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6월, 영국 총리였던 처칠이 한 말이다. 파죽지세로 유럽을 침공하던 나치 독일에 불안해하던 영국 국민은 처칠의 연설에서 힘을 얻었다. 여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8월, 독일이 전투기를 동원해 영국을 폭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군사시설만 목표로 삼았지만, 길을 잃은 독일 전투기의 오폭 사건을 계기로 곧 영국 전역이 공격 목표가 됐다. 1940년 9월부터 1941년 5월까지 267일간 이어진 ‘영국 대공습’은 4만5000명의 사망자와 7만에 달하는 부상자, 그리고 140만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특히 피해가 컸던 곳은 런던으로, 총 71회 공격에 2만5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런던에서 나왔다. 폭격은 밤낮을 가리지 않아, 런던에는 57일 연속 야간폭격이 퍼부어지기도 했다. 등화관제가 실시됐고, 사람들은 집 대신 지하철 역사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잠을 자야 했다. 달빛에 의지해 적들이 공격해 올까 봐 보름달이나 상현달처럼 볼록한 달이 뜨는 날이면 런던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리더였던 처칠의 언행이 그들에게 신뢰감을 줬기 때문이었다. 곧 영국 전투기와 대공포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전황은 점점 독일에 불리해졌다. 결국 독일 공군은 막대한 손실을 본 채 대공습을 끝내야 했다.
“저는 실적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준비된 대통령’이라 자부합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저를 국민께서 인정해 주신 것도 오로지 일을 잘해냈기 때문입니다.”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이재명 후보가 했던 ‘후보 수락 연설’의 일부다. 이례적으로 높은 대통령 지지율, 180석에 달하는 의석수로 호시절을 보냈던 이재명 지지자들(이하 이재명들)은 이 후보의 말을 들으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는 대장동 의혹이 한창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 몸통으로 이 후보를 지목하고 있어서였다. 이 불안감은 경선 득표율에서도 나타났다. 마지막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후보는 28.30%의 표를 얻는 데 그쳤지만, 경쟁자였던 이낙연 후보의 득표율은 62.37%나 됐다. 이전 투표에서 이 후보가 표를 많이 얻어놓았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통령의 꿈이 수포가 될 뻔했다. 하지만 이재명들의 불안감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과연 대장동뿐일까?” 자신의 최대 치적이라던 대장동에서도 이런 의혹들이 터져 나온다면, 그가 했던 다른 일에선 더 많은 문제가 발견될지 모르니 말이다.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민간 업체가 3000억원의 이익을 독식한 백현동 개발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이 후보에 관한 의혹들이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왔다. 이 후보의 친형 강제 입원 시도와 욕설 녹취 파일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성남 FC의 후원금도 뭔가 좀 수상했다. ‘인권변호사’라는 그의 주장과 달리 이 후보가 변호한 이들 중 상당수는 조폭과 살인마 등 사회에 해를 끼치는 범죄자들이었다는 것도 추가로 밝혀졌다. 그의 아들은 작년 말까지 불법 도박을 했으며, 군에 있을 당시 인사명령서도 없이 성남에 있는 수도병원에서 2개월 가까이 입원하는 특혜를 누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으스스한 일도 벌어졌다. 대장동 개발의 핵심이던 유한기와 김문기가 극단적 선택을 한 데 이어, 이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한 이는 모텔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독일군의 런던 공습이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것처럼, 이 후보 관련 의혹도 밤낮을, 그리고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었다. 대공습 당시 런던의 피해가 적국이던 독일의 공격 때문인 것과는 달리, 이 후보의 피해는 자신이 쏜 미사일에 스스로가 당하는 꼴이었으니까.
‘이대로 정권을 빼앗기는 거 아냐?’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 올라가지 않자 이재명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그를 지지하는 건 이성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김어준을 비롯한 민주당 스피커들에게 뇌를 의탁해 버린 것이다. 불안이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부정적으로 예측한 결과인데, 생각 자체를 안 해버리면 더 이상의 불안은 없지 않겠는가? 이런 효과는 자신처럼 뇌를 의탁한 이들끼리 모여 있으면 더 커지는 법. 그래서 그들은 비슷한 이들끼리 인터넷에 모여 민주당 스피커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가복제하는 중이다. 그들이 “대장동은 국민의 힘 게이트다” “우리나라가 베네수엘라가 되지 않으려면 이재명을 찍어야 한다” 같은 궤변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덕분이다.
이는 최근 불거진 김혜경 여사의 대리처방 의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5급 비서관 배모씨는 김혜경씨 집 문 앞에 놓아 둔 폐경약을 자신이 먹었다고 밝혔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건 폐경약은 배란을 억제해 임신을 못 하게 만드는데, 정작 배씨는 아이를 갖고 싶어할 가임기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안 먹었다고 하면 김혜경씨가 법을 위반한 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배씨는 처음에 ‘임신을 못한 스트레스 때문에 폐경약을 먹었다’고 했다가 ‘임신을 포기해서 폐경약을 먹었다’며 말을 바꿨지만, 채널A 취재 결과 최근까지 난임 치료를 받은 게 드러났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민주당의 여성 괴벨스라 할 만한 최민희는 다음과 같이 해결했다. “여성들이 폐경 이후 호르몬제제를 먹는데, 이 호르몬제가 임신을 촉진할 때 먹는 약과 일치한다. 그래서 배모씨와 김혜경씨가 같은 약을 다른 용도로 각각 처방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뇌를 의탁한 이재명들은 이 말에 감탄해 마지않았고, 심지어 이를 널리 퍼뜨리면서 의기양양해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선다고? 상관없다. 스피커들에 따르면 그건 다 조작이고, 샤이 이재명들을 감안하면 본선에서는 자신들이 이긴다고 믿으니까. 그래서 이재명들은, 늘 행복하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한다. 영국이 독일과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재명들의 행복이 3월 9일까지 한정판에 불과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