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고릴라와 늑대가 분홍색 하트눈을 한 채 정면을 응시한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눈. 내면을 꿰뚫는 듯 강렬하다. 이렇게 동물과 눈을 마주친 적 있던가. 그는 기쁜 걸까, 슬픈 걸까.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다음 달 30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의 이름은 ‘홀로세의 미래’. 홀로세란, 지질학자들이 분류하는 현세를 말한다. 여기에 ‘파란색 사진 예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상우(44)가 ‘종(種)의 위기와 사멸’이라는 주제로 함께했다.
고상우는 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를 졸업할 때부터 이슈를 몰고 다녔다. 졸업전에 출품한 백인 여자로 분장한 자화상으로 칼 해머 갤러리와 동양인 최초로 계약을 맺었고, 뉴욕 최대 아트페어인 아모리쇼에 출품했으며, 크리스티 뉴욕에도 진출했다. 팝스타 마돈나, 세계 최대 헤지펀드를 이끄는 억만장자 레이 달리오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대표 여배우 니콜렛반담과도 협업했다.
2019년부터는 멸종위기 동물에 푹 빠졌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주제로 한 작품 ‘운명’은 지난달 3일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신년 인사회 배경으로 쓰였다. 그는 왜 백인 여자로 분장한 걸까,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어떻게 만난 걸까. 직접 촬영한 멸종위기 동물 50장 앞에 그가 호랑이 가면을 쓴 채 나타났다.
조선의 마지막 범
-왜 호랑이였나.
“2019년 사비나미술관으로부터 멸종위기 동물전 기획을 제안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호랑이와 사자였다. 난 사진의 색과 음영을 반전(反轉)시켜 작업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반전하면, 검은색은 흰색으로, 흰색은 검은색으로, 노란색은 청색으로 바뀐다. 기본적으로 청색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호랑이와 사자에 대한 자료를 찾다 일본인 엔도 기미오가 쓴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책을 읽게 됐다.”
-무슨 내용인가.
“엔도 기미오가 ‘조선의 마지막 범’의 흔적을 찾는 이야기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호랑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 대륙과 연결돼 있어 호랑이가 많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호랑이가 민간인에게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어 사살했다. 책에 따르면, 일본인에게 잡힌 조선의 호랑이들은 가죽은 경매에 부쳐지고, 고기는 요리로 만들어졌다. 그 책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 ‘운명’이다.”
그는 작품을 그리기 전에 자료를 수집하고 시를 쓴다. 호랑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잡으려는 끈질김/ 덫과 총과 칼/ 공존에 대한 수동적 저항/ 송곳니, 속도, 힘/ 거리를 사이에 둔 채/ 살아가는 우리들...’
-호랑이의 마지막 모습치고는 로맨틱해 보인다. 나비도 있고.
“나비는 자유와 영혼을 의미한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야 했던 호랑이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싶었다. 동물 시리즈 중 사자와 곰은 눈에 하트를 그렸다. 이는 심장과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
-원래 동물에 관심이 많았나.
“환경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2000년부터 뉴욕에서 활동하며 앨 고어 전(前) 미국 부통령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미국에선 기후변화가 이슈였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도 여러 번 봤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체격이 큰 동물들이다. 원래도 동물을 좋아해 고양이를 15년째 키우고 있다.”
-동물 작업은 어떻게 하나.
“뉴욕에 있을 땐 브롱크스 동물원을 자주 갔다. 내 작품은 동물의 정면을 다룬다. 이걸 표현하려면 동물과 눈이 마주쳐야 하는데 동물원의 동물들은 늘 자고 있어 쉽지 않다. 그래서 카메라 줌 렌즈를 가지고 가서 눈이 마주칠 때까지 몇 시간 기다렸다 찍는다. 태국에 갔을 땐 서커스에서 구출된 동물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 동물들의 눈빛은 슬프다.”
-왜 정면 사진만 고집하나.
“난 누군가와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눈을 마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 쓰인 사진도 대통령 연설을 보는 국민들이 호랑이와 시선을 마주칠 수 있도록 좌우 아래위를 잘랐다.”
-청와대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
“한 달 전쯤, 대통령 이벤트를 담당한다는 메가온이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청와대에서 신년 행사를 하는데 호랑이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고 했다. 행사에 맞게 작품을 높이 4m, 가로 3m 크기로 프린트했다.”
-작업하기 가장 힘들었던 동물은.
“코끼리다. 아무리 쳐다봐도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결국 상상력으로 눈을 그려 넣었다. 곰도 힘들었다. 반전 사진에서 검은색은 흰색으로 나오기 때문에 작업하기 힘들다.”
마돈나가 선택한 작가
고상우는 여장(女裝) 작가로 유명했다. ‘마샤’, ‘메리’ 등의 이름을 가진 작품에서 그는 금발의 백인 여성으로 분장한다. 그의 자화상 시리즈 중 하나를 대표적 금발 미녀인 마돈나가 소장하면서부터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억만장자 레이 달리오도 그의 작품 ‘키스’를 구입했다.
-왜 백인 여성으로 분장했나.
“열여섯 살에 미국으로 유학가 인종 차별을 많이 당했다. 내가 살았던 웨스트 버지니아는 동양인이 거의 없던 도시였다. 학교 친구들은 내게 ‘넌 눈이 작아서 운전도 못하겠다’는 식의 말을 툭툭 던졌다. 그런 서러움 속에서 ‘언젠가는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 차별을 당하면서 보니, 미국 내에는 인종 피부 색깔별로 계급이 있었다. 최상위층에 백인 금발 여성이, 최하위권에 동양 남성이 있었다. 동양 여성은 관심이라도 받지, 동양 남성은 관심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미국의 미의 기준은 바비인형 같은 백인 금발에 파란 눈이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조금 덜 노력해도 쉽게 취직되고, 좀 더 사랑받고, 누구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최하위 계급인 동양 남성이 최상위 계급인 금발 백인 여성으로 분장하고 다니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를 표출하는 프로젝트였다.”
