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郡).’ 일반 국민에겐 이름도 생소한 경북의 이 지자체가 최근 연달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달 9일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당선인 득표율(83.19%)이 전국 최고를 기록한 것. 군위는 대선 투표율(83.7%)도 경북 28개 시·군 중 가장 높았다. 군위 주민이 사실상 윤 당선자에게 몰표를 던져준 셈이다. 대선 2주 후인 지난달 25일엔 김영만(70) 군위 군수가 서울 통의동 인수위 집무실에서 윤 당선자와 단둘이 만난 모습이 공개돼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집무실 이전, 차기 정부 인선으로 정신 없는 와중에 대통령 당선인이 지방 군수와 회동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5일 군위군청에서 만난 김 군수는 “군민이 윤 당선인에게 몰표를 준 것, 당선 직후 당선인과 회동을 가진 것 모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대구 편입 문제와 신공항 건설 문제에 대해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중앙 정치권에 어필하기 위한 것”이라며 “군위는 현재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걸 넘어 지자체가 사라질까 걱정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했다. 경북 군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5일 경북 군위군의 빈집에서 김영만 군수가 마당에 버려진 그릇을 들고 있다. 군위는 고령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반면, 청년 인구는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전국에서 소멸 위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자체가 됐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도시

군위는 지난해 기준 인구 2만2945명의 ‘초미니 도시’다. 전국 228개 지자체 중 여섯째로 인구가 적다. 관광 명소나 산업단지가 없어 이마저도 매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군위군 면적(614.25㎢)은 서울시(605.24㎢)보다 넓지만 인구는 413분의 1 수준. 이 때문에 군위는 최근 수년 동안 전국에서 소멸 위험이 높은 도시 상위권에 꾸준히 오르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군위는 도시가 사라질 가능성을 나타내는 소멸 위험도(0.11·지난해 기준)가 전국 시·군·구 가운데 가장 높았다. 소멸 위험도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 대비 20~39세 여성 인구 비율로 계산한다. 미래 세대를 낳고 기를 가임(可妊)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향후 20~30년 뒤에는 도시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에서 마을이 사라지는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 군위다.

군위는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자녀를 낳는 주민에겐 첫돌 축하금·출산 장려금 등 각종 지원금을 주고, 셋째 자녀를 낳을 경우 최대 16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군위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오면 지원금만 총 500만원을 준다. 군위 내 고등학교 졸업생에겐 사회 정착금으로 200만원도 지급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인구 부양책도 소용이 없었다. 보조금 혜택을 받을 청년 인구(20~39세) 자체가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군위군에 따르면 청년 인구 비율은 전국 최저 수준인 11%대인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40%가 넘는다. 부양 인구에 비해 노인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군위는 지난해 사망자(370명)가 출생자(55명)를 7배 가까이 앞질렀다.

실제로 지난 5일 찾아간 군위군 읍내에선 2시간 넘게 돌아다녔지만, 10대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군위에선 최근 들어 문을 닫는 초등학교, 중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소방서도 없어 불이라도 날 경우 수십분 떨어진 의성군에서 소방차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군위에 유일하게 응급실을 갖추고 있던 읍내 병원도 경영난으로 수년 전 문을 닫았다. 한 60대 군위 주민은 “군위와 인접한 구미 공단에서 삼성⋅LG 등 대기업 공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군위에서 출퇴근하던 젊은층이 외지로 나가 청년들은 씨가 마른 상태”라고 했다. 최정우 군위군 부군수는 “군위는 대구와도 인접해 있지만 칠곡·고령 등 다른 지자체와 달리 교통 인프라가 부족해 베드타운 역할도 못 하고 있다”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마을에서 청년회장도 뽑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군위군이 최근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늘어나는 빈집이다. 군위경찰서와 버스터미널, 식당가가 있는 읍내 중심부엔 사람이 살지 않아 수년째 방치된 폐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 빈집에 들어가 봤다. 천장은 여러 차례 빗물이 샌 탓에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있었고, 그 아래 바닥엔 흙더미와 깨진 유리 조각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집 안 곳곳 쓰레기 더미에선 심한 악취가 났다. 김영만 군수는 “최근 2년 동안 군위에서 철거한 빈집만 90동이 넘는다”며 “이게 지금 저희 군위의 현실이고,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 “대구 편입, 신공항에 사활”

존폐의 기로에 선 군위는 최근 대구광역시 편입, 신공항 유치를 마지막 카드로 꺼내들었다. 기장군(부산), 옹진군(인천)처럼 광역시 안에 들어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현재 이전을 추진 중인 대구 공항을 군위에 유치해 청년들을 불러모을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군위군은 지난 2020년 7월 경북도, 대구시와 대구 편입을 조건으로 군위에 군 공항과 민간 공항을 합친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을 짓기로 합의했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신공항 건설에 따른 생산유발 등 직간접 경제효과만 51조원에 이르고, 취업유발인원도 40만명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업 시작 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군위군의 요청으로 정부는 지난 1월 ‘경상북도와 대구시 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5월 입법을 완료해 오는 6월 지방선거부터 ‘대구시 군위군’으로 선거를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군위의 대구 편입에 따른 선거구 조정 가능성을 우려한 국민의힘 소속 경북 지역 일부 의원의 반대로 지난 2월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이 때문에 오는 2024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28년 개항하는 것을 목표로 한 10조원 규모 신공항 사업도 중단됐다. 김 군수는 “윤 당선인이 최근 만난 자리에서 통합 신공항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구시 편입도 당 차원에서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재필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 감소로 고민하다가 1995년 대구에 편입된 달성군의 경우 현재 인구가 2배 이상 늘었다”며 “정치적 문제로 어려움이 생겼지만 군위도 대구 편입에 성공할 경우 상당한 지역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47년 모든 시군구가 소멸위험지역

인구 감소와 이로 인한 지방도시의 소멸 위기는 군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0월 군위를 포함해 전국 시군구 지자체 89곳을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 향후 10년간 매년 총 1조원을 지자체에 지원하기로 했다. 부산, 대구, 인천 등 주요 광역시의 일부 자치구와 경기 가평, 연천 등 수도권 지역까지 명단에 포함됐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오는 2047년에 전국 모든 시군구가 소멸위험지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지자체들은 최근 들어 인구 감소를 막을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남 하동군은 넷째 자녀를 낳는 주민에게 1500만원을 주던 출산 장려금을 올해부터 3000만원으로 올렸다. 천안도 지난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하자 출산 지원금 지급 규모를 대폭 늘렸다. 경북 상주는 지난 2019년 인구가 10만명 밑으로 떨어지자 시청 공무원들이 검은색 상복을 입고 출근했다. 인구 감소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인구 정책 전문가들은 상당수 지방 도시들의 대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청년 인구 감소폭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출산 장려금과 같은 일시적인 수단으로는 인구 감소를 막기 어려운 데다, 일자리 창출도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0~20년 뒤엔 20~30대 인구가 출생 연도별로 현재보다 20만~30만명씩 줄기 때문에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갈 사람 자체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전국 모든 지자체에 지원금을 나눠주는 방식으론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