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나경원(59)은 중요한 일이 있는 날 초록색 정장을 입는다. 강인해 보이면서도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신념의 색’이어서다. 2019년 3월 12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날에도 초록색 바지 정장을 입었다.
단상에 오른 그는 미세 먼지, 최악의 실업, 세금 퍼주기, 한미 동맹 붕괴 등 수많은 실정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안기고도 사과 한마디 없던 문재인 정권을 향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난 70년 위대한 대한민국 역사가 좌파 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로 포문을 연 연설은 대북정책에서 정점에 올랐다.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여당 의원들의 고함과 야유가 빗발쳤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야당 원내대표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민주당의 이런 오만과 독선이 이 정권을 오만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제발 조용히 해주십시오. 이것이 선진의회의 모습입니까? 이 자리에서 제 원내대표 연설을 마칠 때까지 내려갈 수 없습니다.”
20여 분 중단된 시간을 포함해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격랑의 연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몰락해가던 보수세력을 결집시킨 대전환점이 됐다. 동시에 ‘범생이 의원’ 나경원이 ‘보수의 전사’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김태우 수사관의 민정수석실 감찰 무마 폭로로 시작된 환경부 장관 블랙리스트 사건, 손혜원 의원 목포 땅투기 의혹, 패스트트랙 3법 날치기 파동, 조국 사태로 요동치는 정국을 뚝심 있게 이끌며 정권 교체의 발판을 다졌다. 핵사이다, 나다르크란 별명이 이때 붙었다.
나경원 전 의원을 대선 직후 만났다. 정치에 발 들인 지 올해로 만 20년. 대선 때 백의종군하며 86차례 유세했다는 그는 “체력이 달려 힘들었지만 정권교체를 이뤄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외교부 장관 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세간의 풍설”이라고 일축했다. 6월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기여해보려고요.” 지난 23일과 24일 두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나경원 오면 박수소리가 달라진다길래
-22일 동안 88회 유세에 참여했다더라.
“86회가 맞다. 마지막 닷새는 매일 아침 30분씩 링거 맞고 유세장으로 달려갔다. 나경원이 오면 박수소리가 달라진다는데 가야지 어쩌겠나, 하하! 날 붙잡고 ‘꼭 이겨달라’며 우는 분도 많았다.”
-아무 직함 없이 백의종군한 건가.
“캠프에선 처음에 내가 중도확장성에 도움이 안 된다며 자리 주기를 꺼려 했다.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니 지원 요청이 빗발치더라. 당 사무처 말로는, 다른 의원들에 대한 지원 유세 요청건을 합친 것보다 나경원 한 사람에 대한 지원 유세 요청건이 더 많다고 하더라.”
-윤석열 당선인과의 인연이 각별하던데.
“서울법대 선후배였고, 서교동 같은 고시원에서 공부했다. 지금도 나를 ‘나 여사’로 부르는데, 그분이 나도 잊고 있던 일화를 들려주더라. 내가 초·재선 의원 할 때 만난 적이 있는데 ‘나 여사가 대통령 선거 나가면 내가 검사 그만두고 도와줄게’ 했었다고. 근데 거꾸로 됐으니 인생이 참, 하하!”
-그런 윤 당선인이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으로 내정됐을 때 ‘검찰을 정권하수인으로 만들려는 문재인 정부의 음흉한 계략을 저지할 것’이라고 선전포고했었다.
