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향 스탁엑스(StockX) 검수팀 매니저가 운동화 한 짝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들어 코에 갖다 대더니 진지하게 냄새를 맡았다. 운동화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이 매니저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품(正品)이 확실합니다. 정품의 향기가 나네요. 가품에서는 이런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운동화가 투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한정판 스니커즈(운동화)를 되팔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스니커테크(Sneaker Tech)’에 젊은 층이 열광하고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도 되고, 적은 돈으로도 쉽게 투자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정판 운동화를 사려고 백화점이 문 열자마자 매장으로 뛰어가는 ‘오픈 런’은 기본이고, 매장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까지 한다.
심지어 대기업 총수도 스니커테크에 관심을 갖는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신어야 해, 말아야 해 고민 중”이라는 글과 함께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를 신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가 사진 찍어 올린 운동화의 출고가는 18만9000원이었지만, 당시 리셀(resell·재판매) 시장에서는 380만원 정도에 시세가 형성돼 있었다. 수익률이 무려 1900%인 셈이다.
돈이 되니 시장이 달아오른다. 전 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매년 약 20%씩 성장해 오는 2030년에는 35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스니커즈 리셀 시장도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서며 미국·중국에 이어 전 세계 3~4위 규모로 커졌다. 운동화 거래 전문 중개 플랫폼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반도체 공장 뺨치는 보안
스탁엑스는 지난 2016년 미국에서 탄생한 글로벌 1위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2018년 일찌감치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진출했고 지난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스탁엑스코리아가 최근 본지에 단독으로 검수센터를 공개했다. 최홍준 스탁엑스코리아 대표는 “판매자가 보낸 신발의 정·가품을 판정하는 검수센터는 리셀 플랫폼의 근간이자 핵심 역량”이라고 했다. “사람이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보고, 냄새 맡으면서 50개 이상 체크포인트를 확인하죠. 전 세계 11개 검수센터에서 300명 이상의 검수 팀원들이 수백만 개의 제품을 검수하면서 쌓은 경험으로 수십억 개의 데이터 포인트가 DB화돼 있습니다. ”
검수센터는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한 물류센터에 있었다. 어떠한 표식이나 로고도 붙어있지 않은,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외관이었다. 최홍준 대표, 이소향 검수팀 매니저와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육중한 철제 문을 열자 K팝 음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휴대전화는 입구에 맡겨야 했다. “노하우 유출 방지를 위해 검수센터 안에서는 직원들도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검수센터는 넓고 층고가 높았다. 덕트(환기용 관로)가 엄청나게 많았다. 마치 삼겹살집처럼 천장에 매달린 기다란 금속제 덕트 수십 개가 아래를 향해 뻗어 있었다. 이 매니저는 “습하면 가죽이 변색될 수 있기 때문에 건조한 환경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500평 규모의 검수센터에는 미국 본사에서 디자인·제작한 검수 전용 작업대 10여 대가 널찍하게 배치돼 있었다. 검수 직원들이 높낮이 조절 가능한 작업대 앞에 선 채로 K팝에 맞춰 몸을 가볍게 움직이며 일했다. 작업대에는 모니터와 UV라이트 등이 부착돼 있었고, 검수에 필요한 도구와 제품도 놓여 있었다. 이 매니저는 “도구·제품 종류와 브랜드도 스탁엑스만의 검수 노하우이니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정품의 향기’란 접착제 냄새
이 매니저가 물류센터 2층 사무실에서 검수 과정을 시연했다. “먼저 보여드릴 제품은 2021년 발매된 ‘나이키 에어 조던 로우×트래비스 스캇×프라그먼트 디자인’입니다. 최근 발매된 제품 중 가장 높은 리셀가를 형성하고 있는 모델 중 하나입니다. 발매 가격은 18만900원이고 리셀가는 스탁엑스 기준으로 평균 1500달러, 한화 160만~170만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스탁엑스에서는 3단계에 걸쳐 검수가 진행된다. 이 매니저는 운동화를 꺼내기 전 박스부터 유심히 살폈다. “우선 패키지(포장)부터 보게 되죠. 저희 고객들은 신기보다는 되팔려는 의도로 구매하는 분이 많기 때문에 패키지도 온전한 상태여야 합니다. 이 제품은 박스를 플라스틱 슬라브가 감싸고 있는데요, 슬라브의 투명도를 확인하는 것이 검사의 시작이 되겠습니다. 그 다음은 박스 훼손 여부와 색깔, 라벨을 봅니다. 라벨 정보와 스니커즈가 일치하는지, 라벨에 인쇄된 글씨체와 크기도 확인합니다.”
