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국제세신교육원에서 세신 수업 중인 김옥이 원장을 따라 수강생 최혜경씨가 때밀이 실습을 하고 있다. 김 원장은 “예술의 경지에 오른 때밀이는 오히려 힘을 들이지 않는다. 때 타월이 살에 탁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오늘이 학원에서 때수건 잡은 첫날이죠. 나가시(세신) 학원 다닌다고 하니 부모님이 걱정이 많아요.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볼 거예요!”

대전시 성남동 목욕관리사 양성 학원. 이달 초 최혜경(35)씨는 목욕관리사가 되려고 이곳에 등록했다. 재작년 말, 최씨는 잦은 야근에 휴일도 보장되지 않아 5년 가까이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뒀다. 한 달 뒤 친구에게 ‘직장인 월급보다 평균 한 달에 100만원은 더 받을 수 있다’며 목욕관리사를 해보라고 권유받았다. 천안에 사는 최씨가 학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한 시간 반. 원하는 만큼 일하고, 대신 일한 만큼 확실한 소득이 보장된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 최씨는 한 달여 수업 과정을 끝내고 목욕관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때를 기다리는’ 청년이 늘고 있다. 목욕관리사가 되기 위해 세신 학원을 찾는 이들이다. 대전에 있는 학원은 정원의 3분의 1, 수강 문의 전화의 절반 가까이를 2030세대가 차지한다. 코로나 거리 두기가 완화할 거란 기대감에 목욕탕을 다시 찾는 이가 늘어난 데다, 시간 활용이 용이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목욕관리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야 청년들이 목욕관리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 대전의 국제세신교육원 수업 현장을 지난 12일 <아무튼, 주말>이 찾았다.

◇때수건 잡는 데만 최소 일주일

세신 학원 내부는 경락실과 목욕실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오후반 1교시 수업이 시작되는 낮 12시, 경락실로 수강 정원 3명이 모두 모였다. 50대 두 명과 30대 한 명. 충북 옥천, 충남 천안, 경북 상주 등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이다. 김옥이 원장은 검은 작업복을 입고 마사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엎드려 있는 수강생 한 명에게 직접 경락 마사지 시범을 보였다. “뼈 사이사이 혈 자리 눌러주는 것을 골 파기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견갑골을 잘 잡아 줘야 해요. 그다음은 림프….”

2교시 수업은 분홍색 침대가 정가운데 놓여있는 목욕실. 수강생들은 수업 시작 전 뜨거운 물을 대야에 받아 놓고, 때수건을 물에 불려놓았다. 막내 수강생 최씨는 이날 처음으로 때수건을 잡았다. 이론 수업 때 배운 대로 때 비누를 살에 묻히고 수건을 결 따라 문질렀다. “살(갗) 까질까 봐 무서워요.” 최씨가 우물쭈물하자 김 원장이 때수건을 다시 받아 들고 말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이렇게 살살 당겨주고 밀어주고!”

세신 학원은 전국에 10여 곳. 주로 수도권에 몰려있고 대전과 부산에 한두 곳씩 있다. ‘나가시’ ‘때밀이’ 등으로 불렸던 이들은 2007년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 개정안에 ‘목욕관리사’라는 이름이 등재되며 제 이름을 갖게 됐다. 초보자가 당장 목욕관리사로 일할 수 있을 만큼 숙련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약 한 달 반. 강의는 신체 부위를 익히고 마사지 순서를 외우는 ‘이론 수업’을 최소 일주일 들어야만 직접 마사지를 하고 때를 미는 ‘실습’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학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로 수업에는 세신과 경락 마사지, 전신과 발 마사지 강의가 포함돼 있다. 3주 만에 모든 수업을 끝내는 ‘속성반’, 미국이나 일본에서 세신 일을 하려는 이들을 위한 ‘해외 이민반’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수강료는 경락 과정과 세신 과정을 합쳐 150만원에서 250만원 선이다. 이 같은 세신 학원들은 목욕관리사 양성뿐만 아니라 직업소개소 역할도 한다. 이날 김옥이 원장이 수업을 하는 반나절 동안에는 목욕탕 3곳에서 목욕관리사를 소개해달라는 전화가 왔다.

세신 교육 중 신체 부위별 명칭을 익히는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요령 안 피우고 구석구석 힘줘서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전문 학원에서 강의 수료만 하면 이들의 취업률은 100%에 육박한다. 서울 영등포에서 목욕관리사를 양성하는 중앙목욕관리교육원 관계자는 “3~4년 전부터 학원에 청년들이 몰려온다. 4년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온 사람도 있다. 세신으로 돈 벌어 대형 사우나를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김옥이 원장은 “1년 전 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 청각장애인이 있었다. 입 모양을 보고 수업을 따라오느라 다른 학생보다 1.5배는 배움이 늦었는데, 일을 시작한 뒤로는 대담하게 잘해오고 있다. 물론 이 학생이 일을 잘한 덕분이겠지만, 목욕탕 입장에서도 워낙 세신 인력이 귀해 놓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왜 목욕관리사가 되고 싶어 할까. 목욕관리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별도의 국가 자격증은 없다. 대신 학원에서 발급하는 수료증이 있으면 최소한 기본기를 갖췄음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국제세신교육원 출신 목욕관리사를 채용한 대전의 A 목욕탕 관계자는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걸 ‘FM(교범) 스타일’로 하는 ‘초짜’ 세신사를 선호하는 손님들이 있다. 요령 피우지 않고 구석구석 똑같이 힘줘서 닦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 사우나 목욕탕 관계자는 “시간이 나서 일하러 오는 중년보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일부러 찾아온 청년 목욕관리사들이 더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했다.

목욕관리사가 되려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시간 활용이 용이하다는 점이었다. 작년 말 목욕관리사 학원에서 수업을 들은 정민옥(32)씨는 “20개월 딸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낮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한곳에 매이지 않고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5년 동안 목욕관리사 일을 해온 김기범(35)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12시간 정도 목욕탕에 상주하는데, 다른 직군에 비해 근무 일자나 시간 조정이 용이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때밀이… 예술의 경지에 오르려면

최근에는 대중목욕탕이 아닌 ‘1인 세신숍’이 생겨나 청년 목욕관리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묵은 때를 벗겨내고 싶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탕을 쓰기는 꺼려지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동시 입장 가능한 인원은 2~4명. 모두 따로 목욕실에 들어가 씻을 수 있으며 예약제로 운영된다. 서울 강남구의 1인 목욕탕 ‘헤움’ 관계자는 “주말이나 평일 저녁은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 목욕 관리사를 총 9명 두고 있는데, 젊은 관리사들의 채용 문의가 많다”고 했다.

목욕관리사 구인난에 기존 목욕탕에서는 ‘보증금 제도’를 없애는 추세다. 보증금은 목욕관리사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 목욕탕에 내는 일종의 계약금으로, 일을 그만둘 때 돌려받는다. 최소 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계약 기간 전 쉽게 그만둘 수 없도록 하는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정 목욕관리사 교육원 관계자는 “다른 업장의 경우 세신 직원들이 원하는 적정선까지 보증금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젊을수록 때 미는 힘도 좋겠군요.” 세신 수업을 끝낸 김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때밀이는 오히려 힘을 들이지 않아요. 저도 학원을 열기 전엔 10년 동안 목욕관리사로 일했죠. ‘때 타월이 살에 탁 붙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초등학생 딸도 엄마 따라 나중에 때밀이 하고 싶다고 해요. 만약 커서도 하고 싶다고 한다면 말리진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