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 기다리느라 심장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대통령님과 한잔하고 싶습니다!”

10일 새벽 국민의힘 대선 상황실. 전날 지상파 3사의 출구 조사 직후 윤석열 후보 지지율이 예상보다 낮아 다소 침울했지만, 다시 분위기를 띄운 건 30여 명의 청년보좌역과 청년 실무진이었다. 후보와 당 고위직들로 채워지던 이전 대선 상황실과 달리 이들은 중심부인 셋째 줄부터 앉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자정을 넘어서며 윤 후보 지지율이 역전하자 이들은 ‘정권 교체, 좋아 빠르게 가!’를 연신 외쳤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환호성을 터뜨리며 윤석열 당선인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따라했다.

‘59초 영상’ ‘AI 윤석열’ 등으로 후보의 꼰대·강성 이미지를 털어내며 참신한 메시지로 전 연령층에게 다가간 국민의힘 청년보좌역들은 윤석열 당선의 일등 공신. 이들의 전략은 ‘3N’에 있었다. 기존 여의도 정치를 벗어난 새로운 청년(New)이 후보와 캠프 실권자의 바로 옆에서(Next to) 듣기 싫은 고언(Noise)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2030 세대로 구성된 이들을 대선 전후로 두 차례 만나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와 포부를 들었다.

지난 7일 만난 청년보좌역 윤희진(왼쪽부터), 박성민, 박민영, 김서령, 신단아, 장예찬 청년본부장, 김찬영 청년본부 수석부본부장. /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 대선 후보에게 ‘직보’한 청년보좌역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건 올해 초다. 작년 말 선거대책위가 꾸려진 초기에는 정책, 홍보, 조직 등 여섯 본부에 1명씩 청년보좌역을 두고 있었다. 이와 별도로 윤 후보 직속의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도 운영됐다. 그러다 청년 조직을 확대하자는 후보의 뜻에 따라 작년 12월 공개 모집을 통해 청년보좌역 32명을 추가로 선발했다. 이들은 선거대책본부의 언론 전략팀, 이슈 대응팀, 디지털팀 등에 배치돼 전원 봉사직으로 근무해왔다.

청년보좌역들은 선대본 안에서 청년으로 이뤄진 또 하나 작은 선대본 역할을 했다. 후보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를 받쳐줬다. 매일 오후 2시면 부서별로 현안 대응 방안과 메시지, 홍보 방향을 중간 취합한다. 오후 6시에는 A4 1~2장 분량으로 일일 보고 형식 페이퍼를 만들고,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권영세 선대본부장과 윤 후보에게 직접 보고했다.

40여 명의 청년보좌역 다수는 여의도 밖에서 살아온 이들. 종묘제례악 무형문화재 전승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홍콩 민주화 시위를 도왔던 한국인 대학생까지. 남녀 비율은 7대3, 나이는 22~35세로 다양하다. 장예찬(34) 청년본부장은 “나이만 어리고 기성 정치인과 다를 것 없는 ‘여의도 청년’이 아니라, 정치 바깥에서 생활해온 이들로 구성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다양한 어젠다를 제시할 수 있었다”고 했다.

◇ “그 단어는 좀... 위험합니다”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을 알아채는 것도 청년보좌역의 일이었다. 지난달 중순 윤 후보는 광주 유세 도중 “복합 쇼핑몰이 광주에만 없다”고 말했다. 지역 민심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자 이준석 대표는 여세를 몰아 페이스북에 ‘호남의 정책 문제를 더 심층적으로 다루기 위해 우리 팀 특공조를 모두 투입한다’고 했다. 하지만 청년보좌역들은 곧바로 ‘특공조’라는 단어가 호남 주민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이 대표에게 수정을 건의했다. 박민영(29) 청년보좌역은 “5·18 특공부대를 연상시켜 여론이 반대로 호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의 후 팀 이름을 호남정책팀으로 바꿔 활동했다”고 말했다.

무심코 반감을 살 수 있는 후보의 행동을 막는 ‘이미지’ 보좌 역할도 했다. 지난 1월 윤 당선인의 e스포츠 경기장 ‘LoL 파크(롤파크)’ 방문을 앞둔 날, 청년보좌진은 윤 당선인에게 ‘프로게이머 찾아가서 억지로 사진 찍지 마시라’고 조언했다. 윤희진(30) 청년보좌역은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후보도 이를 진지하게 들어줬다. 의례적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법도 한데, 윤 후보는 ‘청년들이 하지 말라던데, 그런 거 다 빼자’고 했다”고 전했다.