슬라브와 상자, 라벨 확인을 마친 이 매니저가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운동화를 꺼내지 않고 운동화를 감싸고 있는 티슈페이퍼(포장지)부터 만졌다. “정품과 가품 판단에서 티슈페이퍼도 중요합니다. 이 종이에서 굉장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가품의 경우 티슈페이퍼가 살짝 더 질기거나 두꺼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매니저가 티슈페이퍼를 조심스럽게 벗기고 운동화를 상자에서 꺼냈다. “신발을 360도 검수한 후에 바닥·중창·어퍼 부분에 이상이 없는지 전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스티칭(바느질)이나 허용 가능 범위 이상의 대미지(손상)가 있는지, 정품이 정확한지 확인합니다. 밑창을 확인해 착용 여부도 봅니다. 정품이건 아니건 착용 흔적이 있으면 되팔 수 없습니다. 여분 끈이나 필수 액세서리가 있는지도 파악합니다.”
이 매니저가 신발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검수 마지막 단계는 냄새를 맡는 겁니다. 스니커헤드(운동화 마니아)들은 신발을 구입하고 냄새를 맡아 보는데요, ‘정품의 향기가 난다’는 말을 합니다. 정품의 향기라 함은 신발 소재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접착제 냄새를 뜻합니다. 이제 냄새를 맡아보겠습니다. 네, 정품의 향기가 나네요.”
정품은 접착제 냄새가 강한 반면, 가품은 약하거나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정품의 경우 대량으로 ‘찍어내기’ 바빠서 접착제를 다량 사용하지만, 가품은 정품처럼 보이도록 조심조심 만들기 때문에 접착제를 상대적으로 덜 쓴다고 한다.
정품 판정을 받은 운동화에는 스탁엑스 검수 태그를 부착한 뒤 원래 모습대로 티슈페이퍼로 감싸고 상자에 넣는다. “위조업체들이 스탁엑스 검수 태그까지 가품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그를 보면 홀로그램화된 QR코드가 있기 때문에 확인·추적이 가능합니다.”
◇정품·가품은 상자부터 달라
이 매니저가 검정·빨강으로 된 똑같은 신발 상자 2개를 가져왔다. “추가로 다른 스니커즈를 하나 더 준비했는데요, ‘나이키 조던 1 하이 다크모카’라는 제품입니다. 2020년 발매한 제품이고요, 최초 발매가는 19만9000원이었지만 현재 스탁엑스 기준 평균 600달러(70만~80만원) 이상 비싼 금액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제품 역시 가품이 많이 생산됐는데요, 그래서 경험이 많고 디테일 보는 눈을 가진 검수자가 필요합니다.”
상자를 열자 운동화 2켤레가 나왔다. 크기는 물론 색상과 모양 등 동일한 모델의 운동화 2켤레로 보였다. 이 매니저는 “박스에서부터 정품과 가품은 차이가 난다”고 했다. “먼저 정답을 알려 드리면 왼쪽이 가품입니다. 박스의 빨강·검정 색상이 채도에서 차이가 많이 나네요.”
이 매니저가 두 운동화를 상자에서 꺼냈다. “둘에서 가장 많이 차이 나는 부분은 바로 가죽의 색깔인데요, 왼쪽은 카키빛이 도는 브라운(갈색) 컬러인 반면에 오른쪽 신발은 짙은 브라운이죠. 카키빛이 도는 브라운 컬러는 가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바느질 선을 보면 가품은 굉장히 뭉툭한데요, 정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기를 맡아보는 거죠. (왼쪽 운동화 냄새를 맡더니) 이 제품은 정품이 아닙니다. 확실히 정품의 향기가 안 나거든요.”
스탁엑스에는 이 매니저를 포함 총 8명의 검수자가 근무한다. 전체 직원이 24명이니 검수 담당이 3분의 1이나 되는 셈이다. 최 대표는 “채용 합격하더라도 첫 한 달 이상은 제품을 만져보기 전 교육만 받는다”고 했다.
“스니커즈는 물론이고 스트리트웨어나 핸드백 등 다양한 제품 검수하는 법을 하루 8시간 5~6주 동안 자세하게 배웁니다. 교육이 끝나도 베테랑 검수원과 함께 수많은 제품을 검수한 뒤에 비로소 독립적으로 검수하게 됩니다. 새로운 신발이 계속 출시되고 있고 가품도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정보 교육이 이뤄집니다. 덕분에 스탁엑스가 99.95%라는 업계 최고의 검수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