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 세 번이나 간 영국 탐험가 섀클턴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섀클턴 위스키. /shackletonwhisky

십 년 전쯤이었나. 백 년 동안 남극의 얼음 속에 묻혀 있던 스카치위스키가 발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위스키 상자는 꽁꽁 얼어 있었으나 위스키 열한 병은 여전히 찰랑거리고 있었다고. 이런 이야기는 강렬해서 잊기 힘들다. 남극이라니, 얼음이라니, 그리고 백 년 된 위스키라니!

나는 지금 ‘그 위스키’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당연히 열한 병 중의 한 병일 리는 없고, 그 위스키와 흡사하게 만든 위스키이다. 백 년 된 위스키는 아니나 백 년의 정신을 간직한 위스키랄까. 남극에서 발굴된 위스키의 제조사는 매킨레이(Mackinlay)인데, 금주법 등으로 위기를 겪으면서 위스키 제조법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얼음 속에서 건져낸 남극 위스키의 코르크 마개에 주삿바늘을 꽂아 위스키를 채취, 세계적인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들에게 보냈고, 그렇게 복원의 과정을 거쳐 스코틀랜드의 한 위스키 회사가 매킨레이 위스키와 흡사한 위스키를 출시했던 것이다. 얼음의 결기마저 있는 술인 셈이다. 이 위스키 이름이 섀클턴이다.

왜 섀클턴인가? 매킨레이 위스키를 남극에 데려가신 분의 존함이 섀클턴이다. 섀클턴은 영국의 탐험가로 남극에 세 번이나 갔다. 첫 번째 남극행은 1903년이었다. 개 썰매를 타고 남극에 갔다 돌아온 그는 탐험 자금을 모아 1907년 두 번째로 남극에 간다. 이번에는 개 썰매가 아니라 배를 타고 갔다. 배의 이름은 ‘님로드’호. 로이즈 곶 기지에서 겨울을 보내다 1908년 10월에 떠나 12월에 후원자의 이름을 따 ‘비어드모어’라고 이름 붙이게 될 빙하에 도착하고, 계속 남극점을 향하여 전진한다. 남극점을 150km 앞둔 데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하고, 모든 짐들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36시간을 걸어 돌아온다. 그는 기사 작위를 받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매킨레이 위스키는 1907년의 섀클턴이 남극에 가져갔다 두고 온 것으로 보인다. 1896년산이거나 1897년산으로 추정되는 이 위스키들은 영예롭게도 1907년 섀클턴 일행과 함께 남극에 갔던 것이다. 섀클턴이 매킨레이를 ‘오피셜 스카치’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오피셜한 스카치’ 말고 다른 ‘스카치’나 술이 같이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위스키는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 위해 버려야 했던 짐 중 하나일 것이다. 길고 긴 겨울과 짧게 찾아오는 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추운)을 버티기 위해 가져간 물건 중의 하나일 위스키가 왜 다 소비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위스키가 과적되었을 수도 있고, ‘오피셜하지 않은 다른 위스키’에 더 의지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청난 고난이 예상되어 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이러한 무모한 도전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말이다. 히말라야에 가고 남극에 가고 하는 사람들. 그랬는데, 섀클턴이 남극에 갈 선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면서 좀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위험천만한 여행, 적은 보수, 혹독한 추위, 여러 달 이어지는 깜깜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무사 귀환 보장 못함, 성공하면 영광과 명예”라는 글을 보고 무려 5000명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1907년의 구인 공고는 아니고 1914년의 것이다. 1907년의 두 번째 남극행에서 무사 귀환해 국민 영웅이 된 그가 꾸리게 될 세 번째 남극 탐험을 위한. 시대적으로 이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이다. 어차피 안전하게 사는 법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아닐까도 싶다. 전쟁에 나가 총알받이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폭격으로 죽을 수도 있는데 열렬히 살다가 죽기로 한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나는 『모비 딕』의 첫머리에 나오는 바다로 떠나려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좋아한다. 이슈미얼은 지갑에는 거의 돈 한 푼이 없고 육지에는 더 이상 흥미로운 것이 없을 때 세상의 바다를 둘러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며 고래잡이 어선에 지원한다. 바다로 나가는 것만이 울화증을 떨치고 날뛰는 피를 잠재우는 방법이라며, 그게 자신에게는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다고도 말하면서. 이슈미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섀클턴이 낸 공고에 열렬하게 화답했던 5000명이 이해된다. 더 이상 육지에서는 기대할 게 없고 육지가 아닌 바다라는 세상으로 가고 싶은데, 운임을 내지 않고 오히려 급료를 준다니. 그게 많으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섀클턴 위스키의 병 뚜껑에는 나침반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병 뒤에는 이런 글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거기에 도달하려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 어니스트 섀클턴” 병 앞에는 배의 구호였는지 아니면 새로 만든 구호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글귀가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다. “인내심(endurance)을 통해 우리는 정복할 것이다.” 섀클턴이 남극에 세 번째로 갈 때 타고 갔던 배의 이름은 ‘인듀어런스호’라는 것도 알려드린다.

인듀어런스호의 ‘리츠 호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다정하고, 세심하고, 헌신적으로 선원을 위했다는 섀클턴은 갑판 사이에 있던 창고를 개조해 선실로 만들게 했는데, 어찌나 아늑했는지 고급 호텔의 대명사인 파리의 리츠 호텔을 따서 ‘리츠’로 불렀다고 한다. 이들은 아늑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리츠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체스를 두었고, 축음기로 주간 음악 감상회를 열었다. 체스를 두면서, 또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이들이 스카치를 마시지 않았을까 한다. 오피셜 스카치인 매킨레이를 마시거나 아니면 본인들이 좋아하는 다른 술을 마시거나. 그러면서 그들의 밤을 좀 부드럽게 만들었겠지.

나는 인듀어런스호의 리츠 호텔이 파리의 리츠 호텔보다 더 아늑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속 300km로 부는 바람과 영하 70도의 추위를 감당하며, 아니 감당하기 위해 거기에 기꺼이 있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마셨을 리츠에서의 한 잔의 스카치란···. 나도 이제 그들의 시간에 끼기 위해 섀클턴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