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오전 8시부터 5호선 여의도역에서 장애인 단체의 돌발적인 기습 시위로 5호선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국제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해 12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시작했다. 출근 시간 지하철 운행이 40여 분 지연됐다. 이후 전장연은 지하철역에서 매주 시위를 이어갔다. 지하철 이용객들의 불편이 쌓이면서 지지와 응원만큼이나 반대와 비난도 커졌다. 특히 지난 2월 “할머니 임종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한 지하철 승객에게, 한 시위 참가자가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정치권은 논란을 확산시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해 가면서 하는 경우에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서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 대표가 교통 약자들의 보편적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정당한 시위를 공격하며 경찰청과 교통공사를 압박하고 나섰다”고 비난했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출신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한다”며 무릎을 꿇었다.
전장연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요청으로 시위 대신 릴레이 삭발식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들은 얼마나 절박했길래 욕설과 비난, 위험을 감수하며 이동권 보장 시위에 나섰을까.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앞두고 휠체어를 직접 타봤다.
◇휠체어 앉으니 울퉁불퉁한 세상
금요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역 9번 출구에서 홍윤희 ‘무의’ 이사장과 이영지 활동가를 만났다. 무의는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난 2016년 설립한 협동조합. 무의가 진행하는 ‘휠체어특공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도시 곳곳을 다니며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을 표시·기록한다. 홍 이사장은 “서울 지하철 교통 약자 환승 지도, 인천 지하철 환승 지도, 서울 4대문 안 휠체어 소풍 지도가 휠체어특공대를 통해 나왔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 국내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다는 강남역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영지 활동가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고, 홍 이사장이 옆에서 안내를 맡았다. 홍 이사장이 “엉덩이 안마가 시작될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곧 이해했다. 지면의 굴곡과 요철이 온몸에 “드르륵” 그대로 전해졌다. 보도블록은 그나마 나았지만, 돌을 울퉁불퉁하게 깎은 박석이 깔린 구간은 그야말로 ‘고난 길’이었다. 엉덩이가 얼얼하고 허리가 뻐근했다.
두 발로 걸을 때와 전혀 달랐다. 매끈해 보이던 거리는 움푹 파인 곳이 많고 요철도 심했다. 경사도 심했다. 빗물·오수 등이 원활하게 흘러내리도록 함인지 차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뒤에서 밀어줬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기만도 힘들었다.
서울에서 가장 넓은 길 중 하나인 강남대로도 휠체어로 다니기에는 여유롭지 않았다. 인파도 인파지만 두 다리로 걸을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장애물’이 많았다. 마구 세워둔 전동 킥보드, 인도를 침범해 주차한 자동차, 거치대에 고정되지 않은 자전거가 휠체어 이동을 위협했다.
◇장애인에겐 턱 3cm가 맛집 기준
홍 이사장이 “가게와 식당들을 점검해보자”고 했다. “휠체어는 3cm 이상의 턱을 넘지 못해요. 3cm면 성인 손가락 한 마디 정도에 불과하죠. 비장애인은 평소 인식하지도 못하는 낮은 턱이지만, 이 턱 때문에 장애인은 출입할 수 없어요.” 경사로가 있으면 이동이 훨씬 쉽다. 경사로는 가로세로 길이의 비가 12대1, 각도로 환산해 5도 정도면 휠체어로 오를 수 있다. 그래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은 ‘주 출입구의 턱 높이는 2cm 이하로 하고, 경사로의 기울기는 12분의 1 이하일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역 일대 그 많은 식당과 카페, 옷가게, 편의점 중에서 턱이나 단차가 없는 곳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계단을 2~5개 올라가야 했다. 높은 계단을 3개 올라야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스포츠 브랜드 매장 쇼윈도에 걸린 광고 속 ‘가능성은 지금부터’라는 카피가 공허하게 읽혔다. 강남대로 뒷골목에는 턱이나 단차가 없는 매장이 그나마 몇 있었다. 하지만 턱이 없더라도 문을 당겨서 열어야 할 경우 휠체어를 탄 장애인 혼자서 입장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홍 이사장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먹을 수 있는 식당에서 먹는다”고 했다.
경사로가 출입구에 설치된 매장이 일부 있었지만, 경사가 심해서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았다. 한 의류 매장 경사로는 너무 가팔라서 이 활동가가 뒤에서 휠체어를 붙들고 있었음에도 내려오다가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홍 이사장은 “미국에 본사를 둔 브랜드들은 미국 기준에 맞춰 매장을 만들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이용하기 쉽다”며 “휠체어특공대가 대개 스타벅스에서 만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했다. 실제 강남대로에서 가장 경사로가 잘 갖춰진 곳은 미국 햄버거 전문점 ‘쉐이크쉑’이었다. 경사로가 완만하고 양 옆에 핸드레일이 있어서 붙들고 올라가기 용이했고, 경사로 초입에 설치된 벨을 누르면 직원이 돕도록 돼 있었다.
덩치 큰 기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으려니 뒤에서 밀어주는 이 활동가에게 미안했다. 홍 이사장은 “휠체어를 타는 딸이 어릴 때는 키가 크고 싶어 했지만, 언젠가부터 ‘엄마가 힘들까 봐 미안하다’며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며 “성장 억제 호르몬제 주사를 맞는 장애 청소년도 있다더라”고 했다.
◇있어도 사용 못 하는 장애인 화장실
화장실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한 건물 2층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어렵게 찾았다. 화장실에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탑승도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휠체어를 180도 회전해야 후진하지 않고 내릴 수 있다. 수동 휠체어는 가로세로 최소 100~120cm, 전동 휠체어는 가로세로 최소 120~140cm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게다가 다른 사람이 타고 있을 때 이만한 공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기자에게 쏟아지는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지난 7일 전동 휠체어를 탄 남성이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휠체어가 뒤집어져 추락해 사망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엘리베이터는 노인분들이 더 많이 이용한다. (장애인이 타면) 짜증을 내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겨우 장애인 화장실에 도달했지만 사용할 수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먼저 화장실에 진입한 다음 180도 회전해 변기에 휠체어를 나란히 붙여야 한다. 그런 다음 휠체어에서 변기 시트로 몸을 옮겨야 한다. 그런데 이 장애인 화장실은 휠체어가 회전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없었다. 이 활동가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도 어렵지만 찾아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들은 밖에서 화장실 가는 일을 피하기 위해 외출 전 물, 국물 등 액체류를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장애인 콜택시
전장연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여왔다. 일부 비장애인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서울시가 운행하는 장애인 콜택시는 620대로, 이용자 3만9421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장애인 콜택시 대기 시간이 2시간 이상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서울시설공단 측은 “지난해 평균 장애인 콜택시 대기 시간은 32분”이라며 반박했지만 장애인 콜택시를 신청했다가 취소(포기)하는 비율과 이유는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홍 이사장은 “대기 시간이 2시간이 넘으면 자동 취소되는데, 취소되는 콜을 다 제외하니까 평균 32분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 콜택시 다음으로 선호하는 지하철은 서울시에서도 여전히 22개 역사가 승강장까지 내려가기 어려워 장애인들이 이용하지 못한다. 나머지 역사에서는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리프트로 승강장까지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휠체어 리프트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을 꺼린다. 노후나 관리 부실 위험 때문이다. 지하철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 빈틈도 위험 요소다. 휠체어 바퀴가 끼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
휠체어특공대 활동을 2시간여 만에 마치고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오죽하면 시민들 발을 볼모로 잡는 지하철 시위를 했겠느냐”는 어느 장애인의 울분이 사무쳤다.