“최대한 자제하다가 공격한 건데 섭섭하셨을 거다(웃음). 친분을 떠나 야당 원내대표로서 할 일은 해야 하는 거니까. 그래도 나는 이 양반이 우리와 생각이 같다는 걸, 그리고 법과 원칙에 따라 사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새 정부 외교부 장관으로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언론의 하마평일 뿐이다. 아무 언질 받은 바 없고, 결정된 것도 없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외교통상위원장으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일본 등 외교가 인맥도 상당하다던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정권이 초지일관 추진해온 종전선언을 저지하는 데 내가 역할을 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판문점 선언이 나왔을 때 다들 박수 치고 환호했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선언문을 읽어보니 북한은 아무런 의무가 없고 우리만 무장해제하겠다는 뜻이었다. 미국 가서 이걸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좌충우돌 트럼프 대통령은 그냥 놔두면 자기 이익에 따라 결정해버리니까. 그래서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썼고 오케이 답신이 와서 미국으로 날아갔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방해할까 봐 거의 007 작전 하듯 만난 볼턴에게 문재인 정부의 본질을 설명했다. 그들이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하려다 안 되니, 교과서에서 삭제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볼턴이 싱가포르와 하노이회담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유다.”
-대선 경선 중인 작년 하반기에도 미국에 다녀왔다.
“9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 가서 또 종전선언에 관한 얘기를 하셨다. 그러자 미국에서도 이를 지지하고 결의하는 의원들이 늘어나더라. 안 되겠다 싶어 10월에 다시 워싱턴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종전선언의 속뜻은 모른 채 한인 표를 얻거나 한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찬성하려는 의원이 늘고 있었다. 볼턴을 비롯해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국 사령관,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고, 한국계 영 김 의원, 마이클 매콜 의원과 협력해 35명의 하원의원이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이끌었다.”
◇결국 정치는 대의와 명분
-2019년 3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말로 국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우리가 알던 나경원이 아니더라.
“솔직히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표현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그렇게 화낼 줄은 몰랐다. 그보다 더한 대목이 많았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진 거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말은 알다시피 블룸버그통신에 ‘남한의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 수석대변인이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말 듣지 않게 잘해달라고 부탁한 것뿐인데 난리를 치니 당황스러웠다.”
-연설도 화제였지만, 고함치고 야유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호통치는 장면에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2017년 새 정권이 들어선 뒤 우리 당은 분당과 분열로 거의 문을 닫을 뻔했다. 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이 ‘살아있는 권력’이 잘못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폭발한 그날 연설이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변해준 계기가 된 게 아닐까. 판문점 선언에서 하노이 회담까지 가짜 평화에 취한 좌파 정권의 폭주를 향해 보수가 대놓고 비판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물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연설을 전후해 정권의 존립을 흔들 만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김태우 수사관의 양심선언이 나오자마자 당내에 특위를 만들어 정말 열심히 뒤졌다. 그 결과가 환경부 장관 블랙리스트다. 손혜원 목포 투기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도 목포로 내려가 결정적인 자료를 찾아냈다. 1자로 그어졌던 개발계획이 손혜원 의원이 땅을 사고 나자 T자로 바뀐 것을 밝혀냈다.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땐 어마어마한 제보들이 쏟아졌다. 법사위원 5명으로는 어림없을 것 같아서 11명으로 구성된 TF(태스크포스)를 꾸려 이 잡듯이 밝혀내기 시작했다. 정말 지독하게 싸웠다.”
-결국 조국 전 장관을 사퇴시켰다. 서울법대 82학번 동기인데 마음이 좋지는 않았겠다.
“왜 저러고 살았나 싶더라. 우리가 낙마시키려고 일부러 노력한 게 아니라 들여다볼수록 흠이 많았다. 국민들은 입시 비리에 가장 분노했다. 결국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좌파의 선민의식이 조국을 낙마시킨 셈이다. 광화문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였고, 그 에너지가 부동산 참사와 함께 정권 교체의 초석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나경원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본격화됐다.
