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용산 시대를 선언하면서, 차기 대통령 부부의 관저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가장 유력하다. 1975년 설립된 연면적 1081㎡의 공관이다. 경호 문제로 국방부 경내에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인테리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 부부의 인테리어 취향은, 기존 공간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림과 가구를 돋보이게 배치해 집을 미술관처럼 보이게 하는 ‘아트피스(예술품) 인테리어’이기 때문이다.
◇ 다운증후군 작가의 그림이 있는 거실
지난해 방송한 SBS 예능 ‘집사부일체’ 편을 보면, 윤 당선인 부부의 집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의 입주 당시 인테리어를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깔끔한 흰 벽과 우드톤 바닥 위에 가구와 그림을 예술품처럼 배치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자택 현관에서 안방으로 이어지는 벽에 걸린 김현우 작가의 작품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이다. 이는 윤 당선인이 직접 구입한 작품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작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김 작가는 학창 시절 수학 시간에는 숫자와 좌표, 도형을, 음악 시간에는 수많은 음표를 노트에 그렸다. 이 그림은 노트에서 캔버스로 포스카와 아크릴을 사용해 옮겨졌고, 2017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픽셀 킴’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러던 지난 5월 검찰 서기관인 김 작가의 아버지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아들의 개인전에 초청했고, 윤 당선인은 수행원 한 명과 전시회를 찾았다. 한 시간 가까이 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 윤 당선인은 파랑과 노랑, 주황 바탕에 김 작가 특유의 수학 공식이 빼곡하게 그려진 작품을 구입했고, 이를 거실 한가운데 걸어놓은 것이다.
◇ 프리츠 한센 의자, 모듈 가구의 실용주의
이 작품을 보고 앉을 수 있게 배치한 검정 데이베드(긴 의자)는 프리츠 한센의 ‘PK80′이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덴마크 디자이너 폴 켈홀름의 재능이 고스란히 담긴 제품이다.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도 영구 소장 중인데, 의자에 앉아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진열돼 있다.
거실 한쪽 벽면에 놓인 은색 수납장은 요즘 유행하는 모듈(부품 집합) 가구 스타일이다. 1885년 스위스 출신 철공업자 울리히 셰러가 설립한 세계 최초의 모듈형 가구 브랜드 USM 제품으로 추정된다. 리움미술관 아트숍에도 설치된 이 제품은 다양한 컬러와 사이즈로 구성된 부품을 사용자가 취향과 쓰임에 맞게 형태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단순한 구조에 언제든지 변형이 가능하며, 여러 번 조립해도 망가지지 않는 내구성과 실용성이 특징이다. USM의 모토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렇게 조립된 수납장에는 책과 연필꽂이, 검사 시절 명패까지 적절히 놓여 있다.
그 앞에 놓인 흰색 소파는 이탈리아 브랜드 폴리폼으로 보인다. 1942년 탄생한 브랜드로 모던한 스타일에 마감 처리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건축가 피에로 리소니, 장 마리 마소 등과 함께 일해 ‘건축가들이 사랑하는 가구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앉는 부분이 넓고 넉넉해 앉기뿐 아니라 눕기도 편하다. 한국인의 소파 사용법에 최적화돼 있다.
◇ 베르판 조명이 비추는 모던한 주방
개성 강한 거실과 달리 부엌은 트렌디한 소품들로 가득하다.
식탁 의자는 프리츠 한센의 대표작인 시리즈 세븐 체어와 라팔마의 신 스툴, 그 위 조명은 베르판이다.
시리즈 세븐 체어는 프리츠 한센의 대표적인 라인업 중 하나다. 덴마크 디자인 거장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해 1955년부터 생산한 제품으로 지금까지 900만개 이상 판매됐다. 아라비아 숫자 7이 마주 보고 있는 등받이 형상으로 국내에서는 배우 이범수, 남궁민 등이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전 세계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체 공학적 디자인으로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는 안 아프지만, 합판으로 만들어져 엉덩이는 아프다. 그래서 그런지 윤 당선인 집 시리즈 세븐 체어에는 방석이 놓여 있다.
손님용 의자로 식탁에 놓인 검은색 신 스툴도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이탈리아 마카토 형제가 설립한 브랜드 라팔마다. 길고 높은 두 의자가 한 세트처럼 조화롭게 식탁에 놓여있다.
검은색 식탁과 의자에 포인트를 주는 건 색색의 빛을 내는 베르판 조명이다. 덴마크의 전설적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의 독창성과 실험주의가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1969년에 디자인한 것으로 3개의 스틸 체인과 5개의 내부 반사기, 투명 아크릴이 둘러싸 한 개의 조명만으로도 포인트 인테리어가 가능하다. ‘한예슬 조명’으로도 알려져있다.
◇ 이강소 그림과 책가도가 걸린 집
언뜻 보면, 너무 트렌디해보일 수 있는 인테리어에 무게감을 주는 것은 한국 실험 미술의 선두로 꼽히는 원로 작가 이강소의 1994년 작품 ‘무제-94045′와 민화 ‘책가도’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폭 1m 크기의 이강소 작품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거래되는 원화가 아닌 판화다. 보통은 원화(原畵)가 있고 판화를 후속 제작하지만, 이 작품은 원화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1995년에 리소그래피(석판화) 기법을 통해 제작한 것이다.
그 옆에 있는 작품은 조선시대 정조가 문치주의와 실용주의 정치철학을 강조하며 지시했고, 단원 김홍도가 처음 그린 것으로 알려진 ‘책가도’다. 이 작품은 책가도로 제작된 병풍 그림 중 한 폭을 현대 작가가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학문과 도덕을 중시하는 유교 국가 조선의 아이콘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림에는 책과 함께 당시 청나라에서 수입한 신(新)문물, 장수·출세 등을 기원하는 물건들이 나온다.
조희선 꾸밈바이 대표는 “윤 당선인 부부의 집 인테리어는 편안함을 강조한 모던 실용주의”라며 “유행을 좇는 스타일이라기보다 스테디한 인기를 가진 디자인 가구를 아트피스처럼 모아 10년 가까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