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그가 한 일은 일관되게 분열과 갈등을 키움으로써 ‘둘로 쪼개진 나라’를 만든 것이다.”
탁월한 정치 평론가인 강준만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통)이 임기 말에도 40%대 지지율을 기록하는 비결 중 하나로 ‘편 가르기 정치’, 일명 ‘갈라치기’를 들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국익을 위해 자기 지지자들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다가 지지율 하락 사태를 맞았지만, 문통은 집토끼를 지키느라 그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조국 사태일 것이다. 다수 국민은 조국 교수에게 법무장관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문통은 스스로 약속한 공직자 배제 원칙을 깨면서까지 그를 장관직에 앉혔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을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몰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반일 드라이브를 걸면서 일본과 잘 지내자는 이들을 토착 왜구로 몰았고, ‘페미니즘 대통령’ 운운하며 남녀를 갈라치기해 0.8이라는 전대미문 출산율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갈라치기의 레전드는 코로나 방역에 관한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이다. 코로나를 막느라 의료진이 사력을 다하던 그때, 문통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OECD뿐 아니라 전 세계를 둘러봐도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치기하는 지도자는 없을 것 같은데, 이쯤 되면 갈라치기 세계 챔피언이라 할 만하다. 취임사에서 했던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인데, 이런 분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바람에 지지자와 반대파는 사안마다 대립했고, 사회 갈등은 언제나 최고조를 유지했다. 과거에는 정치 성향이 달라도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지지하는 대상이 다르면 친구 관계마저 끊어버리는 현 상황은 갈라치기가 가져온 슬픈 결말이었다.
지난 2월, 인터넷에 올라온 포스터를 봤다. ‘더레프트’라는 천재 예술가가 만든 이 포스터에는 마이크를 잡은 윤석열 후보의 사진과 함께 그가 유세 도중 한 말이 쓰여 있었다. “호남이 잘되는 것이 영남이 잘되는 것이고 대한민국이 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 발전은 제로섬 게임이라 한 지역이 잘되면 다른 지역이 소외된다고 생각해 왔는데, 호남과 영남 모두 ‘대한민국’이며, 이들이 모두 잘돼야 대한민국이 잘된다고 하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그 일환으로 윤석열이 내건 공약은 광주에 복합 쇼핑몰을 유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선 후보가 왜 저런 공약을 낼까 의아했지만, 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광역시인 광주에는 그보다 더 작은 도시에도 있는 복합 쇼핑몰이 없었으니까. 원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간 광주 지역을 지배해온 민주당 세력이 시민 단체 및 지역 토호들과 결탁해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한 결과였다. 실제로 윤석열의 복합 쇼핑몰 유치 공약이 발표됐을 때 민주당이 보인 반응은 이게 사실임을 입증해줬다. “복합 쇼핑몰 유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며, 이는 광주 정신을 훼손해 표를 얻겠다는 알량한 계략이다.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 공약을 즉각 철회하고 광주 시민에게 사과하라.” 이재명 후보까지 “편 가르는 극우 포퓰리즘”이라 거드는 걸 보면, 좌파는 광주를 낙후한 지역으로 묶어둔 채 자신들의 표밭으로 이용하려 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 보수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보수 역시 자기들한테 표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광주를 방치하지 않았던가. 복합 쇼핑몰로 물꼬는 텄지만, 윤석열이 호남을 끌어안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또 있다. 집권 후 벌어질 ‘적폐 청산’이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는 알게 됐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얼마나 많은 어둠을 갖고 계신 분인지.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변호사비 대납, 법인 카드 횡령, 성남 FC 등등, 그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하면서 벌인 여러 의혹은 수사하는 게 맞고, 그에 걸맞은 처벌이 필요하다. 유동규를 비롯해 그를 도왔던 측근들도 단죄받는 게 옳다. 이게 다가 아니다. 탈원전 비리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문재인 정권의 의혹들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런 일이 누군가에게는 정치 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우리에겐 승자가 패자를 몰아붙이는 일을 야박하다고 여기는 정서가 있다.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윤석열은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해야죠. 돼야죠. 그러나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권력의 시녀란 비아냥을 받아온, 그리고 현 정권 들어 더욱 더 개념을 상실한 검찰이 대통령의 의중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윤석열에게는 대선 과정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펼친 경험이 있다. 그는 “여기까지”라는 SNS 게시물을 올리고 잠적하는 등 두 번이나 선대위에서 이탈한 이준석 대표를 끌어안았다. 특히 지난 1월 6일 국민의힘 의총에 나타나 “이준석 대표, 우리가 뽑지 않았나. 모두 힘을 합쳐서 승리로 이끌자”며 화합을 강조한 대목은, 그가 정치에 입문한 지 8개월밖에 안 된 신인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취다. 이 밖에도 당내 경선 이후 윤석열 후보를 모질게 비판했던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을 끝내 선대위에 합류시켰고, 여세를 몰아 안철수와도 단일화에 성공한다. 토론회가 끝난 새벽, 안철수 후보를 만나 “종이 쪼가리가 뭐가 필요한가. 나를 믿어달라”고 외친 모습은 믿음직했다.
그래서 그런지 일말의 기대감도 갖게 된다. 이런 사람이라면, 지난 5년의 갈라치기에 지친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리 국민이 아무리 까다롭다고 해도, 이준석·홍준표·유승민·안철수의 조합에 비하겠는가? 그래도 다음 말은 꼭 해야겠다. 초심을 잃고 전 정권처럼 갈라치기에 몰두한다면, 나부터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