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첫눈송이씨가 2017년 아프간 헤라트의 이주민촌을 방문했을 때 모습. /송첫눈송이씨 제공

“탈레반이 최근 바미안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도굴하고 있다고 아프간 현지 동료들이 전해왔어요. 제가 아프간에서 일하면서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가 바미안 문화센터 건립이었는데, 재집권하면서 모든 것이 보류됐고, 바미안의 불상과 벽화들은 또다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긴박하게 카불 상황을 전하던 국제사회의 관심은 어느새 식어버렸지만, 송첫눈송이(36)씨는 지금도 아프간 뉴스를 수시로 검색하며 마음을 졸인다. 송씨는 2015년부터 4년간 유네스코 카불사무소에서 대외 협력 담당과 프로젝트 부매니저로 일하며 아프간 문화재 보호와 문화 교류 활동을 벌였다.

그가 애정을 담아 추진했다는 바미안 문화센터 건립 프로젝트는 지난 2001년 탈레반이 고대 아프간 불교 미술을 상징하는 대불(大佛)을 파괴한 자리 맞은편에 전시실과 도서관, 교육 공간 등을 갖춘 문화센터를 세우는 프로젝트. 유네스코가 추진한 이 프로젝트에 한국 정부도 지원했고, 5년의 공사 끝에 지난해 하반기 완공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는 “갖은 우여곡절 끝에 바미안 사람들과 함께 건물을 세웠지만, 탈레반 때문에 모든 계획이 멈췄다. 탈레반이 벽화와 불상까지 도굴하고 있다니 마음이 타들어 간다”고 했다. 지금은 국내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프간 문화 지킴이’로 남아있다”는 그를 최근 두 차례 만났다.

송첫눈송이씨가 2018년 아프가니스탄 고어 지방에 있는 이슬람 첨탑인 '얌의 첨탑' 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송첫눈송이씨 제공

◇ 바미안 유산을 구해주세요!

-바미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수도 카불에서 130㎞ 떨어진 바미안 계곡, 힌두쿠시산맥의 고원 암벽을 파낸 자리에 6세기 이후 조성된 대불이 있었다. 당나라의 현장도, 신라의 혜초도 인도로 가는 여정에 이곳을 지나며 대불을 목도했다고 한다. 이 장엄한 대불을 지난 2001년 탈레반이 ‘이교도의 우상을 파괴한다’면서 폭파한 건데, 대불이 파괴된 자리 주변에 크고 작은 석굴이 750여 개 있다. 탈레반이 최근 그 석굴들에 남아있는 벽화와 불상 등을 도굴해 국외로 팔아넘기기 시작했다는 거다. 탈레반은 대불이 있던 자리 앞 공터를 인근에서 채굴한 석탄 운반용 트럭 전용 터미널로 만들었다. 아프간 현지인들이 시작한 ‘SaveBamiyanHistoricalHeritage(바미안 유산을 구해주세요)’ 해시태그(#) 운동이 전 세계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재 빠르게 퍼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대불이 폭파된 자리 앞에 최근 석탄을 실은 트럭들이 서있는 모습. /송첫눈송이씨 제공

-바미안 문화센터는 현재 어떤 상태인가.

“원래 계획은 5만㎡ 부지 대부분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2200㎡ 규모의 문화센터를 짓는 거였다. 건물은 완공됐고 봄에 정원만 조성하면 된다. 탈레반 관계자도 완공된 건물을 보고 ‘우아!’ 하면서 감탄했단다. 제일 중요한 건 바미안 문화센터 내에서 어떤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여부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가 대부분 끊긴 상황에서 탈레반이 독자적으로 무슨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송씨는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과의 가교 역할도 톡톡히 했다.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의 황금 문화’ 특별전을 성사시킨 숨은 주역이다. 특히 틸리야 테페 무덤에서 출토된 1세기 금관은 5~6세기 신라 금관과 똑 닮아 한국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89년 카불 국립박물관 직원들은 전란을 피해 고대 박트리아 왕국의 황금 보물을 대통령궁에 있던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숨겼고, 열쇠지기 7명이 목숨 걸고 열쇠를 지킨 덕분에 살아남은 유물은 2004년 이들이 모여 금고를 열면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송씨는 “내전 때 박물관에 남은 상당수 유물이 약탈되거나 불에 타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탈레반에 파괴됐는데, 모두가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 황금 유물들이 기적처럼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틸리야 테페 유적에서 출토된 1세기 금관. 신라 금관과 꼭 빼닮아 일찍이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국립중앙박물관

-틸리야 테페 금관 등 황금 유물은 현재 안전한가.

