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년 가까이 방치된 신한울 3·4호기 원전의 공사 재개를 약속하면서 경북 울진에선 지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5일 윤 당선인이 울진 산불 현장을 방문해 피해 지역 주민들과 만나고 있는 모습. / 국회사진기자단

“참말로 내 속이 뻥 뚫린다카이.” “여도 이제 좀 살 만해지는기가?”

15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의 한 백반집. TV 뉴스에 이날 울진 산불 피해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이 나오자 50대 손님 3명이 술잔을 부딪치며 토론을 벌였다. 한 남성은 윤 당선인이 이날 ‘가급적 빨리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많이 일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 발언을 두고 “이제 마, 울진 갱제도 살아나겄구마”라고 했다. 다른 손님은 “하모, 사필귀정이제”라고 했다. 옆 테이블에 있던 다른 손님도 목소리를 높였다. “산불 피해 보상금은 당장 나오기 어렵다카니 새 정부가 원전이라도 퍼뜩 맹글어줘야 울진 살림도 쪼매 나아지지 않겠나. 탈원전인가 탈핵인가 다 지겹다 아이가.”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에 신음하던 울진이 모처럼 들썩이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5년째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방치돼 있던 신한울 3·4호기가 정권 교체와 함께 공사 재개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이 탈원전 정책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는 신속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탈원전 직격탄 울진, 살아나나

울진은 국내 가동 중인 원전 24기 중 6기가 있는 최다 원전 보유 지자체다. 그런 울진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최근 수년 동안 지역경제가 스톱되다시피 했다. 각 1400MW(메가와트) 규모인 신한울 3·4호기는 2008년 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돼 2020년대 초 차례로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내놓은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 다른 원전 4기와 함께 건설이 백지화됐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가 당시 ‘신규 원전을 늘려선 안 된다’고 한 권고안을 유권 해석해 정식으로 삽을 뜨기도 전에 공사 계획이 전면 취소된 것이다.

한수원 직원이 미니어처로 제작된 울진 신한울 원전 조형물에서 비어있는 3·4호기 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포항·경주 등에 비해 관광·산업 기반이 약한 울진은 탈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예정됐던 대형 공사가 끊기면서 원전 산업만 바라보던 지역 경제 전체가 긴 어둠의 터널에 들어간 것이다. 원전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사업자지원사업비, 지역자원시설세, 기본지원사업비 명목으로 한 해에 800억원 안팎의 보조금을 울진군과 경북도에 낸다. 울진군은 이 돈을 각종 지역 발전 사업에 쓴다. 원전 공사에 투입되는 수천명의 건설 인력과 원전(한울1~6호기)에서 근무하는 직원 4000여 명(협력사 포함)은 울진군 자영업자들의 최대 고객이다. 한국원자력학회의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에 따른 지역경제 파급 효과’ 연구에 따르면 신한울 3·4호기 건설로 울진 지역에 연간 1조1198억원(발전 사업 1조660억원, 지원 사업 448억원 등)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원전 60년 가동 기간을 감안하면 원전 건설이 백지화될 경우 울진군의 경제 손실은 67조원에 달하고, 고용 피해는 24만3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원전 건설 중단에 따른 경제적 타격은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2016년 5만1738명이던 울진군 인구는 지난달 기준 4만7000명대까지 급감했다. 울진군 재정자립도는 2017년 17.4%에서 지난해 14.6%로 떨어졌다. 울진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700곳이 넘는 음식점·주점이 문을 닫았다. 현재 울진군 상가 공실률은 20%, 숙박업소 공실률은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자리, 세수 감소로 지역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인구마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 “원전 공사 멈추며 울진 경제도 멈췄다”

15일 찾은 울진 내 신한울 3·4호기 공사 현장엔 잡초와 돌멩이만 무성했다. 이미 외관 공사가 끝난 신한울 1·2호기와 달리 3·4호기 공사 부지엔 전신주 모양의 긴 시멘트 말뚝 2개가 꽂혀 있었다. 지금쯤 원자로 돔 건물이 들어섰어야 할 자리였다. 신한울 3·4호기엔 이미 7000억원이 투입됐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공사가 중단된 채 5년 가까이 방치돼 있다. 울진 주요 거리엔 이른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손님이 없어 일찍 문 닫은 가게들이 더 눈에 띄었다. 북면에서 30년 넘게 횟집을 운영하는 추원도씨는 “원전 공사가 멈추면서 울진 경제도 멈췄다”며 “새 원전 공사가 시작되면 인구 유입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1억 넘게 빚내 식당 리모델링을 하고, 원룸을 확장했던 사장들은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울진 군민은 행동에 나섰다. 지역 주민 수백명이 뭉쳐 만든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는 청와대와 국회를 찾아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서울행정법원에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한편, 감사원에는 건설 중단 위법성 검증 국민 감사를 청구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소원 심판이 진행 중이다. 울진군 내 주요 상점과 일부 자동차 유리창에는 ‘신한울 건설 재개’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범대위를 이끌어온 울진군의회 장유덕 원전관련특별위원장은 “1년에 수백만KW의 전력을 생산하는 울진의 원전은 지역 주민들의 눈물 위에 지어졌다”며 “ 3·4호기 공사를 하루라도 빨리 재개해 지역 주민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했다.

울진이 처음부터 원전에 친화적인 지자체는 아니었다. 1983년 첫 원전(현 한울 1호기)이 들어설 당시엔 안전성 문제와 주민 건강 문제로 반대 여론이 더 많았다. 원전과 함께 야산에 설치되는 대형 송전탑으로 인해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등 피해도 컸다. 하지만 원전 산업이 울진군 경제 기반이 되면서 지지 여론이 다수가 됐다. 최근엔 원전 폐기물을 보관하는 방폐장 유치까지 추진했다. 택시기사 유성민씨는 “지금까지 큰 사고도 없었고, 전문 인력 수천명이 들어가서 멀쩡히 일하는데 현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과도하게 공포를 조장한 것 같다”고 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울진은 소외된 지역이라 민주당 지지층이 꽤 되는데 이들도 상당수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을 뽑았다”며 “원전 공사 재개만은 꼭 해달라는 주문”이라고 했다.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

윤 당선인의 탈원전 철폐 의지가 확고한 만큼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까지는 큰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승인 절차도 필요 없어 언제든 공사를 재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와 올 연말 예정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전 발전 비중을 다시 높이는 절차상 문제만 남아있다.

문제는 울진을 비롯해 원전 신규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일부 울진 주민들과 탈핵 단체들은 “세계 최대 핵단지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 사람들’ ‘2022 탈핵대선연대’는 최근까지 울진 곳곳에서 ‘신한울 3·4호기 대선 공약 백지화’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울진 원전에서 700m 떨어진 부구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주민은 “새 원전을 추가로 짓겠다는 것은 원자력 산업계와 소수의 이익단체 만행”이라며 “원전이 그렇게 좋으면 서울이나 수도권에 지으라”고 했다. 일본 동일본 대지진 11주기였던 지난 11일에는 대구, 부산, 울산 등지에서 원전 확대 반대 집회가 열렸다. 울진 원전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규봉씨는 “원전은 일부 특권층에만 혜택이 갈 뿐 지역 경제에 도움이 안된다”며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강요하고 원전 사고 우려로 인한 불안한 삶을 이어가게 하려는 원전 건설 공약은 울진 군민을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이 휩쓸고 가면서 관련 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도 세력이 커져 다시 원전 강화로 돌리는 과정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