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 등대의 일출 풍경. /이상윤 촬영
경북 포항 호미곶 등대 야경. /이상윤 촬영

“호미곶 등대가 ‘올해의 등대’에 선정됐습니다. 세계 90개 회원국, 33곳 후보지 중 최종 3곳이 올라갔고, 모로코 등대와 끝까지 경합한 끝에 영광을 차지했어요!”

한반도 최동단 경북 포항 호미곶에 자리 잡은 호미곶등대가 세계항로표지협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세계등대유산’이 됐다. 프랑스 코루두앙 등대, 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다 바라 등대, 호주 케이프 바이런 등대에 이어 4번째이자 아시아에선 처음이다. 세계항로표지협회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등대를 보존하기 위해 2019년부터 매년 올해의 등대를 선정하고 있다. 건축사학자이자 등대 연구자인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호미곶 등대는 한국의 근대를 알리는 상징적 건축물”이라며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시작해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과 일본을 거쳐 가장 늦게 등대를 도입한 한국에서 등대 건축의 완성품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선정 뒷얘기를 들려줬다.

호미곶 등대는 1908년 12월 20일 점등한 이후 110년 넘게 한반도 바닷길을 밝혀왔다. 높이 26.4m.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후 외부를 콘크리트와 석회로 마감했으며, 순백의 미감과 위로 올라가면서 날렵하게 비상하는 형태 등 군더더기 없는 신고전주의 건축 미학을 구현했다. 우리나라에서 지진 위험이 큰 포항에 위치하면서도 벽면에 균열 하나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호미곶 등대의 일출 풍경. /이상윤 촬영

눈길을 끄는 건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무늬가 1층부터 6층까지 각 층 천장에 새겨져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오얏꽃무늬 형상이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 새겨진 무늬와 동일하다”며 “지금까지 호미곶 등대는 일본이 주도해 건립했다고 잘못 알려져 왔고, 왜 이곳에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새겨졌는지 학계에서도 의문이었다”고 했다.

호미곶 등대 6층 천장에 장식된 오얏꽃 무늬. 1층부터 6층까지 각 층 천장에 오얏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상윤 촬영

이번 조사 과정에서 호미곶 등대의 건립 주체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됐다. 호머 헐버트가 창간한 영문 잡지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 1905년 11월호에 “호미곶(Cape Clonard)을 등대 부지로 선정했고 20초마다 2번 섬광을 비추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는 기록이 있다. 김 교수는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마자 이듬해 등대 부설 업무가 완전히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대한제국이 고용한 영국의 등대 건축가 존 레지널드 하딩이 그동안 진행한 등대 부설 업무들을 정리한 기록”이라며 “호미곶 등대가 일본이 아니라 하딩의 주도로 이미 건립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석조전을 설계한 하딩이 호미곶 등대 건립에도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했다.

경북 포항 호미곶에 자리잡은 호미곶 등대. /이상윤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