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대진표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대선 주자나 당대표, 다선 중진급 ‘빅샷’들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이들은 차기 대선 주자로도 거론돼,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급 선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이 중에는 지난 대선 당내 경선에 출마했던 이도 여럿 있는데, 이 때문에 “지방선거가 패자부활전이냐”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눈이 2027년 대선에 향해 있다고 지적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빅샷 후보들은 모두 다음 대선을 보고 뛰는 것”이라고 했고,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보다 큰 자신의 정치적 꿈을 달성하기 위한 디딤돌로 이번 지방선거를 보는 후보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선 주자, 당대표급 나서는 수도권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곳은 경기도다. 이재명 전 지사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경기지사 자리는 무주공산이 됐고, 여야 할 것 없이 정치 거물들이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달 31일 국민의힘 대선 주자였던 유승민(64)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경선 패배 뒤 정계 은퇴를 고민했던 유 전 의원은 당 안팎의 수많은 사람에게 출마를 권유받았다고 한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유 전 의원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와 바른미래당 대표를 지냈고, 대선에도 두 번 도전했다. 같은 날 새로운물결 김동연(65) 대표도 출마 선언을 했다. 민주당과 합당을 진행 중인 김 대표는 지난 대선에 입후보했지만 막판에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했다. 김 대표는 “이재명이 함께한 경기도에서 김동연이 약속을 지키게 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김 대표는 유승민 전 의원이 경기도에 연고가 없다는 점을, 유 전 의원은 김 대표에게 문 정부 경제 실패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밖에 민주당에선 5선을 지낸 안민석·조정식 의원과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을 지낸 김은혜 의원이 출사표를 냈다.
서울시장 선거도 빅매치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현역 오세훈(61) 시장은 지난 2월 일찌감치 4선 도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오 시장은 지난해 4·7 보궐선거에서 득표율 55.24%를 기록,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경선 없이 오 시장을 단수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송영길(59) 전 대표가 1일 출마 선언을 했다. 중량감 있는 인사가 오 시장의 대항마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 힘입어 송 전 대표가 등판한 것이다. 5선 국회의원인 송 전 대표는 제13대 인천시장을 지냈다. 민주당에선 송 전 대표 외에도 재선인 박주민 의원, 김진애·정봉주 전 의원, 김송일 전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주영 변호사가 출사표를 냈다.
김형준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는 새 정부 출범 20일 만에 치러지는데, 대선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높다”며 “민주당에서 송영길·김동연이 나오는 것은 이재명 조기 등판과 8월 당권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 볼 수 있고, 유승민의 출마는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양당에서 지방선거 승부처에 거물을 넣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며 “유승민 같은 경우 경기지사 선거를 (2027년 대선 출마 기회를 잡기 위한)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송영길은 다음 플랜으로 서울시장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장·충북지사도 거물급 참전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는 국민의힘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대선 직후 “중앙 정치는 윤석열 당선자에게 맡기고, 나는 하방을 하고자 한다”며 출마 의사를 밝힌 홍준표(68) 의원은 지난달 31일 공식 출마 선언을 했다. 5선인 홍 의원은 재선 경남지사, 두 차례 당대표를 지냈고, 대선도 두 번 도전했다. 옛 친박계 핵심인 김재원(58) 전 최고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인 유영하(60) 변호사 등도 출사표를 냈다. 민주당에서는 서재현 전 대구 동갑 지역위원장이 출사표를 냈다.
역대 선거에서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 충청권도 분위기가 가열되고 있다. ‘3선 제한’ 규정에 따라 이시종 현 지사의 출마가 불가능한 충북지사에 도전장을 내는 여야 후보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노영민(65)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달 28일 출사표를 냈다. 청주흥덕에서 3선 의원을 지냈고, 문 정부에서 주중 대사와 청와대 비서실장 등 요직을 거쳤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영환(67) 전 의원, 오제세(73) 전 의원, 이혜훈(58) 전 의원, 박경국(63) 전 차관이 출마 선언을 했다. 김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과기부 장관을 지냈고,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오 전 의원은 청주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했다. 3선 의원 출신인 이 전 의원은 바른정당 대표를 지냈다.
민주당 소속으로 지난 대선에 도전했던 양승조(63) 충남지사는 재선 도전이 확실시된다. 충남 천안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양 지사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62.6% 득표율로 당선됐다. 국민의힘에선 3선 김태흠(59) 의원의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 김 의원의 출마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완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와 박찬우 전 의원도 출사표를 냈다.
전남지사를 두고는 민주당에선 현역 김영록(67) 지사가 단독 후보로 공천될 것으로 보인다. 재선 의원 출신인 김 지사는 문 정부 첫 농림축산부 장관을 지냈다. 김 지사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는 이정현(64) 전 새누리당 대표다. 이 전 대표는 보수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전남에서 국회의원에 두 번 당선된 인물이다. 호남 지역 단체장 선거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량감 있는 보수 후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 등 중량급 인사들이 외국에 가거나 칩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왜 다를까. 김형준 교수는 “대선 직후 지방선거가 있으니 바로 선거를 다시 치르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대선 뒤) 너무 짧은 시간에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생기는 정치적 변이 현상”이라고 말했다. 장성철 교수는 “지자체장이 되면 물적·인적 자원을 활용해 대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점, 새 정치인들이 빨리 나오고 시대가 급변하는 와중에 ‘내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잊힌다’는 두려움 등도 빅샷들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이유”라고 했다. 박성민 컨설턴트는 “최근 광역단체장을 거쳐서 대선에 도전하는 게 뚜렷한 추세”라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김영춘 전 장관의 은퇴 선언, 김부겸 총리의 은퇴설을 언급하며 “정치를 이어가고 싶은, 그러나 이들과 비슷한 또래인 홍준표, 송영길, 유승민은 마음이 초조하지 않겠나”라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