New Deal Coalition)의 리더십, 국민과의 소통 능력 등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尹, 원칙·소통 처칠 리더십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 6일 여의도역 출근길 인사에 나서면서 측근들에게 “처칠처럼 국민만 보고 정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의 고뇌를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는 독일과 싸울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처칠이 직접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의 생각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지하철 장면은 영화적 각색이지만, 처칠은 이처럼 종종 시민들을 만나 소통했다고 한다. 윤 후보는 주변에 “낮은 자세로 시민을 만나고 민심을 듣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후보는 17일에도 을지로입구역에 깜짝 등장해 시민들을 만났다.

윤 후보는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를 롤모델로 꼽았다. 처칠은 영국인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 중 한 명. 처칠은 유럽 대륙이 점차 독일 손에 넘어가고 있던 1940년 전시내각의 총리로 임명됐고, 자유세계를 이끌어 2차 대전 승리의 주역이 됐다.

윤 후보는 처칠의 원칙과 소통 리더십을 따르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관계자는 “처칠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 미래를 여는 것이 (잘못된) 시류에 영합하거나 인기를 위해 사탕발림하는 정치가 아닌, 원칙과 신념 그리고 대국민 소통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 지도자”라며 “윤 후보가 처칠을 롤모델로 삼은 것은 국민만 보는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처칠은 의회정치와 외교를 체득한 인물이자 명연설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윤 후보와 차이점이 있다”며 “윤 후보가 전쟁 속에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단결을 이뤄낸 처칠 리더십을 좇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安, 중도·실용 마크롱 리더십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44) 프랑스 대통령을 자주 언급한다. 소속 정당 국회의원 한 명 없이 대선과 총선 승리를 이끌어낸 마크롱의 길을 걷겠다는 것. 안 후보는 민주·국민의힘 양당으로부터 ‘(소속 정당 의석 수) 3석으로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느냐’란 공격을 받을 때, 마크롱의 성공 사례를 통해 이를 맞받아치고 있다.

마크롱은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했다. 39세에 제5공화국 출범 이후 60년간 유지됐던 공화·사회 양당 체제를 깨고 중도실용 노선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마크롱이 대선 1년 전 창당한 앙마르슈는 대선 당시 의석을 한 석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대선 한 달 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다수당이 됐다.

안 후보는 저서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마크롱이 당선된 프랑스를 ‘국민의 힘으로 실용적 중도 정치의 혁명을 이뤄낸 사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마크롱 집권 전) 프랑스는 우리나라처럼 보수와 진보 거대 양당이 돌아가면서 집권하는 나라였다. (중략) 두 정당이 번갈아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들의 이익만 챙기고 사회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참지 못한 국민들이 거대 양당을 심판한 것’이라고 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안 후보는 (과거) 거대 양당 후보에게 양보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는데, 마크롱처럼 가고 싶다면 (양당의 압박을) 이겨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결선투표제가 있는 프랑스와 비교해 우리나라에서 제3 후보가 성공하기는 훨씬 어려운 길”이라고 덧붙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롤모델 제시는 자신의 노선, 철학 등을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위대한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원장은 그러면서 “과거 우리 정치인들이 롤모델 제시로 국민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놓고 실제 집권 뒤 전혀 다르게 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후보들이 선거를 위해 롤모델 이미지만 차용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실망감만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보들이 롤모델로 내세우는 인물도 과거 박정희·김대중 등 국내 정치인에서 해외 지도자로 변모하고 있다. 최 원장은 “국내적 롤모델은 정파에 따라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데 반해, 국제적 롤모델은 정파적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고 중도층을 끌어당기기에 용이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