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낮 1시. 의정부 ‘장인한과’ 인스타그램에서 주문 요청을 누르니 메시지가 떴다. “요청이 너무 많음” “주문이 끝났습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21일 오전, 의정부로 달려갔다. 사장님에게 읍소하면 가끔 남은 약과를 판다고 했다. 줄 선 지 1시간 만에 철원에서 왔다는 아기 엄마와 함께 마지막 남은 파지 약과 두 팩을 구입했다. 열어서 맛본 작은 조각은 달콤·찐득·고소. 콩알만큼 부서진 파지 조각에 모든 디저트의 맛이 담겨 있었다.
설을 앞두고 당신이 ‘트민남녀(트렌드에 민감한 남녀)’라면 꼭 준비해야 할 디저트는 바로 ‘약과’다. 어릴 적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한 개씩 꺼내주던, 학교 앞 문방구에 비닐에 싸여 몇 백 원에 팔던 그 디저트가 아니다. ‘약겟팅(약과 티켓팅)’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아이돌 콘서트 티켓보다 구하기 어렵다는, MZ세대에게 가장 핫한 디저트다.
신분 상승한 약과의 선두 주자는 의정부 ‘장인한과’다. 김규식 장인이 30년 전 개발한 방법으로 만들고 있는 이 약과는, 의정부에서 부대찌개보다 유명하다는 명성을 얻고 있다. 이곳 메뉴는 찹쌀약과와 호박약과, 맛탕 모양의 세모약과 등 다양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못난이(파지 약과)’다. 약과를 만들다 부서져 상품 가치를 잃어버린 것들을 모아 싸게 팔기 시작한 것인데, 이 맛이 더 좋다며 인기를 얻었다.
약과(藥果)는 밀가루 귀하던 시절, 약이라 불리던 꿀과 기름을 듬뿍 넣어 만든 전통 과자. ‘음식디미방’ ‘규합총서’에도 수록돼 있다. 고려 시대에는 고려병(高麗餠)이란 이름으로 중국에 전래돼 인기를 끈 ‘한류 K디저트’의 시조새이기도 하다. 만드는 법에 따라 모약과(개성약과), 만두과 등으로 나뉜다. 만두과는 말 그대로 만두처럼 소(대추 등)를 넣어 빚는 약과로 서울 강남구 ‘만나당’이 유명하다. 궁중병과 장인 황문철씨가 아들 황지현씨와 만드는 곳이다. 개성약과는 밀고 접기를 반복해서 결이 있는 약과다. 켜켜이 쌓인 층에서 즙청(꿀 등으로 만든 시럽)이 흘러내린다. 춘천 서부시장에 있는 ‘버들골 약과’가 유명하다.
약과가 MZ세대에게 인기인 이유는 이들이 좋아하는 디저트 맛의 완결판이기 때문이다. 겉은 카라멜 같고, 피는 페스츄리, 속은 도넛 같다. 약과를 전자레인지에 10초 정도 돌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려 먹으면 초콜릿 브라우니와 다른 차원의 ‘천국’이다. 약과를 와플 판에 눌러 크럼블 과자처럼 먹기도 한다. 갓 나온 약과는 갓 구운 와플처럼 고소하다.
두 번째는 희소성이다. 요즘 사랑받는 약과는 지역 맛집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제품들이다. 물량 자체가 적어 구하기가 어렵다. 만드는 곳마다 당도, 식감, 크기, 두께 등에서 각기 다른 맛을 내는 것도 ‘약과 투어’를 이끈다. 상온에서 2~3주 보관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세 번째는 ‘추억 자극’이다.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하는 비주얼이 최근 레트로 열풍, 할매니얼(할머니 입맛) 인기와 결을 같이한다. 단맛이 강해 아메리카노나 밀크티와도 잘 어울린다.
잊었던 맛을 부활시킨 주역들은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배우 안소희와 빵·디저트 유튜버들이다. 지난해 한 예능 프로에서 안소희가 “요즘 약과에 푹 빠져 있다. 브랜드마다 맛이 달라 다 직접 먹어보고 있다”고 한 뒤, 유튜버들의 약과 먹기 릴레이가 시작됐다. 구독자 수 55만명의 ‘여수언니정혜영’과 266만명의 ‘나도’는 ‘약과에 휘핑크림 발라 먹기’를 유행시켰다. 약과의 ‘쫜득한’ 시럽과 ‘바짝한’ 피는 몽실한 휘핑크림과 잘 어울린다. 어릴 때 무심코 먹던 약과가 몇 십 년 장인과 새로운 맛을 탐구하는 유튜버들이 만나 청춘의 디저트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