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영향으로 목욕탕이 급감하면서 ‘목욕탕 명물’로 꼽히던 자동 때밀이 기계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전원 버튼을 누르면 동그란 때 수건이 돌면서 자동으로 때를 밀어주는 이 기계는 지금도 목욕탕을 홀로 찾은 손님들이 등을 밀 때 애용한다. 한때 목욕탕 곳곳에서는 자동 때밀이 기계를 서로 사용하려고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기계가 급속히 줄면서 청소년과 청년층 사이에서는 “실제로 본 적 없는 신기한 물건”이라는 말까지 돌 정도로 ‘희귀품’이 됐다. 중장년·고령층 중에서도 “저런 기계는 살면서 본 적이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일각에서는 “부산·경남 지역 대중목욕탕에만 자동 때밀이 기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자동 때밀이 기계를 생산·판매하는 삼성기계공업사 대표 이강훈씨는 “실제로는 부산·경상도 지역뿐 아니라 전라도와 충청 이남 지역에도 많이 판매·보급됐다”고 말했다. 다만 그 외 지역은 별로 판매되지 않아 특히 서울·경기권 주민은 더 생소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그는 “충청 이남은 대중탕 문화가 많이 발달한 반면 서울 쪽은 서구화가 더 빨랐던 영향으로 대중목욕탕 인기가 덜했던 것 같다”고 했다.
앞서 부산 출신 래퍼 쌈디(사이먼도미닉)가 한 예능 프로에서 “자동 때밀이 기계는 부산이 원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건 사실일까. 이 대표는 “완벽한 원조라고 할 수 없지만, 부산이 국내 원조 격인 건 맞는다”고 했다. 삼성기계공업사가 부산 사상구에서 개업했고, 부산을 시작으로 주변 지역으로 자동 때밀이 기계가 서서히 보급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자동 때밀이 기계는 독일⋅일본 등에서 먼저 생산됐고, 저희가 이걸 2~3년 정도 연구하고 국산화해 1990년쯤 본격적으로 판매했다”고 말했다.
삼성기계공업사는 자동 때밀이 기계를 비롯해 물대포·폭포수 기계와 목욕탕 청소기기 등 목욕탕용 특수기계를 전문적으로 제조·판매하는 소형 업체다. 이 대표는 “예전에는 자동 때밀이 기계를 생산하는 곳이 전국에 여러 곳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우리만 남은 것 같다”고 했다. 삼성기계공업사가 지난 30여 년간 전국 대중목욕탕에 판매한 자동 때밀이 기계는 3만대 이상. 이 대표는 “지금은 1대당 70만원쯤 하는데, 한 번 사면 10~20년은 족히 쓰기 때문에 사실 이윤이 많이 나진 않는 제품”이라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이나 독거노인 사이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 그는 “고령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시설 내 샤워실이나 목욕탕에도 자동 때밀이 기계가 꽤 보급돼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이나 가정에서 때밀이를 즐기는 사람을 위해 가정용 자동 때밀이 기계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몇 년 새 코로나 여파로 목욕탕 수가 확 줄어 판매량도 덩달아 크게 줄었다”고 했다. 목욕탕 영업난 속 일부 세신사가 자동 때밀이 기계를 경쟁자로 여겨 도입을 더 꺼리는 영향도 있다. 위생 문화가 서구화되면서 대중목욕탕과 때밀이 문화가 서서히 쇠퇴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에 의뢰해 20~60대 남녀 202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정기적으로 대중목욕탕에 간다는 답변은 전체의 10.5%에 그쳤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집에서 목욕을 한다(42.4%)’ ‘샤워를 자주 해서(25.6%)’ 순으로 응답했다.
일각에선 “자동 때밀이 기계가 비위생적이고 피부병을 옮긴 탓에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피부과 전문의들은 “바이러스성 피부 질환이 있는 사람이 사용한 때수건을 재사용하면 감염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극히 드문 경우”라고 했다. 임이석 테마피부과의원 원장은 “때 수건을 같이 쓰는 건 위생적이지 않기 때문에 기계용 때 수건을 사서 개인용으로 쓰는 게 좋고, 목욕탕 측은 기계 소독을 자주 하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목욕업계에 따르면 자동 때밀이 기계용 때수건은 장당 1200원 정도. 한 목욕업계 관계자는 “목욕탕을 즐겨 다니는 분 중에선 이미 기계용 수건을 사서 개인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