-성 정체성에 대한 오해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때부터 게이다, 트랜스젠더다 말이 많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첫 개인전을 2001년 인사미술공간에서 했는데 당시 하리수씨가 사회적으로 이슈여서 같이 화제가 됐다.”
-팝가수 마돈나가 자화상 시리즈 중 하나인 ‘바운더리스 오브 센스(Boundaries of Sense)’ 1번 에디션을 소장한 것도 화제였다.
“뉴욕 워터풀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 마돈나가 딸과 함께 오프닝에 참석해 작품을 선택했다고 들었다. 직접 자택으로 배송을 갔는데 만나지는 못했다(웃음).”
-유럽에서는 네덜란드의 니콜렛 반담과 작업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그녀 또한 금발 배우다.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가 같이 작업하고 싶어 한다고. 네덜란드로 가서 3박 4일 작업하고 전시회도 열었다.”
-금발 백인 여성이 가진 특권을 비판했는데, 그들로 인해 유명해진 셈이다.
“한번은 흑인 여성들에게 ‘넌 왜 표현하는 여자들이 전부 블론드냐’고 비판받았다. 내가 ‘흑인은 반전 사진으로 촬영하기 힘들어서’라고 답하니, 피부색 말고 머리색을 지적하더라. 그들은 내게 ‘넌 검은색 머리는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나도 은연중에 ‘금발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나’라는 반성을 하게 됐다. 난 당시 몸무게가 95kg이 넘는 풍만한 여성들을 모델로 ‘아이 앰 뷰티풀’이라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미(美)의 기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들의 지적은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2017년 중국 베이징 전시에서는 작품 검열도 당했다고.
“당시 검열당한 ‘저항(Resistance)’이란 작품은 내 얼굴에 미국 성조기를 그린 것이다. 오프닝 때 공안들이 와서 내 옷에 영어 단어가 있다고 입지 못하게 하고, 작품에 영어 단어와 성조기가 있다고 내리게 했다. 그때 공항 세관에서 압수당한 후 못 받은 작품들도 있다.”
청색 사진의 선구자
어릴 때부터 예술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밖에서 뛰노는 것보다, 집에 틀어박혀 낙서하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는 원로 조각가 고정수, 어머니도 미술 전공이라 예술과 친숙한 환경이었다. 대학 때 전공은 사진과 행위예술이었다.
-반전 사진은 어떻게 시작했나.
“암실에서 사진 작업을 하다가 나같이 피부가 노란 동양인은 인화하기 전 반전으로 파랗게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괴기하고 우울한 파란색에 빠져들었다.”
-2019년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 개막식에서는 행위예술 ‘허그’를 선보였다.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하기 위해 몸에 페인트를 잔뜩 묻힌 채 관객에게 다가가 안아달라고 했다.
“대학 졸업전에서 칼 해머 갤러리 대표가 ‘너, 나랑 같이 가려면 약속 세 가지만 하자’고 했다. 첫 번째 약속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남길 수 있는 작가가 되어라. 두 번째, 끊임없이 실험하라. 세 번째 경매에 나가지 마라.”
-경매는 왜?
“그래야 작가 수명이 오래간다. 너무 젊은 나이에 잘 팔리는 작가가 되면 자기 복제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팔린다 싶으면 멈추고, 실험적인 작업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젊은 작가는 투기 세력에 이용당하기 좋다. 한번 가격이 껑충 뛰면, 투기 세력이 붙어서 가격을 계속 올린다. 물론 그 가격을 유지시킬 만한 업적을 계속 만들면 되긴 한다. 그러나 젊은 작가가 어떻게? 이우환 선생처럼 작품 자체만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면, 투기꾼들에 의해 가격이 높아진 젊은 작가는, 그 가격이 유지가 안 될 경우 일회용 건전지처럼 버려진다. 그러니 경매는 대가 반열에 오르거나, 죽고 난 뒤 나가는 게 좋다는 것이 칼 해머의 충고였다.”
-그런데 작년 8월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거래소 클립 드롭스에서 디지털 아트 ‘공존’을 20초 만에 100개나 판매했다.
“난 NFT는 투기가 아닌 현실이고, 툴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미술 시장에 사진 작품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카메라로 찍은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엔 혁명이었다. NFT도 하나의 혁명이다.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이제 미술 시장 바이어들은 MZ 세대다. 그들의 마인드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NFT는 또 효율적이다. 저작권을 넘기지 않는 상태에서 다양한 2차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 작가가 경제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돌파구가 된다.”
-사진은 아마추어 작가들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야다.
“그들도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있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전공자가 가진 기술적 우위는 창작 작업에 큰 의미가 없다. 내가 6월에 사비나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는 인공지능(AI)과 협업한 전시다. 현재 인공지능이 가진 기술력은 상당하다. 내가 ‘호랑이를 핑크색으로 우울하게 그려줘’ 하면 인공지능이 그린다. 기술만으로는 언젠가 인공지능이 크리에이터를 위협할 시대가 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공지능에 대응해야 하는가.
“2016년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할 때 다섯 판 중 한 판 빼고 다 졌다. 그 한 판은 이세돌이 알파고가 상상할 수 없는 곳에 한 수를 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앞으로 크리에이터의 역할은 그런 이세돌의 한 수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그런 시도를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작가가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