“2020년 총선은 나경원 대 이수진의 싸움이 아니라, 나경원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싸움이었다. 민주당 전체와 친정권 방송이 달려들더라. 주진우·김의성이 진행한 MBC ‘스트레이트’가 무려 3회에 걸쳐 우리 아들이 가짜 논문을 써서 예일대에 부정 입학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애인 딸과 스페셜올림픽까지 들고 나오더라. 조국 전 장관을 사퇴시킨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조국과 똑같이 나경원도 불공정하다는 프레임을 씌우려고. 실제로 방송 이후 지지율이 10%가 빠졌다. 당연히 낙선했다. 총선이 끝난 뒤에는 추미애 법무장관 지시로 서울대와 스페셜올림픽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더라. 내가 드디어 우리 아이들 앞길까지 막는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했다.”
-결국 13건이나 되는 고발이 모두 무혐의 결론 났다.
“자기들이 봐도 말이 안 되니까. 그마저도 담당 검사들이 무혐의로 결론 낸 것을 윗선에선 마냥 들고 있다가 윤석열 총장 징계에 평검사들이 들고일어나자 마지못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빠루’가 등장했던 패스트트랙 저지 사건은 아직도 재판 중이다. 끝내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 나경원의 실패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헌정사에 엄청난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은 그때 공수처법이 잘못됐다는 것, 연동형 비례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우리가 큰소리로 떠들었기 때문에 국민이 인식할 수 있었고, 5년 만의 정권교체에도 기여했다고 본다.”
-원내대표 시절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거친 설전을 펼쳤던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참패했다.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는 결국 조국 전 장관 편을 들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본다. 의석 몇 개 더 얻으려고 조국과 연동형 비례제를 바꿔먹었다가 패퇴한 것이다. 결국 정치는 대의와 명분이다.”
◇꽃가마? 의리 없는 보수당에서 분투했다
서울행정법원 판사였던 나경원은 2002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여성특별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4선 의원으로 당 대변인, 최고위원, 국회 외통위원장을 거쳐 보수당 최초의 여성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사람들은 내가 정치판에서 꽃가마만 탄 줄 아는데 두 번의 임명직을 제외하고 모두 경쟁해서 내 힘으로 얻어낸 것”이라고 했다. 위기에서도 강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뒤 3년 만에 동작을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며 정계로 복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자유한국당을 기사회생시킨 주역도, 3수 끝에 원내대표로 선출된 나경원이었다.
-동작을 승리는 극적이었다.
“노회찬·기동민 후보가 단일화할 게 뻔한 상황이라 동작을로 나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시장 낙선 후 집에 가서 푹 쉬라던 당이 동작을을 권하더라. 운동화를 다시 질끈 묶었지. 사전투표 직후 지지율을 보니 뒤처지고 있어서 바로 구호를 바꿨다. ‘살려주세요 동작, 살려주세요 나경원!’으로. 다음 날 시장에 갔더니 어떤 중년 남자 분이 그 구호를 보고 선거가 만만치 않겠다 싶어 휴가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더라. 926표 차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선거는 절실해야 이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지난 대선 우리 당의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 진영이 무너진 데 대해 나경원의 책임을 묻는 이들도 있다.
“그때 나는 탄핵을 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촛불 집회에 몰려든 군중을 경찰이 막지 않는 걸 보면서 이걸 끊어주지 않으면 무슨 변고가 날 것 같더라. 국회가 정치적으로 한번 탄핵을 해서 국민의 분노를 꺾어주면, 헌재에서 이를 기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당의 대통령을 탄핵한 데 대해 보수 지지자들의 분노가 거셌다.
“탄핵 정국에 잠시 미국엘 갔는데 거기 정치인들이 정말로 대통령을 탄핵할 거냐고 묻더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라. ‘너희들이 배출한 대통령인데?’ 하면서. 그러고 보니 미국은 자기 당의 대통령을 탄핵한 적이 없었다. 뒤돌아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당을 지키고 재건하는 데 온 힘을 쏟아부었던 것 같다.”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뒤엔 가시밭길이었다. 2020년 총선에서 졌고, 서울시장 경선, 당대표 경선에서도 잇따라 패했다.