“14년간의 해외 순회전을 끝내고 2020년 4월 카불로 돌아갔다.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다들 이 유물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지만, 현지에선 언급하길 꺼린다. 모처에서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고만 알고 있다. 열쇠지기 7명 중 핵심 인물이었던 오마라 칸 마수디 전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장은 2002년 이전까지 탈레반 치하에서 관장을 맡으면서 급여를 받지 못하고 낮에는 감자 팔고 밤에 박물관에 들어가 일을 했다고 들었다. 현재 라히미 관장이 또 그런 상황에 처한 게 아닌지 걱정된다.”

아프간 현장을 누비며 문화유산 지킴이로 활약한 송첫눈송이씨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섰다. 첫눈 오는 날 태어났다고 부친이 지어준 이름처럼 맑은 목소리로 “인류의 귀한 문화유산인 바미안 유적에 대해 국제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들의 문화 자부심 일깨웠지만

첫눈송이.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은 그가 태어난 날 첫눈 내리던 광경에 감동받은 아버지가 지었다고 한다. 서울대 영문학과와 석사까지 마친 그의 어릴 때 꿈은 외교관. 곤충학자인 아버지와 미술 학원을 운영하던 어머니를 따라 방학 때마다 전국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녔고, 자연스럽게 문화 외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가상 명품 박물관(Virtual Collection of Asian Masterpieces)’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어느 날 운명처럼 기회가 왔다. “유네스코 카불사무소장이 중앙박물관을 방문한다는 계획이 있더라. 그분 통역을 맡을 테니 5분만 ‘피칭’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가상 박물관’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했고, 자칫 사라져버릴 수 있는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소장품을 디지털로 만들어 공개하는 작업을 1년간 진행했다. 그런 노력을 유네스코가 잘 봐준 덕분에 카불지부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이 왔다.”

-가족 반대는 없었나.

“위험한 곳이라고 처음엔 난리가 났다. 두 분이 울었다가 윽박질렀다가 설득하기를 반복하시다 일주일 후에 포기하셨다. 그래, 마음 편히 가라, 우리가 최고의 지지자가 돼줄게 하셨다.”

-아프간에선 어떤 활동을 했나.

“카불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다.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는 암울하고 부정적인 것뿐인데, 이런 아름다움을 현지 사람들이 인식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프간은 아름답고 가능성이 풍부한 나라라는 문화적 자부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아프가니스탄’이란 프로젝트였다. 사진 대회를 열었더니 아프간 전국에서 2만여 점이 모일 정도로 반응이 뜨겁더라. 연을 쫓는 아이들, 전통 춤을 추는 여인들, 장미로 가득한 정원, 고대의 첨탑…. 페이스북으로 실시간 공개했더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웠어?’ 같은 메시지가 쇄도했다.”

하지만 이때도 카불은 일상적인 테러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다. 그가 소셜미디어에 남긴 기록에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새해 들어 테러가 더욱 자주 발생한다. 2주 전에는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일을 마무리하다가 차량 폭탄 테러 소리에 놀란 나머지 노트북만 들고 타다닥 뛰쳐나와야 했고, 지난주엔 외부 근무 마치고 돌아올 때 이용한 도로에서 정확히 두 시간 후 큰 테러가 있었다” “어젯밤엔 로켓이 두 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을 청했고, 오늘은 지진이 나는 와중에서도 땅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며 업무를 이어나갔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일에 크게 놀라지 않게 됐다”면서 “너무 무뎌져도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고, 너무 분노해서 차가운 머리를 가지지 못해도 일을 진행할 수 없으니 그 줄타기를 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송첫눈송이씨가 2017년 아프간 낭가하르주 잘랄라바드시에 있는 이주민촌을 방문한 모습. /송첫눈송이씨 제공

-아프간의 경험은 무엇을 남겼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봐야 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추진력과 자신감, 그리고 현재의 삶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아프간은 국제사회가 원조에 실패한 가장 큰 케이스로 역사에 기록될 거다. 국제기구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실망도 많이 했다. 지난 20년간 수천조 원이 넘는 국제 원조가 쏟아졌지만, 물처럼 돈이 새나갔고, 아프간 사회를 진정으로 일으키려는 의지를 갖고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이들은 없었다. 돈을 많이 쏟아붓는다고 국가가 바로 일어서게 되는 건 아니다. 아프간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국제기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제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국은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국가라 전후 국가를 재건하는 방식이나 효율적으로 원조하는 방식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