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화랑미술제. 갤러리 나우 부스 앞에 긴 줄이 서 있었다. 관람객들이 가수 솔비(38)이자 작가인 권지안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바르셀로나 국제예술상 대상 수상 논란이 일어난 지 석 달여 지난 시점, 미술계 눈빛은 냉랭해도, 대중은 큰 상관이 없는 듯했다. 그는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달 4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다음 달 5일 미국 뉴저지에 있는 갤러리 패리스 고 파인 아트에서 개인전을 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작가로 데뷔한 지 10년 된 해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인 지난달 24일 그를 만났다.
-미국에서 여는 전시 주제는?
“‘허밍(Humming)’, 언어 초월이다. 두 가지 뜻이 있다. 먼저, 지난해 5월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음악이다. 아버지를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 며칠 동안 가사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는데, 마음을 오롯이 담을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허밍이다. 둘째는 사이버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분별한 비방 문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에 관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버락 오바마 등 유명인들이 자신에게 달린 악플에 대해 리뷰하는 영상을 색색의 사과를 알파벳을 사용해 그림으로 풀어냈다. 이들이 악플을 읽고 풀어내는 센스와 위트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왜 사과인가.
“내게 달린 악플 중 ‘당신, 사과는 그릴 줄 알아?’라는 것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누구나 언어를 통해 소통하지만, 때로는 언어를 통해 상처 받고 아파하기도 한다. 사과를 통해 자정(自淨)하는 사이버 유토피아를 꿈꾼다.”
-가장 상처 받은 댓글은.
“난 연예계 데뷔 후부터 꾸준히 ‘사이버 불링’ 대상이 됐다. 2009년에는 가짜 동영상이 돌았다. 내가 아니었고, 아니라고 밝혔는데도, 사람들은 ‘네가 맞는다’고 했다. 최근에는 미술에 대한 부분이다. ‘쟤는 미술을 진심으로 대할까?’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꾸준히 부딪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아트페어는 세계 30여 나라에서 작가 100여 명이 참여했다. 심사위원단도 스페인의 유명 작가 로베르트 이모스, 호세 이그나시오 카파로스 등 권위자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위상을 내가 논할 단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이제 시작하는 작가다. 위상을 따져가며 작품을 출품하지 않는다. 올해만 해도 서울 화랑미술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등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면 마다하지 않고 나간다. 심지어 바르셀로나 아트페어는 초대받아 갔기 때문에 부스비도 내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가 돈을 내고 대상을 받았다던데, 해외 아트페어가 내게 대상을 주려면 이 판을 어떻게 짜야 하나. 그 발상 자체가 놀라웠다.”
-그들은 왜 권지안에게 대상을 줬을까.
“아트페어 측에서는 날 초대하며 지난 2020년 표절 논란이 있었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직접 갖고 와주길 바랐다. ‘이건 현대미술이다’라고 했다. 그 케이크는 아직 냉동고에 있는데,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됐다. 그래서 현지에서 케이크를 만들어 도끼로 내려쳤다.”
-케이크 표절 논란도 뜨거웠다.
“그 케이크는 그냥 인스타그램에만 올렸던 것이다. 작업실이 빵집 위에 있다 보니, 제빵에 관심을 가졌고, 빵집 케이크들을 보니 너무 획일화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조카가 색깔 찰흙을 갖고 노는 것을 보고 그 질감이 재미있어 보여 케이크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유령 계정들이 표절이라며 댓글을 달았다. 내가 무언가를 놓친 건가 싶어 (표절 대상 원작자인) 제프 쿤스에게도 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은 없었다. 이런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구나 싶어서 난 그걸 그냥 먹었다. ‘이건 작품이 아니라 그냥 케이크야’라는 메시지였다. 앤디 워홀의 햄버거를 먹는 영상 ‘버거, 뉴욕’을 오마주한 것이기도 하다.”
-왜 계속 논란이 생길까.
“최근 영국 BBC 인터뷰에서 기자가 솔비와 권지안을 분리해 질문했다. 권지안으로서 하는 작품 활동, 솔비라는 가수를 향한 악플 문화. 나에 대한 논란은 이 두 가지 이미지가 합쳐져 생겨나는 것 같다. 지금 나에게 가수 솔비는 미술 작업을 하는 데 유용한 재료다.”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한다면 공격을 덜 받지 않을까.
“미술 학원에서 2010년부터 4년간 그림을 배웠다. 추상으로 그림을 하기 시작한 건 2015년이다. 내가 가진 감성을 회화의 요소로만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뮤지컬학과인 전공을 살려 퍼포먼스 페인팅을 시작한 것이다. 붓을 잡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붓으로 삼아 카메라 앞에서 그렸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조금 더 다양하고 독창적인 존재다.”
-왜 미술 학원에 다니게 됐나.
“어릴 때부터 꿈이 연예인이었다. 네 살 때 콜라 병에다 숟가락 꽂고 노래하던 시절부터 연예인을 꿈꿨다. 초등학교 때 리듬체조와 합창을 시작하고, 중학교 때 연극을 하고, 고등학교 때 재즈 댄스를 배우며 가수를 준비했다. 그렇게 연예인이 됐는데, 꿈을 이루고 나니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새벽 1시까지 헤어스프레이 피스를 떼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그러다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미술을 추천하더라.”
-벌써 개인전만 네 번 한 작가다.
“오늘 아침 우연히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한 말씀 중 ‘나는 아무리 취미 생활이라고 할지라도 깊이 연구해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라는 말을 보았다. 나 또한 미술을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더 넘어서서 이를 통해 사회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어떤 메시지인가.
“우선, 비전공자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다. 진중권 교수의 말씀(바르셀로나 논란은 미대 나온 걸 신분으로 이해하는 게 문제)도 힘이 됐다. 사이버 불링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예전에는 항상 사랑받고 싶고, 미움받는 게 겁이 났다면, 지금은 커트 코베인 말처럼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