“이제 와서 룰의 문제를 따지고 싶진 않지만 당원 지지가 압도적이었던 내겐 100% 국민여론조사로 성패를 가른 매우 불리한 선거였다. 원내대표 하면서 문재인 정권과 이 악물고 싸운 나를 싸움꾼 혹은 태극기로 프레임 씌우며 공격하는 것이 정말 섭섭하더라. 보수정당이 패퇴한 이유 중 하나가 나는 의리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의리가 지나쳐서 조국, 윤미향 같은 사람을 끝까지 보호하려다 망했지만, 반대로 우리는 상대의 부당한 공격에 같이 맞서서 싸워주질 않는다.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튈까 봐 외면한다. 그 또한 나의 정치적 부족함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20년에 대한 소회가 특별한 것 같다.
“보수의 뿌리가 너무 약하다. 의리도, 사람의 역사성도 없다. 그러니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밖에서 사람을 꾸어온다. 당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가 많고, 그걸 지키려고 하면 꼴통이라고 비난한다. 정체성 없는 정당이 정당인가? 그건 친목집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원은 더 이상 새 얼굴이 아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새 피가 오는 것에 당연히 찬성하지만 겪어보니 경륜이 필요한 것 또한 정치더라. 문제는 정치인의 경력은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다. 관료로서의 경력은 인정해주는데 정치를 오래하면 ‘해먹을 대로 해먹었잖아’라며 폄훼한다. 총선 때만 되면 물갈이 비율 가지고 개혁공천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에 회의를 느낀다.”
◇발로 커피콩을 가는 남자
-서울시장 경선을 앞두고 TV조선 ‘아내의 맛’에 가족과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됐다. 늘어진 티셔츠 입고 탬버린 치는 모습에 놀란 시청자들 많았다.
“그게 평소 내 모습이다. 화장도 안 하고 장 보러 다닌다. 공주라는 말은 내 본질과 한참 멀다. 그래서 손해도 많이 봤지만(웃음).”
-TV에 남편 김재호 판사가 발로 커피 (원두를) 가는 장면이 나오더라.
“그걸 누가 보고 우리 집앞에 커피 가는 기계를 하나 놓고 가셨다(웃음). 누군지 몰라서 아직 인사도 못 드렸다. 그래도 남편이 발로 (도구를 잡고) 가는 커피가 맛있긴 하다. 소박한 사람이다. 결혼을 했는데 빵꾸 난 양말을 주며 좀 기워달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구두도 뒤축이 닳도록 신어서 이러면 남들이 날 욕한다고 해도 새 구두를 안 산다.”
-정치인 아내 외조도 보통 일 아닐 것 같다.
“남편은 정치와 담을 쌓고 산다. 주말에 내가 바빠서 나가면 딸이랑 밥 먹어주며 집안일을 거든다. 속옷 하나 안 사주는 엉터리 아내와 살아주니 미안할 뿐이다.”
-다운증후군 딸 유나씨도 방송 후 인기를 얻었다.
“지하철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단다(웃음). 요즘은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서 보조에 도전하고 있다. 벌써 1년이 넘어서 이제 4000권의 청소년 도서를 관장하는 일을 맡는단다. 틈날 때마다 외할아버지 간병을 하는 착한 아이다.”
-엄마 때문에 검찰 조사까지 받은 아들은 군복무 중이라 들었다.
“특전사다. 끈 떨어진 정치인 엄마 때문에 고초를 겪게 해 두고두고 미안해하고 있다.”
-2030 여성들 사이 나경원은 바지 정장을 가장 세련되게 입는 여성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럴 리가! 옷이 없어서 셔츠와 스카프만 달리해가며 입는다. 너무 오래 입어 보푸라기 일고 바짓단이 닳아 있는 옷이 대부분이다. 이제 나잇살까지 생겨 허리를 늘려 입어야 한다. 바지를 두어 개 사긴 사야 하는데 버티는 중이다. 백수라 돈도 아껴야 하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