‘멸콩 밈’도 청년보좌역이 제시한 아이디어. 지난 1월 윤 당선인은 이마트 방문 일정에 맞춰 올린 페이스북 메시지에는 ‘#멸치 #콩’ 해시태그가 포함됐다. 당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멸공’ 해시태그를 달아 밈(meme)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윤희진 청년보좌역은 “정 부회장의 멸공 밈에 민주당이 크게 반응했는데, 윤 당선인이 위트 있게 비꼬아보면 어떨까 생각해 아이디어를 냈고, 팀원들과 선대본 관계자가 함께 메시지를 다듬었다”고 했다.

짧게 후보 공약을 소개하는 ‘59초 영상’을 제작한 김동욱(31) 청년보좌역은 “첫 촬영 때 윤 당선인의 긴장을 풀기 위해 아이패드로 토리(윤 당선인 반려견) 사진을 보여드리니 곧바로 아빠 미소가 나오더라”고 했다. 또 그는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정책본부장은 현장에서 애드리브만 더할 뿐 우리가 쓴 스크립트를 그대로 읽었다. 두 분이 가까이 마주 보고 앉는 장면이 있었는데, 서로 계속 웃음이 터져 같은 장면에서 5번 넘게 NG가 났다”고 했다.

‘어퍼컷 세리모니’는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지난달 15일 부산 유세 현장을 시작으로 윤 당선인은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연호하면 주먹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어퍼컷으로 화답했다. 박성민(30) 청년보좌역은 “청년들이 제시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 이가 많았는데, 그건 당선인이 즉석에서 몸짓을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 “후보 바꿔라” 날선 직언도

이들은 어떻게 비중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청년보좌역들이 윤 당선인과 대면하고, 주요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벽’을 허문 것이 요인이다. 지난 1월 윤 후보는 온라인 게임 행사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개막식을 앞두고 청년보좌역에게 ‘롤 게임 과외’를 받았다. 박민영 청년보좌역은 “처음엔 캐릭터 이동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적이 나타나니 ‘빨리 해치워야겠다’고 하거나, 짧은 시간에 서른이 넘는 질문을 하는 등 큰 열의를 보이셨다”고 말했다. 매일 선거 전략과 이슈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리는 선대본부장 주재 회의와 상황실장 주재 회의에도 청년들이 돌아가며 참여했다.

올해 1월 청년 간담회 자리에서는 윤 당선인을 향한 날 선 직언이 터져 나왔다. 김서령(34) 청년보좌역은 “윤 후보 앞에서 ‘후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 청년보좌역도 있었다. 하지만 윤 후보는 어떤 반박도 없이 묵묵히 다 들어줬다. 간담회가 끝나고는 전국 시도당에서 청년의 조언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보고 체계를 간소화한 것도 효과적이었다. 개편 전 선대위에서는 명확한 메시지 출고 절차가 없어 메시지 초안을 두고 관계자 10여 명이 모두 첨언하는 식이었다. 선대위 개편 후에는 청년보좌역과 실무진들이 쓴 메시지 초안을 김동조 메시지 실장, 강석훈 정무실장, 윤재옥 상황실장 순으로 빠르게 회람했다. 메시지를 담당했던 윤희진 청년보좌역은 “그 전에는 이슈 대응이 늦어 메시지가 전날 일어난 일을 회고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는데, 선대본 개편 후에는 메시지 나가는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고, 절차가 줄다 보니 청년들이 낸 아이디어 반영률도 올라갔다”고 말했다.

큰 화제를 몰고 온 페이스북 단문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는 청년보좌역이 아닌 선대본 실무진이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지상파 3사 출구 조사 결과 2030 세대에서 남녀별 지지 후보 격차가 극단으로 벌어진 것에 대해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장예찬 본부장은 “남녀 할 것 없이 국민의힘은 2030 세대에게 외면받는 정당이었다. ‘여가부 폐지‘나 ‘무고죄 처벌 강화’ 같은 공약을 내세우면서 청년 여성 유권자에게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이 아쉽다”며 “남녀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은 앞으로 숙제지만, 이번 대선 결과는 2030 지지율만 보면 국민의힘에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당에서 청년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고 평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0대가 정치적 부동층으로 굳어지면서 2030 세대가 새로운 표심 공략층이 됐다”며 “현 정권 기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2030 세대가 정치 전면에 나섰다는 데 의미는 있지만, 여야 모두 청년의 역할이 뚜렷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떤 당선인이든 선거 때는 청년을 앞세운다. 반짝 빛나고 끝날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국정이나 정당 정책에 청년이 힘을 싣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