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오른쪽)와 미도리가 오니기리를 먹어 보는 모습. /스폰지

일본의 노포 소개 유튜브 채널에서 오니기리 전문점의 영상을 보았다. 기본으로 오십 년은 쌓고 시작하는 노포들인지라 다들 나름의 사연이 있으니 오니기리 전문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칠십 대인 주인이 젊었을 때 상경해 아버지와 동갑인, 27세 연상의 남성과 결혼해 인수 받은 가게라고 했다. 속 재료가 무려 55가지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 ‘카모메 식당’(2007)을 떠올렸다.

카모메(갈매기) 식당은 뜬금없게도 핀란드 헬싱키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일본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다. 대표 메뉴는 오니기리이며 셰프 겸 주인인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는 ‘잘생긴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헬싱키에 음식점을 냈다고 말한다. 핀란드에 일본 가정식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 속 헬싱키 사람들도 그저 창밖에서 고개만 갸웃거리며 분위기만 살피다 지나치곤 한다.

문은 매일 열지만 손님은 발을 들이지 않는 카모메 식당에 천천히 변화가 찾아온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젊은이 토미가 매일 찾아오는 한편, 사치에는 시내에서 우연히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를 만난다. 눈을 감고 세계 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어 핀란드에 왔다는 미도리는 카모메 식당에 합류하고 사치에에게 제안을 한다. 현지 재료를 좀 더 적극적으로 쓴 오니기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순록 고기까지 직접 장을 봐 온 미도리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오니기리를 만들어 보지만 맛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사치에는 ‘일본 음식인 오니기리는 역시 전통 재료로 만들어야 제맛이죠!’라며 전통을 고수하겠노라고 공언한다.

그렇다면 사치에는 한국의 삼각김밥을 어떻게 생각할까? 오니기리는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내용물은 물론 이름마저도 삼각김밥으로 변화를 겪었다. 오니기리(御握り)는 원래 ‘쥐다’ 또는 ‘잡다’를 뜻하는 동사(握る)에서 비롯된 단어로, 우리말로 치면 ‘주먹밥’이다. 영화에서도 주먹밥이라 옮기는데 모양이 굳이 삼각형일 필요도 없다. 오니기리는 전통적으로 둥글었는데, 1980년대 일본에서 편의점 시장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삼각형 모양이 대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국내에는 1991년 세븐일레븐에서 처음 출시했고, 다른 편의점 프랜차이즈에서도 도입해 오늘날의 지평을 이루게 되었다. 재료 또한 현지화 과정을 거쳐 불고기 삼각김밥 같은 건 너무 자연스럽고, 간장이나 고추장으로 밥을 비빈 제품도 흔해졌다.

음식도 문화의 일부이고 문화는 흐른다. 따라서 본토의 전통 혹은 원형이란 그리 쉽게 지킬 수 있거나 억지로 지켜야만 하는 게 아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재료만 하더라도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사치코는 핀란드에서 마음에 드는 쌀을 찾아 오니기리를 만드는 걸까? 이런 제약에 현지인들 취향 등까지 감안하면 음식은 매우 자연스레 변화를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모메 식당은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한편, 현지인들이 자리를 메우는 해피엔딩을 보여줌으로써 전통을 고수한 자신들의 선택이 맞았음을 드러낸다. 영화가 워낙 잔잔하게 흘러가기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전반을 관통하는 고집은 보통이 아니다.

사실 55가지 재료의 일본 노포 오니기리만큼이나 우리의 삼각김밥도 만만치 않다. 프리랜서 에디터인 박찬용이 음식 배달 대행업체 요기요와 만드는 뉴스레터 ‘요기레터’는 최근 시중의 삼각김밥을 총망라하는 자리를 가졌다. 시중의 삼각김밥 50종을 먹어보고 그 가운데 특색 있는 것 20여 종을 추려 소개한 것이다. 스팸이나 참치 마요네즈 같은 기본을 넘어서 로제닭갈비, 불곱창, 대게딱지장 등 카모메 식당이 울고 갈 규모로 나름의 전통을 확립했다. 5대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한데 아우르면 100종이 넘는다고 하니 이제 삼각김밥은 오니기리로부터 확실히 독립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